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 마카라 또는 마가라

물·풍요·상서로움이 깃든 인도의 전설적 수생동물

▲ 네팔 박타푸르 타우마디 광장 출수구를 장식하고 있는 마카라.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전역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설적인 동물이 있다. 심지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적지 않게 이 동물이 나타난다. 이 동물은 기단부의 출수구(出水口)나 출입구의 상인방, 계단 등과 사원의 건축 부재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며, 불보살상의 좌대와 영락뿐만 아니라 귀고리 같은 일상 귀금속 장식에 새겨질 정도로 매우 다양한 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불보살상을 피해갈 수는 있어도 아마 이 동물의 장식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동물의 이름이 바로 마카라(Makara)다. 다만, 저명한 미술사학자 쿠마라스와미(Coomaraswary)는 간다라 미술에 마카라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왜 그가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으나, 이 점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마카라가 새겨질만한 건축 부재와 장신구 등을 보면 간다라 지역에서는 다른 존재들이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이 지역에서 마카라는 드물게 나타나는 것일까.

힌두교·불교·자이나 문헌 등장
건축물엔 악어의 입과 코끼리 코
사자 몸통·물고기 꼬리로 새겨져

중아함경에선 아수라를 비롯해
간다르바 등 신적존재와 열거돼

현우경엔 굶는 백성 구제 발원한
왕 이야기 등 선량한 동물로 묘사
일부 경전엔 부처님 정각 방해한
악마의 군대 중 한 부대로 나타나

마카라는 마갈(摩竭)이나 마갈어(摩竭魚), 또는 마가라(摩伽羅) 등등의 많은 이름으로 한역되는 인도의 전설적인 수생 동물이다. 일반적으로 갠지스 강의 여신이 타고 다니는 신의 마차(vāhana)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 해수(海獸)는 힌두교 문헌에서 다양하게 묘사될 뿐만 아니라 불교와 자이나교의 문헌과 건축에서도 등장한다. 이 동물은 조성된 시대와 그 쓰임에 따라 다소 변화를 보이고 있지만 대략 악어의 입과 코끼리의 코, 사자의 몸통, 물고기의 꼬리를 하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 머리에 뿔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마치 용(龍)과 같이 여의주나 진주같은 보석을 물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인도의 많은 신화적 존재들과 마찬가지로 상상 속의 합성동물이며, 이와 같이 여러 동식물 등의 특정 부위를 결합시켜 특정한 신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도의 오랜 전통이었다.

초기의 형상은 주로 악어의 형상에 훨씬 가깝기 때문에 학자들에 따라서는 마카라를 인도 악어나 민물 돌고래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인더스 문장에도 악어가 간혹 등장하기 때문에(이것을 현재는 마카라라고 부를 수는 없다), 간혹 초기 드라비드(Dravid)어 ‘나카르(nakar)’와 연결시켜 마카라의 기원을 인더스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이것은 초기 베다문헌에 의외로 잘 등장하지 않는 마카라의 존재를 인도로 귀속시키고자 하는 학문적 경향도 일조했을 것이다. 베다 문헌 속에서 마카라에 대한 설명은 그리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야주르(Yajur) 베다’에서 간혹 등장하는데 이때는 단지 말희생제(aśvamedha)에 사용되는 공양물의 하나로 사용되는 정도다.

불교문헌에서는, 특히 후대문헌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등장하지만, 아함경(阿含經)류 등에도 적지 않게 그 설명이 등장한다. ‘중아함경’에서 아수라나 간다르바 등과 같은 신적 존재들과 함께 열거되는 것으로 보아, 마카라는 이미 신비하고 신적 존재로 취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카라의 크기를 100 요자나(yojana 由旬)에서 700 요자나 정도로 설명하고 있는데, 1 요자나가 대략 체감상 13∼14㎞ 정도 된다고 생각하면 최대 9000㎞의 크기를 갖는 괴물이 된다. 물론 이것은 인도인들의 상상력이다.

비교적 이른 경전들 속에 나타나는 것처럼, 인도미술사에서 아마도 가장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모티프의 하나가 마카라다. 이는 가장 초기의 불교나 자이나교에서 조성한 건축조각 속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기원전 3세기경의 로마스 리쉬(Romāś Rṣi) 석굴에서 보듯이(이정도면 불교/자이나 미술사의 최초기다) 마카라는 석굴 입구의 상부를 장식하고 있다. 오래 전부터 건축물의 장식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심지어 초기 대중부(大衆部)의 율에 속하는 마하승기율(摩訶僧祈律)에는 건축물을 장엄하는데 마카라가 자주 차용되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부처님이 승려들에게 길리(吉利)라는 왕이 가섭불(迦葉佛)을 위해 절을 세울 때의 일을 이야기 하는데, 이 때 사찰을 장엄하는 여러 방식을 열거한다. 이러한 당시 건물의 장식 모티프들 가운데에는 미투나(Mithuna)상을 비롯해, 덩굴무늬, 마카라 등이 있었음을 예시하고 있는 것이다.

▲ 바르후트 탑의 난순에 새겨진 마카라. 기원전 1세기경. 콜카타 박물관.

이 마카라가 불교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졌는가 하는 것은 자타카(Jataka)류의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현우경(賢愚經)’ 가운데 ‘설두라건녕품(設頭羅健寧品)’에는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고자 했던 왕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설두라건녕은 과거세에 염부제(閻浮提)의 여러 나라를 다스리던 대왕이었는데, 어느 날 화성이 하늘에 나타나자 점성술사는 왕에게 장차 12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사람이 죽고 나라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왕은 대신들을 시켜서 곡간의 곡식을 헤아려 백성들의 몫이 얼마나 되는가를 헤아렸다. 그리고 곡식을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가뭄이 극심해 죽어가는 백성이 넘치는 것을 왕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러자 설두라건녕 왕은 대신과 궁녀들을 데리고 숲속으로 가 쉬는 척하면서 서원을 세웠다. “지금 이 나라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스럽다. 나는 이 몸을 버리고 큰 고기가 되어 내 몸의 살로 일체 중생을 구제하리라.” 그리고는 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음을 택했다. 그의 서원으로 말미암아 그는 곧 강물의 거대한 물고기로 태어났는데, 그 크기가 500 요자나에 이르렀다. 그 물고기는 강가에 있던 다섯 목수(木手)를 발견하고 그 목수들에게 자기 몸의 살코기를 잘라먹고 배가 부르면 다른 백성들도 와서 함께 나누라고 전한다. 그리하여 모든 염부제의 백성들이 그 물고기의 몸을 먹고 살아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 설화는 아난이 부처님에게 처음 아야교진여(阿若憍陳如) 등의 다섯 비구가 불법을 듣게 된 인연이 어디서 시작되었는가를 묻는 질문으로서 들려준 일화였다. 부처님의 과거 전생에 자신의 몸을 던져 백성을 살린 그 물고기(마카라)가 바로 지금의 부처님이었으며 다섯 목수는 초전법륜을 함께했던 다섯 비구의 전생이었다.

그러나 모든 경전에서 마카라가 이처럼 선량한 동물의 표상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경우 경전 속에서, 사람들은 바다에서 마카라를 만나 배가 침몰하거나 죽음을 당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바다와 물에서 마카라는 위협적인 동물로 묘사되었다.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는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전 악마 파순(波旬)이 나타나 깨달음을 방해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를 방해하기 위해 무수한 파순의 군대가 등장한다. 이 악마의 군대 가운데 마카라가 등장하기도 한다. 불전부도 가운데에는 인간의 욕망을 의미하는 카마데바(Kāmadeva)가 정각을 방해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이 때 카마를 상징하는 마카라 깃발이 나타난다. 이 ‘마카라의 깃발’(幢)이 악마 파순이나 그의 군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나 사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일 가능성이 높다. ‘마카라의 깃발(makara-dhvaja)’은 그 자체로 본래부터 애욕의 신 카마의 별칭이기도 하다. 마카라는 본래 애욕의 신과 관련된 것이지 악마 파순이나 나무치(Namuci)와 관련된 존재가 아니다.

▲ 산치 스투파 제1탑의 출입문 기둥을 장식하고 있는 마카라. 기원전 1세기경. 보팔, 산치.

북부인도에서, 특히 갠지스 강변의 어부들에게 갠지스 강에 사는 민물 돌고래는 자신들의 생계를 지켜주는 신이자 마카라였다. 이들에게 이 민물 돌고래는 강가(갠지스) 여신의 승물(乘物)이었던 것이다. 이 민물 돌고래는 풍부한 지방층 때문에 생활에 필요한 기름을 제공해주기도 했으며 메기와 같은 다른 중요한 생선을 잡는 미끼로 사용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동물의 기름이 발기부전을 치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가히 애욕의 화신인 카마의 상징이 될 만도 하다.

여러 논의에도 불구하고 마카라가 의미하는 기능과 의미 가운데 가장 확실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물과 풍요의 관념이다. 물의 주관자인 베다의 신 바루나(Varuṇa) 뿐만 아니라 갠지스의 여신이 마카라를 타고 다닌다. 뿐만 아니라 초기 안드라(Andhra)지역에서 나타나는 풍요의 여신은 머리에 마카라 장식을 하고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형상이 물확이나 출수구, 우물가, 취수장 등에 많이 조성된다는 점이다. 물론 사원 계단 장식이나 토라나 등은 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풍요와 상서로움의 의미가 사원의 출입문에 깃들여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출입문 상인방이나 토라나 등에서 무수한 마카라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사원 출입구 아래쪽 양쪽에는 물의 두 여신 강가와 야무나가 서 있다. 이 때 마카라는 대체로 덩굴 잎과 결합된 채로, 때로는 난장이와 결합된 채로 자연스러운 아치와 문기둥 장식을 만들어낸다.

필자는 꽤 오랜 동안 이 해수귀(海獸鬼)를 쫓아다닌 적이 있지만 아시아를 통틀어 박타푸르의 타우마디(Taumadhi) 광장에서 만났던 마카라 만큼 뛰어난 작품을 보지 못했다. 출수구로 표현된 그 마카라는 마치 조금 전 물속에서 솟구쳐 오른 듯 무섭고 생동감이 넘쳤다. 입 속의 어금니에 얹힌 파도의 포말까지도 작은 소리를 내면서 사라질듯이 말이다.

언젠가 독자들도 이 마카라를 만나보시길 기원한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63호 / 2016년 10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 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