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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통치자의 처신도 모르는 대통령

근본과 말단이 뒤집힌 이야기들이 이 사회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난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그 본말이 뒤집힌 극단을 보는 듯하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의 검찰조사를 두고 벌어지는 논란이다.

애당초 박근혜 대통령이 검찰조사를 받겠다고 한 시점에서부터 이미 근본과 말단은 뒤집혔다.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 원수이다. 그리고 검찰은 엄연하게 행정부 소속의 기관이고, 대통령은 국가의 최고지도자일뿐 아니라 행정부의 수반이다. 그 대통령이 자신의 부하라 할 수 있는 검찰의 수사를 받겠다고 했다. 그것을 마치 무슨 속죄를 하는 듯이 발표하는 대통령도, 그것을 그런 것인가 받아들이는 야당과 국민도 참으로 근본이 무엇이고 말단이 무엇인지에 대해 눈감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 수반이 자기 부하에게 조사를 받겠다고 말한 순간, 그 지도자는 자기 위상과 역할, 사명에 대한 인식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본말이 뒤집힌 사과의 내용을 살펴보면 더더욱 근본적인 문제들이 발견된다.

최고 통치자의 통치 행위에 대한 것은 근본적으로 검찰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 통치행위의 영역에 검찰의 수사권이 개입된다면 이것은 이미 최고 통치자의 통치 행위가 아니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그 최고 통치행위 자체이다. 그런데 그 문제는 쏙 빼놓고, “개인이 사리사욕을 채웠다니….” 그 개인을 처벌해야 하고, 자신도 그 사람의 범법행위에 연루가 되어 있다면 엄격하게 조사받겠다고 하는 느낌을 주는 사과, 그것이야말로 정말 근본이 무엇인가를 혼동하고 있는 사과가 아닐 수 없다.

윗사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사람을 잘 쓰는 일이다. 사람을 잘 쓰지 못하여 문제가 일어나면 그 아랫사람의 잘못도 모두 자기의 잘못으로 하는 것이 윗사람의 도리이다. 그런데 이런 도리가 지켜지지 않은지 이미 오래이다. “아랫사람이 한 것이라 나는 잘 모르겠다”는 말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 사례들이 최근에만 해도 여러 번 있었다.

그리고 그 극점에는 세칭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이라는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모두 아랫사람에게 전가하고 자신은 쏙 빠져버리는 화법을 국민들은 그렇게 불렀는데, 이번 사과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했다. 적법한 절차를 거쳐 임명한 사람의 잘못도 큰 문제가 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상식을 무시하고 사람을 쓰면서 생긴 문제까지도 그런 식으로 덮으려 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연 최고통치자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를 아는지, 근본적인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시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했던 검찰조사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변명이 있으나 변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사과에 진실성이 없었다는 방증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사과를 할 정도이고, 그것의 진실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어떤 변명도 없이 조사를 받아야 마땅하다. 변명으로 내놓고 있는 여러 어려운 상황도 예상하지 않고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면, 그러한 발표 자체가 졸속이며 급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모든 국민들은 이런 관점에서 철저하게 추궁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할 것이 있다. 검찰 조사를 문제로 삼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애초에 본말이 뒤집힌 일이었으며, 그 조사를 진행한다고 하더라도 지엽적인 문제만 나올 뿐 근본적인 통치행위의 잘못을 가려낼 수는 없다. 지금 우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지탄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행된 이후의 지엽적인 잘못을 논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지율이 거의 0%에 수렴하는 정권, 그 정권의 거취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다. 그러한 정권이 내세우는 지엽적인 변명에, 또 시간 끌기식의 비겁한 수단에 현혹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근본이 무엇이고 말단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아야 한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68호 / 2016년 11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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