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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온난화와 태풍, 욕망이 만든 재해

기자명 최원형

끝 모를 인간 욕망이 기후시스템 혼란 가속화

많은 자동차들이 뒤엉키며 누런 흙탕물 속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바다에 인접해 있는 80층이나 되는 초고층아파트로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들었다. 그 아파트에서 팔뚝만한 바닷물고기를 잡았다는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어 웹에 올렸다. 어떤 재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이달 초에 우리나라 동남해안을 강타한 태풍 차바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당연한 소리겠으나 제 삼자로 그런 풍경을 보며 안타까워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 그 일을 겪어본 사람의 심정은 천양지차다. 세간살이가 다 물에 잠기는 경험은 참으로 처참하다. 느닷없이 범람한 태화강으로 물바다가 된 울산시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고 있자니 내 어린 시절의 어느 한 시기가 중첩되며 떠올랐다. 초등학교 입학을 전후했던 때로 기억한다. 강원도 산골에서 잠깐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이 교사였던 관계로 그곳 학교 관사에서 지냈는데 어느 해 여름이었다. 비가 쏟아지던 어스름저녁이었고 아버지는 바삐 짐을 싸고 계셨고 엄마는 우리들에게 옷을 입혀주셨다. 잠시 뒤 인근 부대에 있던 군인들이 집으로 와서 우리를 목마 태워 학교로 옮겨줬다. 무서워서 아저씨 팔을 꽉 붙들고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장정인 군인들 가슴께까지 물이 차올랐던 기억, 뒤를 돌아보니 집이 빠른 속도로 물에 잠기던 기억들이 편편히 떠오른다.

기후변화 인한 가을 태풍
이례적 현상 점차 강화돼
혼란 속 불안도 갈수록 증가
소욕지족의 생활이 대안

교실이 있던 학교 건물 지대가 높았던 터라 운동장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흙탕물이 넘실대는 운동장에 돼지 몇 마리가 물에 빠진 채 둥둥 떠내려 왔다. 버둥거리던 그 돼지들은 누군가의 집에서는 가족이었을 것이다. 운동장 너머로 역시 물바다인 신작로에는 간판을 단 이발소가 집채 둥둥 떠내려가고 있었다. 가끔 아버지를 따라 가면 의자 위에 받침대를 하나 올려주고 나는 그 위에 올라앉아 단발머리를 자르곤 하던 이발소였다. 그 이발소는 누군가에게는 전 재산이었을 것이다. 비가 그치고 어른들과 동네를 둘러보았을 때, 어린 내 눈에도 동네는 쑥대밭이었다. 마을 사람 대부분은 이재민이 되어 학교 운동장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이 언제까지 그곳에서 생활을 했는지는 기억에 없다. 다만 내게는 개천을 가로로 걸쳐놓았던 외나무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 꽤나 근심스런 일이었다. 개천 너머로 소꿉장난을 다니곤 했는데 다리가 사라졌으니 말이다. 그 곳에서 두 번 홍수를 만났는데 가끔 어른들께 그때 얘길 꺼내면 특히 어머니는 기억하기도 싫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곤 했다. 모든 세간살이들이 다 물에 잠기고 그 와중에도 먹고 살아야하는 일이 얼마나 난감하고 막막했을지 당시 어린 나로서는 가늠조차 불가했다. 그런 내게도 힘든 기억이 하나있는데, 물에 잠긴 쌀로 밥을 지을 때 나던 냄새였다. 물에 푹 잠긴 쌀이 썩지 않도록 펴서 말렸으나 여름이라 습도는 높고 선풍기조차 없던 그 시절에 잘 말린다는 것은 부질없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비위가 약했던 나는 그 쌀이 다 소진 될 때까지 밥 먹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었다.

한 여름 폭염에 시달릴 때 태풍이 왔으면 했던 염원과 달리 느닷없이 10월에 그것도 강력한 태풍이 덮쳤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때 아닌 이 태풍이 바로 기후변화의 양상이라 한다. 과학계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앞으로 한반도는 이처럼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을 갈수록 자주 만나게 될 것이다. 태풍 발생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수 있으나 태풍의 강도는 점차 강화돼 왔다는 게 과학계 대부분의 분석이다. 그 이유로 점점 따뜻해지고 있는 연안 바다가 태풍에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해줘서 태풍의 크기를 키운 다는 거다. 연안 바다가 점차 따뜻해지는 건 누구나 주지하듯 지구온난화와 밀접하다. 지구 기온 상승은 바닷물 온도도 상승시킨다. 그로인해 점점 태풍의 세기가 세진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태풍을 점점 강력하게 만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인간이 태풍을 강력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천문학적인 피해를 다시 입는 기막힌 시대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다. 기후변화의 원인은 온실가스가 산업화시대의 부산물이라지만 잘 들여다보면 그것은 표피적인 원인일 뿐이다. 보다 근원적인 원인은 인간 욕망에 있다. 그 욕망을 줄이지 않고서는 기후시스템의 혼란 한 복판에 우리 삶이 늘 불안하게 놓이게 될 것이다. 혜능스님은 ‘자기 마음이 깨달음에 의지해서 삿되고 미혹한 생각이 생기지 않고, 욕심을 적게 가지고 만족을 알게 되면 능히 재물과 색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의 지혜와 덕상을 받드는 일’이라 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일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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