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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마음 속 대나무

기자명 명법 스님

굽고 갈라진 대나무 통해 역경 속 변치 않는 맑은 풍격 드러내

▲ 문동(文同) 문죽도(墨竹圖) 軸 북송(北宋).

시가 작가의 인격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이 동의하지만 그림이 화가의 인격을 표현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행동이나 감정의 묘사를 통해 자신의 성품을 표현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지만 모양과 색으로, 그것도 자연경물에 가탁하여 자신의 성품을 드러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중국 문인화는 그 어려운 일을 해내고자 한다. 나아가 훌륭한 작품은 거기에 작가의 인격이 깃들여야만 된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가능할까? 

식물과 마음 교감하는 것
은일자들이 추구했던 수행

식물이 주는 순수한 수동성
중국 지식인 지향성과 상통

매화·난초·국화·대나무는
세속 욕망 버린 군자를 상징

대나무 사랑했던 문동 그림
문인화 본질 일러주는 상징

자연경물에 마음을 깃들이는 일은 세상의 번잡함을 피해 산으로 은거했던 은일자들이 즐겨 했던 일이다. 그들은 거대한 산의 모습에서 자연의 무한함을 보았으며 변화를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순간순간 달라지는 하늘과 물의 형상에서 자연의 무궁함을 보았다. 그들은 그 무한함과 무궁함을 통해 인간세상을 티끌 같은 것으로 여기며 그들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세속적인 욕망들을 비워낼 수 있었다. 자연은 그렇듯 우리의 마음을 맑게 하는 힘을 갖는다.

인간은 태곳적부터 자연사물에 마음을 깃들이고 그것이 갖는 힘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원시토템이 바로 그 사례로서, 육체적 한계들을 보완하기 위해 용이나 곰, 호랑이 등 힘센 동물들을 부족의 토템으로 삼았다. 더 이상 자연이 위협적이지 않은 현대사회에서는 토템이 필요치 않다. 하지만 우리는 좀 더 작고 성질이 순한 강아지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에게 감정을 이입하고 위로를 찾는다.

옛날 중국인들은 동물이 아니라 식물과 마음을 교감했다. 식물이나 돌, 바위 같은 것에서 자연의 원리를 찾고 인간사의 귀감을 찾는 것은 요즘 사람들이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과 다른 문화적 취향이다. 식물의 순수한 수동성은 쉽게 동화되거나 감정이입하기 어렵지만 천천히 그 속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을 버리고 물 자체로 몰입하도록 한다. 그들은 식물을 관찰하고 그리며 사물의 이치를 궁구했으며 마음의 온갖 때를 씻었다. 식물의 수동성은 중국 지식인들이 지향했던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그러므로 문인화가 거대한 산을 그리기보다 소소한 식물들을 그린 것은 우연의 일치는 아니다. 세상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마음을 맑히고 싶을 때 그들은 식물을 찾았다. 이른바 매, 난, 국, 죽으로 알려진 사군자가 저속한 욕망을 버리고 진실을 감내하는 군자로서의 덕을 상징하게 된 것은 은일문화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

소식이 ‘사인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몇몇 문인들이 있었지만 마음 깊이 생각했던 사람은 그의 이종사촌 형이자 19세 연상인 문동(文同, 1018~1079)이었다.

문동은 자(字)는 여가(與可)이고 낙천적이고 재치 있는 성격으로 스스로 호를 소소선생(笑笑先生)이라고 불렀으며 만년에 호주(湖州) 태수로 부임 가던 중 죽음이 임박함을 알고 좌망했다. 그 때문에 후대 사람들은 그를 문호주(文湖州)라고 부른다.

소식은 문동을 깊이 존경했고 그를 통해서 문인화가 무엇인지, 문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창작에 임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여가(與可)가 대나무를 그릴 때(與可畵竹時)/ 대나무만 보이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네(見竹不見人).
어찌 유독 사람만 보지 않았겠는가(豈獨不見人)/ 멍하니 자신마저 잊어버리네(然遺其身).
그 몸이 대나무와 하나가 되니(其身如竹化)/ 청신함이 무궁무진하게 나오는구나(無窮出淸新).
장자는 세상에 없으니(莊周世無有)/ 누가 이런 응축된 정신을 알겠는가(誰知此凝神)?
- 여가의 대나무 그림을 보고(晁補之所藏與可畵竹(三首))

소식은 조보지가 소장하고 있던 문동의 대나무 그림에서 대나무가 아니라 그의 정신세계를 보았다. 문동은 대나무에 완전히 몰입하여 대나무도 없고 자신도 없는 완전한 몰입의 상태, 즉 응신을 통해 물과 내가 하나가 된 경지를 보였다.

그들은 같은 예술적 취향을 공유했을 뿐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도 공유했다. 문동의 그림을 소장했던 조보지(晁補之) 역시 소식의 제자로서, 가족의 생계를 돌보지 않고 글만 읽은 어찌 보면 무능한 문인이다. 가족들은 겨우 죽으로 연명하고 자신도 허기져 오늘 아침에 또 쓰러졌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묘지명을 써주고 받은 돈을 생계에 보태지 않고 문동이 그린 서리 맞은 대나무를 산 것이다. 그에게는 산해진미보다 문동의 묵죽이 더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의 무능은 그의 무욕, 욕심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조보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는 소식은 대나무 그림을 소장하는 것이 고기반찬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며 선비가 추구해야 할 바라고 인정한다.

식탁에 고기는 없을 수도 있겠으나(可使食無肉)/ 사는 집에 대나무가 없어서는 아니 될 일(不可使居無竹).
고기 없으면 사람이 마르지만(無肉令人瘦)/ 대나무 없으면 사람이 속물 되기 마련이네(無竹令人俗)
사람이 마르면 살찌울 수 있으나(人尙可肥)/ 선비가 속되면 고칠 수가 없다네(士俗不可醫)

문동은 그가 거주하는 집에 대나무를 심고 늘 대나무를 바라보고 대나무 바람을 쐬고 죽순을 먹으며 아침에도 저녁에도 대나무와 함께 했다. 이처럼 대나무를 사랑한 이유에 대해 문동은 영죽(詠竹)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대나무는 마음이 비어 뭇 풀과 다르고 마디가 굳세어 범상한 나무를 넘어섰다”(竹, 竹. 森寒, 潔綠. 湘江邊, 渭水曲. ..翠綿, 戈矛蒼玉 心虛異衆草, 節勁逾凡木.....), ‘丹淵集’卷17

그런데 문동은 당시 일반적으로 그려졌던 곧게 쭉쭉 뻗어가는 대나무가 아니라 굽고 갈라진 대나무를 그렸다. ‘정인원화기(淨因院畵記)’에서 보듯이 문동이 그린 대나무는 “천 가지, 만 가지로 변화하여 서로 닮은 적이 없었다.”

“굽은 대나무는 능양 태수가 거처하고 있는 북쪽 벼랑에 나는데 대개 갈라진 대나무이다. 이것이 한편으로는 아직 죽순에서 껍질이 벗겨지지 않을 때 좀벌레에 의해 상처를 입었고 또 한편으로는 깊은 바위틈에 끼어 곤궁을 당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모습이 된 것이다. 고인이 된 친구 문여가는 능양의 태수였을 때 그것을 보고는 기이하게 여겨 그 형상을 먹으로 그렸다. 나는 그의 모본을 얻어 옥책궁기영(玉冊宮祁永)에게 보내어 그것을 돌에 새기게 하였다. 호사자(好事者·일 만들기를 좋아하는 자)가 생각하기에 마음이 동요되고 놀란 눈으로 기이하게 그것을 보리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 그림을 통하여 또한 고인이 된 친구의 풍채와 절개가 굽어도 꺾이지 않음을 생각하는 자료로 삼기로 하였다.”

이 작품에 그려진 대나무는 곧은 대나무가 아니라 굽어지고 갈라진 채 벼랑 끝에서 위태롭게 겨우 지탱하고 있는 곤궁에 처한 대나무이다. 이러한 태도는 문동이 대나무를 관념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대나무의 생태와 형태를 세밀하게 관찰했음을 보여준다.

집 주변에 심어 늘 그것과 함께 하면서 그는 대나무에 나타난 무수한 변화의 이치를 터득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나무의 생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인생의 이치, 우주의 원리를 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은 정밀한 사실주의적 성취를 보이는 동시에 그 속에 정신적 가치를 담은 사의적(寫意的)인 회화이다. 이 때문에 그의 그림은 형사를 지향한 화공의 그림이 아니라 의경을 그린 문인화로 분류되는 것이다.

문동의 그림은 인격의 반영이다. 소식은 벗의 죽음을 아쉬워하며 다음과 같이 그의 덕을 칭송했다. 

“여가의 글은 그의 덕의 찌꺼기이고(與可之文,其德之糟粕), 여가의 시는 그의 문장의 붓끝이다(與可之詩,其文之毫末). 시가 다할 수 없어 넘쳐나 글이 되고 변하여 그림이 되니 이 모든 것이 시의 나머지이다(詩不能盡,溢而爲書.變而爲畵,皆詩之餘). 그의 시와 글을 좋아하는 자가 갈수록 적어지지만(其詩與文,好者益寡), 그의 그림을 좋아 하듯이 그의 덕을 좋아하는 자가 있을까(有好其德如好其畵者乎)? 아~슬프다(悲夫).”

스스로 낮은 관직을 요청하여 한가로이 대나무 숲 속에서 살면서 우주와 인생의 이치를 궁구했던 문동은, 소식이 보기에 그 시대의 문인이고 이상적 인간이었다. 그는 명예가 아니라 덕을 추구했고 부귀가 아니라 시와 서, 그리고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 행복한 삶을 누렸다.

소박하고 맑은 풍격은 역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가짐에서 나온 것으로 굽고 갈라진 대나무 가지는 그가 추구했던 인간의 길을 보여준다. 

명법 스님 myeongbeop@gmail.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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