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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들-상

기자명 김용규

국정농단 주도자들과 숲속 기생식물의 닮은 점

숲은 신비로 가득합니다. 그 신비의 백미는 숲은 가만 두어도 저절로 푸르러지고 깊어지고 향기로워지며 다양성으로 찬란해진다는 점입니다. 개별 생명체들이 그저 주어진 삶을 꽃 피우고 열매 맺고 번영하려는 욕망을 발하는 것뿐인데도 숲이라고 하는 공동체는 서로 부딪히며 어우러져 놀라운 조화를 빚어냅니다.

하지만 숲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을 주는 식물들이 있습니다. 내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주는 존재들은 소위 기생식물(寄生植物)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기생식물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고 있는 다른 식물들에 들러붙어 그들을 착취하며 그들의 삶이 시들어가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제 삶의 영달만을 추구하는 식물입니다. 자기 삶을 채우기 위해 전적으로 타자에 대한 착취에 의존하느냐, 아니면 일부만 착취에 의존하느냐에 따라 완전기생식물과 반기생식물로 구분합니다. 기생식물 전체는 부끄러움을 모르는 생명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담한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 사태가 꼭 저들, 부끄러움을 모르는 생명들의 모습과 닮아있다고 하면 과언일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행태는 꼭 기생식물의 생태적 특성과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재벌이든 관료든 언론이든 문화계든 학계든, 실새삼 줄기처럼 뻗어나간 그들의 뒤엉킨 줄기는 기업과 관료와 언론계와 문화계와 학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열망, 그 안에 내재한 약한 고리에 사악한 기생의 뿌리를 부끄러움 없이 흡착한 뒤 그들을 빨아먹으며 자신들의 꽃을 피워 숲의 일원이요 지배자인 양 살아보려 했음이 드러나고 있지 않습니까? 기생식물들은 기주들의 눈물과 슬픔, 절망과 노여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꽃을 활짝 피워보려 했습니다.

예컨대 세월호 대참사로 스러져간 꽃다운 아이들과 사람들, 그리고 그 유족들의 슬픔과 분노를 억압으로 잠재우려 했습니다. 먼저 언론을 누르고 나약한 집단들을 이용하며 반대집회로 갈등을 유발하였고 나아가 그들의 슬픔과 분노를 심지어 조롱하면서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이른바 ‘N포 세대’로 살아가는 청춘들이 일생을 걸고 정직하게 노력하여 들어가는 대학의 질서를 특정인을 위해 유린했고, 승마로 제 꽃을 피우고 싶어 하는 제 자식을 위해 법으로 보장된 관련 부처 공무원의 신분마저 ‘나쁜 사람… 아직도 있느냐’는 말 한마디로 강제로 찬탈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완전기생식물처럼 살았습니다.

연일 계속되는 이야기들은 노엽고 참담하고 슬프고 기가 막히는 지경입니다. 그리하여 시민들이 나섰습니다. 이 추위에 ‘이게 나라냐?’는 지엄한 질문과 ‘박근혜 퇴진’이라는 요구를 손에 들고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광장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대통령 박근혜씨는 이제 물러나야 합니다. 그렇게 기생과 외면의 세월을 정리하고 부끄러움과 직면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지만 내가 더 염려하는 것은 반기생식물처럼 살아온 사람들에 대한 것입니다. 사명으로 시작했을 직업의 하나인 언론인과 검찰, 관료와 정치인의 일부가 불의와 부정의에 두 눈을 질끈 감고 완전기생식물에 뿌리를 꽂은 상태로 반기생식물처럼 살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잠시 숨죽이다가 다시 일어선다면 언제든 우리는 또 다른 농단을 맞이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절망스럽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은 숲이 보여줍니다. 숲을 자세히 보면 위에 말한 기생식물들은 쉽게 만날 수가 없습니다. 나는 건강한 다양성으로 채워진 숲에는 기생식물들이 차마 발을 들여놓기가 어려운 것 아닌가 분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건강한 공동체는 각자 주인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이 저마다 깨어나 공감을 나누고 연대할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더는 숲의 주인 행세를 하지 못하게, 우리가 진짜 주인으로 나서서 완전기생은 물론이고 반기생의 행태마저 청산하여 마침내 건강한 숲의 바닥을 이루어내기를 말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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