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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나찰

불교 통해 우리나라 유입된 초기 힌두교 대표 귀신

▲ 불전부도에 묘사된 나찰들의 모습. 때로는 여러 개의 머리나 기형적인 신체의 특징을 보여주며 짐승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간다라 2~3세기경. 라호르 박물관 소장.

아마도 ‘귀신’의 이미지에 가장 부합되는 고대 인도의 존재를 꼽는다면, 바로 나찰이 그것일 것이다. 나찰은 야차(夜叉)와 함께 불교에서 흔히 등장하는 말이고 가끔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 둘은 서로 다른 존재다. 한국의 민담이나 전설 속에는 야차보다 나찰이 더 자주 나타나는 듯 보인다. 그 이유는 이들을 주로 지옥에 대한 묘사에서 자주 만나게 되기 때문인데 나찰은 때로 지옥의 옥졸로 그려지곤 한다. 이들은 대체로 귀신이나 도깨비와 유사한 존재로 그려지는데, 본래 불교를 통해 유입된 초기 힌두교의 대표적인 귀신의 무리를 가리킨다.

오래된 힌두교 귀신 중 한 종류
경건한 베다의식 방해하는 존재
개·독수리·부엉이 등으로 그려져

불교의 나찰도 인간을 잡아먹고
피를 빠는 위협적인 모습 나타나

제석천 등이 수행자 시험하려고
공포스런 나찰 모습으로도 출현
동남아 일부선 수호신으로 조각
한국 민담엔 지옥 옥졸로 묘사도

이들을 락샤사(Rākṣasa) 또는 락샤스(Rakṣas)로 부르며 흔히 나찰(羅刹), 나차사(羅叉婆 또는 羅叉私)등으로 음사하여 부르기도 한다. 나찰의 존재는 현재 한국에서도 썩 낯설지 않은 신격이지만, 본래는 매우 오래된 힌두교의 귀신 가운데 한 종류였다.

가장 오래된 힌두교의 경전인 ‘리그베다’에서 나찰은 인도-아리아 인들이 혐오하던 어떤 주술적 힘을 가진 부류로 그려진다. 이때 마법의 존재를 ‘야투(yātu)’라고 불렀는데, 이 명칭은 나찰과 혼용되기도 했다. 이것은 아리아인들에게 어떤 불길하고 사악한 존재를 암시한다. 경건한 베다 제사의식을 방해하는 이들이 나찰이었다. 리그베다에서 나찰은 개의 모습이나 독수리, 부엉이 등 야행성 동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밤을 날아다니며 사냥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아마도 밤하늘을 떠돌며 인간을 해치는 후대 야차의 모습은 여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아타르바 베다’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모습이 나타난다. 이들은 밤중에 새가 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며, 남편이나 애인으로 변하여 여자에게 접근해 그들의 자손들을 죽이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들은 많은 힌두교의 악신들이 그랬듯이, 임신 가능한 여성이나 이들이 낳게 될 아이들을 해칠 수 있는 해악한 존재였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세 개의 머리를 갖거나 두 개의 입, 네 개의 눈, 다섯 개의 다리, 뒤쪽으로 향한 다리 등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된다. 심지어 파란 색이나 노란 색 등의 나찰 등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흡사 한국에 전래되는 도깨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행동습관도 도깨비나 귀신의 모습과 비슷한데, 사람의 몸과 피를 빨아먹기도 하고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사로잡거나 병이 들게도 한다. 밤에 인간의 피와 살을 먹고 낮에는 숨어버리는 모습은 흡사 드라큘라나 흡혈귀 같은 인상을 남긴다. 나찰이 출몰하는 시간은 항상 밤 시간대로 사람의 집 주위를 배회하다가 낮이 되면 사라진다. 따라서 해가 뜨는 방향인 동쪽은 나찰이 꺼려하는 방향이다.

▲ 캄보디아 반데이 스레이(Banteay Srei) 사원의 박공장식 조각 가운데 라바나. 대략 10세기경.

베다 문헌들에 나타나는 나찰의 또 다른 모습은 인도인들이 성스럽게 생각하는 베다 의례의 훼방꾼으로 종종 나타난다. 제사가 갖는 효능을 방해하고 제주(祭主)를 저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베다 의례의 과정에는 이들을 막기 위한 주문이 만들어지거나, 불의 신 아그니를 통해 나찰을 태워죽이도록 하는 신화를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묘사하고 있는 나찰의 모습도 베다 문헌에서 기술하고 있는 형상처럼 인간을 잡아먹고 피를 빠는 등의 위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예컨데 ‘선비요법경(禪秘要法經)’ 같은 경에서는 나찰을 관상(觀想)하면서 날카로운 두 개의 어금니가 입에서 삐져나와 2유순(由旬)가량 솟아오른 입을 하고 있으며 코와 귀, 그리고 몸 전체에서 불이 솟구쳐 나오는 형상으로 그리고 있다.

나찰의 행태와 이들이 사는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경전은 ‘본생담(本生談)’ 류에 속하는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이다. 이 경전 가운데 ‘오백비구인연품(五百比丘因緣品)’이나 ‘설법의식품(說法儀式品)’에 나오는 뱃사람들의 표류기는 마치 저 유명한 그리스의 영웅 오디세우스의 모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오백비구인연품’은 어떻게 사리자에 의해 500명의 외도들이 불법에 귀의하여 변함없는 수행을 이어가는지에 대한 과거 인연을 설하면서 시작한다. 500 비구는 전생에 뱃사람들이었는데, 어느 날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섬에 표류하게 된다. 그 섬에는 나찰녀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아름다운 여인들로 변모하여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바다에서 구해주고 극진히 대접한다. 뱃사람들은 마침내 그들과 오욕의 기쁨을 누리며 가정을 꾸리게 되고 아들과 딸을 낳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선장은 나찰녀들이 금기시한 곳을 탐색하게 되고, 거기서 자신들과 똑같이 나찰녀들에게 속아서 결혼했다가 철로 된 성에 갇히게 된 또 다른 선원 무리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이미 나찰녀들이 죽이거나 잡아먹어서 절반 밖에 생존하지 못하였다.

끔찍한 섬의 비밀을 알게 된 선장은 그들의 충고로 그 섬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듣게 되고 몰래 빠져나갈 방법을 찾는다. 마침내 이들을 탈출시킬 천상의 말(馬)이 당도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일시에 말을 잡고 하늘을 날아 탈출하게 된다. 뒤늦게 이들을 쫓아온 나찰들은 자기 자식들의 울음소리를 들려주며 돌아오도록 유혹하지만 뱃사람들은 현명함으로 나찰의 속임수와 죽음을 면하게 된다. 이는 오욕으로 점철된 사바세계의 모습을 나찰과 나찰국의 모습으로 비유한 이야기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인도뿐만 아니라 중국을 포함해 아시아 전역에서도 널리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질 뿐 아니라, 네팔에서는 ‘싱할라 상인의 이야기(Sim·halasa-rthaba-hu Avada-na)’라는 명칭으로 현재까지 대중적인 판본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기 때문이다.

▲ 인도네시아 중앙 자바 찬디 세우(Candi Sewu)의 나찰상. 10세기경.

통상 나찰들이 불교에서 불교인들을 수호하겠다고 서원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있어도 다른 신중들과 같이 적극적인 호법의 역할을 보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경우에 따라 수행자의 심지를 시험해보기 위해 외형적으로 나찰의 모습을 하는 경우가 나타나기도 한다. 당대의 불교도들에게도 나찰은 상당히 공포스러운 존재였다는 것을 암시하는 일화가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그려지고 있다.

이 경전 속에는 부처님의 과거 전생이야기가 그려지고 있는데, 과거세의 브라흐만으로 태어나 고생하는 수행자로 그려지고 있다. 그리고 그 수행자를 시험하기 위해서 제석천(인드라)은 공포스러운 나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나찰의 모습으로 변모한 제석천은 전생의 부처님에게 들었던 깨달음의 게송을 조용히 수행자의 근처에서 읊조렸고, 그러한 깨달음의 법문을 엿들은 수행자는 번쩍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법문을 과연 누가 말했는가 의문을 갖고 사방을 돌아보았으나 눈앞의 무시무시한 나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수행자는 그 깨달음의 법문을 다 듣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희생도 치를 생각에 나찰에게 그가 읊은 법문의 나머지를 들려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당연히 나찰은 대가를 요구한다. 자신은 사람의 피와 고기를 먹는 나찰로서, 수행자의 몸을 자신에게 바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수행자는 당연히 나머지 법문을 자신에게 들려준다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바치겠노라고 대답한다. 나찰이 법문을 들려주자 수행자는 기쁜 마음으로 나무 위에 올라 몸을 던지는데, 수행자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 전 나찰이 그의 몸을 받아들고 본래 제석천의 모습으로 돌아와 그를 찬탄하게 된다.

나찰의 모습은 힌두교나 불교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며, 그 이름이 지칭하는 범주도 훨씬 넓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개는 기형적인 인체의 형태를 갖거나 험악한 표정을 띠고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라나바(Ravana)와 카라(Khara)와 같은 라마야나의 아수라들을 나찰로 부르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으로 보건데, 사람을 잡아 피를 빨아먹거나 무시무시한 형상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이들을 아수라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동일하게 나찰(락샤스)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동남아시아의 경우, 이들을 사원 내에 조성할 때가 있는데, 한국과 달리 불교 사원 내에서 때로 사원의 수호신으로 조각될 때가 있다. 수호신으로 왜 나찰을 선택했을까.

8월 중순 정도가 되면 인도의 시장통은 팔찌 장사로 붐비게 된다. ‘브라더스 데이(Brothers day)’ 또는 ‘락샤 반다(Rakṣa bandha)’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날 여동생은 오빠에게 자신을 지켜줄 것을 당부하면서 오빠에게 팔찌를 매어주게 된다. 이는 인도의 유서 깊은 전통 축제일 가운데 하나인데, ‘락샤’는 지킨다는 뜻이다. 이러한 관습이 현대에 널리 퍼져 한국에도 유사한 팔찌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본다. 락샤의 뜻은 수호나 보호 등의 의미도 있지만, 정반대로 자신이 멀리해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위험한 존재를 암시하기도 한다.

나찰, 즉 락샤스(Rakṣas)의 어원적 의미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보호’를 뜻하는 락슈(Rakṣ)에서 파생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보호는 멀리해야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심재관 상지대 교양과 외래교수 phaidrus@empas.com


[1369호 / 2016년 11월 3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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