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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개오(轉迷開悟)

신격화 허상을 벗는 길

박정희 전 대통령 추모관이 방화로 전소됐다. 충북 옥천에서 열린 육영수 여사 숭모제는 항의하는 시민들로 난장판이 됐다. “하야하라”는 국민요구를 무시하며 버티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다.

국민의 분노가 높아지자 지자체들은 박 대통령 흔적을 지우고 있다. 울산시는 대왕암공원 대통령 방문기념 안내판을 철거했다. 안내판 일부가 훼손되자 아예 철거해버렸다. 서산시의 철새관광지에서도, 대구시 대통령 생가터에서도 대통령의 흔적은 지워졌다. 친일과 독재, 부패의 어두운 과거를 개발논리로 호도하며 신격화에 몰두했던 거짓된 허깨비 놀음이 이제 기억 저편을 서성거리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그림자는 불교계에도 짙다. 나라 구한 구국의 영웅으로, 부인은 국모로 숭배하며 별도기념관을 짓고 영정을 모시거나, 제사를 지내는 사찰들도 많다. 박근혜 대통령을 현대판 ‘선덕여왕’으로 칭송하는 촌극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불교는 권력보다 중생을 바라보는 종교다. 부처님은 왕자의 자리를 버리고 수행자의 길을 걸었다. 1500년 전 황제에게 절을 하라는 위협에 ‘사문불경왕자론(沙門不敬王者論)’을 지어 보내며 “사문은 부처님 외에 왕이나 황제라 하더라도 결코 예를 표할 수 없다”고 외쳤던 혜원 스님도 있다. 그런데 국민의 공복에 불과한 과거 대통령을 왕처럼 받들고 그 부인을 국모로 그 딸을 선덕여왕이라 숭배하는 것은 불교의 교리에도 맞지 않는 비루한 일이다. 촛불민심에 불교계도 어두웠던 과거와의 단절을 고민하고 있다. 최근 강화 선원사는 2013년 개관했던 박정희 사진전시관을 철거했다. “국민과 신도들의 뜻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불교에 전미개오(轉迷開悟)라는 가르침이 있다. “미혹된 마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사회 곳곳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그 일가에 대한 청산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사찰 내 박정희 대통령을 기렸던 그 자리는 독립을 위해, 산업화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을 위한 추모의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촛불민심이 원하는 전미개오일 것이다.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 kimh@beopbo.com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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