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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단 하나의 길(唯一道)로서의 위빠사나

기자명 김정빈

위빠사나는 불교 명상법의 핵심

명상은 지금 한국에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서구에서 명상은 먼저 수용을 머뭇거리던 시기를 거쳤다. 이 시기에 명상은 불교나 힌두교적 색채를 띤 종교적인 것으로 이해되었고, 이 때문에 기독교를 중심으로 하는 서구 문화에서 거부감을 일으키는 면이 있었다. 명상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명상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플라세보(placebo, 僞藥) 효과를 보이는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모든 명상 집중력 이용해 수용
위빠사나 명상은 알아차림 추가
수행주제가 자신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명상법 제안될 수 없어

다음 단계에서 명상에 관하여 뇌파 검사를 비롯한 생리의학적인 검증이 시작되었고, 그 결과 명상의 효과가 입증되었다. 그럼으로써 명상을 반대하던 사람들이 사라지는 한편 명상을 수행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마지막 단계로 위빠사나 명상법이 알려졌다. 이 명상법은 종교적 선입견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무종교인과 기독교인들을 비롯한 이웃종교인들까지 명상으로 끌어들였다.

현재 명상은 서구에서 집중명상(concentration meditation)과 통찰명상(insight meditation)으로 대별하는 것이 거의 정론화되어 있다. 명상법을 맨 처음으로 이렇게 둘로 분류한 분은 부처님이었다. 부처님께서는 명상(sati, 사띠)을 사마타사띠와 위빠사나사띠로 분류하셨는데, 서양인들이 종교 색채를 지우기 위해 전자를 집중명상, 후자를 통찰명상으로 이름만 바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부처님의 분류법을 거부하지 못하고 받아들였을까. 그것은 통찰명상의 독특성을 이해하면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명상은 마음을 한곳에 모으는 힘, 즉 집중력으로써 수행된다. 그 점에서 위빠사나를 제외한 모든 명상은 집중명상이다. 그러나 위빠사나 명상은 집중력과 함께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또 다른 능력을 사용하는 명상이다. 따라서 서구인들은 위빠사나 명상법은 집중명상법과 따로 분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밖에도 사마타 명상(1)과 위빠사나 명상(2)은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수행 주제가 있는 곳 : (1)은 대개 타인·타물, (2)는 자기 자신.
수행 주제의 수 : (1)은 대개 한 가지, (2)는 여럿.
수행 주제의 시간적 행태 : (1)은 대개 정지태(靜止態), (2)는 진행태.
선입견 문제 : (1)은 선입견이 있음, (2)는 없음.
수행에 사용하는 정신력 : (1)은 집중력, (2)는 집중력+통찰력(알아차림).
수행 결과 : (1)은 고요·평화·행복(1~8선정 : 정서적), (2)는 (1)의 결과를 일부 포함하면서(1~4선정 : 정서적) 지혜·깨달음(지적).

이상의 여러 차이점에 대해 일일이 논급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여기에서는 ‘수행 주제가 있는 곳’에 대해서만 말하겠다. 앞에 보인대로 사마타 명상의 수행주제는 타인·타물이지만 위빠사나 명상의 수행주제는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타인·타물은 세상에 수없이 많지만 자기 자신은 하나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점을 찍어 놓고서 그것을 바라보며 마음을 집중하면 그것도 사마타 명상이 될 수 있고, 부처님이나 하느님을 떠올려 그 심상(心象)에 마음을 집중한다고 하면 그것도 사마타 명상이다. 따라서 사마타 명상법은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새로 개발할 수 있다.

그렇지만 자기 자신은 오직 하나뿐이기 때문에 위빠사나 명상법은 하나밖에는 제시될 수 없다. 그에 더하여 부처님께서는 마음의 능력인 가장 중요한 능력인 알아차림을 추가하여 깨달음을 성취하는 수행법인 위빠사나 명상법을 창안, 제시하셨다.

그리하여 위빠사나 명상법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단 하나의 길(唯一道)’로 모든 명상법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되었다. 이 점은 매우 중요하다. 유일도로 진리를 깨달으셨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힌두교(브라만교)를 넘어서는 새로운 진리의 창시자로, 또한 천상천하에 으뜸가는 각자(覺者)로 선포하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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