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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가장 두려웠던 순간

기자명 성원 스님

“여러분, 시주은혜 무서운줄 알아야 합니다”

▲ 일러스트=강병호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제주와 영남지역을 휩쓸고 간 폭풍이름이 ‘차바’라고 하는데 발음이 ‘차마’와 비슷해서 말입니다.

섣달 그믐밤에 관음전 큰방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윷놀이
방장 스님 조용히 들어오셔서
눈물만 머금고 계시다가 경책

가벼운 중급이라고 했는데 피해는 엄청납니다. 집중적 큰 피해는 없다지만 조경수로 20년 이상 자란 향나무며 담팔수, 오랜 풍파를 겪으면서 약천사의 남국적 전경을 주도해오던 야자수마저 차마 폭풍의 위력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며칠째 처사님들과 대중스님들이 태풍설거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편지를 보고 두려움과 두려움의 실체와 두려움 벗어남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많은 스님들이 열반을 갈망하지만, 한편에서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는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시간 ‘반야심경’을 배우고 가르치며 즐겨 법문합니다. 실로 두려움에서 벗어나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길에 대한 명쾌한 가르침 앞에서 사람들은 왜 우물쭈물하는지 궁금하기까지 합니다. ‘삼계가 불타고 있다’는 ‘법화경’의 ‘비유품’에 있는 가르침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불타는 갈망의 삶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지하는 바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와 두려움을 벗어난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꿈꾸면서 그 길을 일러주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나서지 않으니 ‘갈애 속에도 어쩌면 작은 쾌락의 편린이 자리하고 있는가’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루 빨리 불안정한 삶을 인지하고 온전한 이상적 세상을 꿈꾸면서 길을 나선 사람들을 수행자요 스님이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쾌락의 삶에 잠들어 있을 때 먼저 알고 먼저 길을 나선다고 해서 스님을 지칭하는 한자 승(僧)자는 사람인(人) 변에 일찍 증(曾)자를 붙였다고 합니다.

‘일찍이’라는 말이 단지 어린나이로 알았는데 50을 넘기고 생각해보니 ‘일찍이’라는 말이 단지 물리적 나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늦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이른 때’라는 격언처럼 생의 괴로움을 인식하고 일어서는 순간이 가장 이른 때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종단의 어장이신 동주원명 큰스님으로부터 들었던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오래, 가슴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언젠가 해인사 섣달그믐에 관음전 큰방에서 선방스님, 강원학인, 종무 소임자스님들이 함께 모여 전통처럼 내려오는 윷놀이를 하였답니다. 정말 1년 만에 한번 하는 놀이기도 하지만 처음에는 지긋이 시작하다가도 윷판이 진행되면 흥분되기는 승속이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그날도 윷판의 열기가 더해지자 밤 9시 삼경종이 쳤는데도 누구하나 인식하지 못하고 계속 열기를 이어 갔습니다. 삼경이 한참 지났을 무렵 어간문이 열리고 외소 한 체격의 방장스님께서 들어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윷놀이의 열기에 심취해 있다가 한 둘씩 방장스님께서 들어와 계신다는 것을 알아채고 행동을 멈추기 시작 했답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모든 대중이 묵묵히 서서 바라보는 방장스님에게 주목하게 되었답니다.

이때서야 큰스님께서는 “여러분 시주의 은혜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이 엄동설한에 방을 뜨겁게 해놓고 삼경이 지나도록 이렇게 놀고 있어서야 되겠습니까? 시주은혜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아무 말씀 없으시고 눈물을 머금고 서 계셨다고 합니다. 그 순간 등골에서 식은땀이 서늘하게 흘러내리고 두려움에 온 몸이 얼어붙어서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후에 대중들과 이야기 나누어보니 모두 한결같이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고 했답니다. 어장스님께서는 일생 가장 무섭고 두려웠던 순간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참으로 우리 승가의 모든 대중들이 지니고 있는 한결같은 소중한 가치가 아직도 온전히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저도 비슷한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약천사 불사초기 때 인법당으로 사용하던 초가집이 화재로 소실됐습니다. 당시 주지였던 혜인 스님께서는 육지에 법문 나가 계셨고 제가 책임자 격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그나마 부족한 방이 두 개나 타버렸고, 관음단이 불탔으니 대중들은 어찌 할 바를 몰랐습니다. 며칠 후 스님께서 돌아오시자 대중 모두를 주지실로 불러 모았습니다. 당시 참배 왔던 보살 한분이 스님께서 곧 오신다고 하자 기다리고 있다가 그만 졸도를 하고 말았습니다. 정말이지 모두들 얼마나 떨고 있었는지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듭니다.

이렇게 공포에 질려 울지도 못하고 있는 순간 스님께서는 아무 말 안하시고 모든 대중에게 봉투 하나씩을 돌렸습니다. 그리고는 “사중에 우환이 생기는 것은 주지의 덕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덕이 부족한 저와 함께 머무시면서 힘든 일을 겪으셨으니 뭐라 드릴 말이 없습니다. 제가 대중 여러분들께 참회하는 마음으로 보시 하니 꼭 받아 주십시오.” 스님께서 이렇게 말하자 일순간 두려움에 떨고 있던 보살님들이 어린애들같이 엉엉 울었습니다. 모두들 “저희들이 잘못 했습니다. 이 봉투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며 소란을 피우자 스님께서는 반드시 받으셔야 제 참회가 온전해진다 하시면서 끝까지 받게 했습니다.

하나의 일을 두고 서로가 남 탓을 하다보면 또 다시 사건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가 자신의 잘못이라고 다투듯 나서는 자리에서는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애정만 쌓여가는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괴수와 귀신이 무서웠을 때 어른들은 사람이 무섭다고 해서 너무 의아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사람 무서운 줄 알았다가 불교의 자비를 배우다 보니 자비가 진정 두렵고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 ‘보문품’에는 관음보살님 자비의 음성은 우레와 번개 같고, 깊은 바다의 큰 파도소리 해조음 같다하였습니다.

어린 시절 무학대사와 태조 이성계의 농 이야기를 들으며 지혜를 기르며 자랐습니다. 지금 돼지의 눈을 가지고 온 불교계를 돼지우리 같다하는 사람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 불자들과 스님들이 대응하면서 어린 시절의 지혜마저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부디 무학대사의 고매한 눈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 봤으면 좋겠습니다. 단지 그들이 왜 아름다운 세상을 그토록 상처 깊게만 바라볼까 생각하며 우리들을 보다 성숙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모두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바세계 한반도에서 한 시절 잘 살았다는 추억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힘써 아름답게 보고 싶습니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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