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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신지견 소설가

‘서쪽 산’에 숨겨진 불교사 속 왜곡된 지배층 역사를 풀다

▲ 신지견 소설가는 지배층이던 유가의 역사서술에 대한 항의와 호국불교의 정수 복원을 ‘천년의 전쟁’에 담았다.

진짜 이야기다.

완산최씨(完山崔氏)로 어릴 때 이름이 운학(雲鶴)이다. 50대에 접어든 부모가 낳은 늦둥이었다. 노부모는 ‘늙은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니 하늘의 뜻’이라는 농을 주고받았다. 3살 되던 해 부처님오신날, 등불 아래 졸고 있는 아비에게 한 노인이 나타나 ‘아기스님[小沙門] 뵈러 왔다’고 말한 뒤 두 손으로 아기를 받쳐 들고 주문을 외웠다. “이름을 운학이라 하시지요.” 평생 정처 없는 구름처럼, 고고한 학처럼 살리라는 예언이었다. 아이는 자라면서 모래를 모아 탑을 쌓거나 기와를 가져다 절을 세우기도 하는 등 색다른 장난을 했다.

시인 꿈꾸며 경희대서 작품 습작
황순원 선생, 유망주 언급하기도
지옥 같던 아픔서 ‘금강경’ 만나
절 떠돌며 교계 언론 잇단 연재

유교 관점 담긴 조선불교사 지적
서산대사 통해 다시 쓴다는 신념
자료수집·답사 통해 7년간 글써
‘서산’ 후 ‘천년의 전쟁’ 재집필
29회 경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운학에게 불행은 달갑지 않은 객처럼 자주 들이닥쳤다. 외할아버지는 연산군에게 죄를 지어 귀양을 가게 됐고 부모 역시 연루됐다. 9살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연이어 세연을 접었다. 15살에 진사시에 응했으나 낙제의 쓴 잔을 마셨다. 운학은 친구들과 크고 작은 절들을 찾아 6개월을 방황하던 중 영관대사를 만났고 손수 머리카락을 깎고 서원했다. “차라리 어리석은 바보로 평생을 살지언정 문자나 외우는 스님이 되지 않겠다.” 운학은 영관대사를 전법사로 ‘휴정(休靜)’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행자생활 6년째 되던 해였다.

양반들 위세가 드높던 시절이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원각사는 기방으로 만든 뒤 아예 없앴다. 유생들은 스님을 ‘큰 좀’이라 불렀다. 신분이 천출이라 뒤탈 없고 뒤를 봐줄 사람도 없다며 비구니스님에게 눈독 들이는 잡동사니 유생도 적지 않았다. 역모 혐의를 사게 돼 산문 밖으로 나서지 않았지만 제자 유정(惟政)과 옥살이를 했다. 누명을 씌운 역모사건 불과 3년 뒤 임진왜란이 닥쳤고, 휴정은 분연히 일어나 팔도십육종도총섭으로서 전국 각지서 의승병을 일으켰다. 행주싸움을 승리로 이끌고 평양성을 탈환했으며, 서울 복구작업을 폈다. 반면 유생들 시기는 높아갔다.

휴정은 묘향산 원적암에서 열반을 준비했다. 마지막 설법을 마친 휴정은 붓을 가져오게 하고 자신의 모습을 그린 영정에 시 한 수를 썼다. ‘팔십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팔십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묘향산[西山]의 큰 스승 서산(1520~1604)대사는 그렇게 입적했다.

“슬픔이 느껴진다.” 신지견(73) 소설가의 말이다. 그의 인생 여정도 운학처럼 짠했고, 어두웠던 군부독재 시절 속 핍박을 견뎌왔다. 1944년 전남 화순서 태어난 신지견은 한국전쟁을 겪고 최루탄 냄새가 자욱하던 시절, 4·19가 지나간 이듬해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냈다. 아버지는 면서기라도 할까 싶어 상고를 권했다. 시인이 되려고 김소월 등 시인들 시집과 문학전집 속에 빠져 있으니 국어 빼곤 성적이 꼴찌 수준이었다. 그 사이 5·16 쿠데타가 지나갔고 김광섭, 황순원, 김진섭, 조병화, 서정범 선생이 있던 경희대에 입학했다. 동인에 발 들여 글을 썼고 황순원 선생은 3·1문학상 수상 인터뷰에서 그를 유망주로 꼽기도 했다.

번번이 신춘문예에서 고배를 마셨던 그는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던 때, ‘금강경’을 만났다. 고통은 지옥이었고, 고통이 일어나는 마음을 없애는 게 약이라 깨달았다. 건강이 안 좋아 선무도 양익 스님 지도로 몸과 마음을 단련하기도 했다. 이후 잡지사에 근무하기도 했지만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옥살이를 할 뻔 했다. 서대문 경찰서에 이름이 박혔고, 검은 포니 차량을 탄 세 사람이 집을 발칵 뒤집어 수색했다. 시골로 장사 다닌다고 둘러대 잡히지 않았다. 그날 난곡동 철거민촌으로 도망가 숨었다. 그 후 시국사건이 터질 때마다 아슬아슬하게 빠져나갔다. 그러나 ‘김대중 내란음모’로 불교청년협의회의 한 선배와 많은 학생들이 1년 반 옥살이를 살았다.

어두웠던 시절, 불연은 깊어만 갔다. 고 장경호 거사의 동국제강 계열 회사 월간지 ‘대원’ 편집장을 지냈다. 그 뒤 고향에서 대필해주다 소설 쓰려고 덕유산, 월출산, 무척산 도량에서 현대물리학 서적을 탐독하며 불교를 공부했다. 불교신문엔 장편소설 ‘탑 그늘로 지다’를 연재하기도 했고 현대불교 주간도 역임했다.
무슨 기연일까.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삶에 한 줄 그었던 먹줄 같은 불연이 10권 분량 소설 ‘서산’으로 이어졌다. 대흥사 주지를 역임한 범각 스님의 아낌없는 배려였다. 서산대사 유품이 있는 대흥사에 글 감옥 만들어 7년을 틀고 앉았다.

“조선불교사의 중심에 서 있는 인물이니 도서관에 가면 틀림없이 자료가 지천에 널렸으리라 예상했어요. 동국대 도서관에 석 달 넘게 출퇴근했는데 아니더군요. 직접 저술한 ‘선가귀감(禪家龜鑑)’과 ‘청허당집(淸虛堂集)’, 김영태 교수가 쓴 ‘서산대사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260여 페이지짜리 문고판이 그에 관한 자료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답사도 애를 먹었다. 서산대사 발자취가 있는 묘향산, 금강산, 평양, 개성 등지의 산세와 지리를 묘사하기 쉽지 않았다. 국회도서관에서 고지도와 옛 그림들을 눈에 띄는 대로 복사해 활용했고, 북한에 소재한 사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을 참고했다. 그렇게 피땀 흘렸건만 돌연, 그는 출판사의 양해를 구하고 ‘서산’을 전량 폐기했다. 2014년 탈고해 출간 후 많은 찬사를 받았지만 아쉬웠다. 불교는 물론 도교와 유교의 용어를 가슴 깊이 삭히고 소화해 더 쉬운 문장으로 독자들과 폭넓게 소통하지 못해서다.

▲ ‘천년의 전쟁’/ 신지견 지음/ 새움
원점으로 돌아가, 하얀 원고지에 새로 먹줄 그었다. ‘서산’을 다시 앞세웠다. ‘천년의 전쟁’(새움, 2016)이다. 2권까지 나왔고 7권을 계획 중이다. 조선불교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집필하고 있다. 결국 인생 후반부를 서산대사에 매달렸다.

“조선시대 사초는 대개 유가들 관점의 기록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네요. 불교가 역사의 객관적 지표 위에 표기되지 않았다는 점은 비판받아야 합니다. 유생들이 의승병 활동을 누락하고 폄훼한 점을 그들의 사초 행간에서 읽었지요. 서산대사는 척불이 가장 심한 중종 때 태어나 종교를 떠나 조선 역사상 가장 우뚝 선 대표적 인물입니다.”

배경은 불교가 벼랑 끝에 섰던 16세기다. 신지견은 서산대사 개인이라는 미시사에서 조선시대 숭유억불이라는 거시사를 풀어냈다. 상상력은 권력층에 맞선 사문들의 비밀 결사체 ‘사사(沙社)’와 법준, 자환, 마하 등 선승들을 등장시켰다. 축지와 무예에 능한 풍회, 미오와 무예를 겸비한 신혜, 자옥, 여윤 등 비구니들까지 ‘서산’을 중심으로 위기에 놓인 정신사를 지키려는 이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러면서도 정심선사로부터 지엄, 영관을 거쳐 서산으로 이어지는 조선 중기 선불교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선문답 같은 대화는 물론 ‘새벽에 서속밥’ ‘푸줏간 들어가는 소걸음’ ‘땡볕에 수숫잎 꼬이듯’ 등 맛있는(?) 문장들이 소설을 풍요롭게 한다.

“사사는 ‘백범일지’ 서대문 감옥의 감옥살이와 강명관의 ‘조선의 뒷골목 풍경’의 ‘군도와 땡추’에서 얻은 힌트로 창작했어요. 소설의 성패는 간결하지만 잔재미가 있는 표현이 담긴 문장에 좌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영웅의 일대기나 단순한 역사소설로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역사가 지속되는 한 그치지 않을 종교 간 다툼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 간 전쟁과 깨달음을 이루려는 수행자들의 끊임없는 수행으로 읽혔으면 합니다. ‘천년의 전쟁’을 제목으로 한 이유입니다.”

‘천년의 전쟁’에서 학소대사는 ‘묵사탄정(墨絲彈正)’이라는 밀지로 선승 법준이 사사에 동참할 그릇임을 가늠하기 위한 엄격한 통과의례를 진행한다. 집 지을 나무는 먹줄부터 옳게 띄워야 하기 때문이다. 먹줄 위를 톱으로 재단한 나무를 적재적소에 결구해야 튼튼한 집 하나 완성이다. 신지견 소설가도 빈 원고지에 먹줄 하나 긋는 심정으로 글을 쓴다. ‘천년의 전쟁’이 제29회 경희문학상을 수상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는 ‘선가귀감’을 쉬운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아직도 ‘서산’ 품에 갇혀 있다.

마지막으로 ‘진짜 이야기’ 하나 짓는 게 여한이다. 그래서 묵사탄정이다. 먹줄 하나 썼다, 지운다. 지웠다, 다시 쓴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신지견 소설가 추천도서

 
‘드리나 강의 다리’/ 저자 이보 안드리치/ 문학과지성사
인종 간, 종교 간 분쟁이 끊이지 않는 발칸 반도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저자가 조국의 역사를 인간의 운명과 역사에 관한 위대한 대서사시로 승화시켰다. 터기 제국시대부터 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400여년 동안 보스니아의 소도시 비셰그라드에 놓인 다리가 중심이다. 신지견은 “민족공동체의 공존과 충돌을 치밀하게 서술한 걸작”이라고 했다.

 

 

 

 

‘금강경전서’/ 감수 무비 스님/ 승가대학원
“늘 빠져 있는 경전이 바로 ‘금강경’이다.” 신지견은 ‘금강경’을 예찬했다. 서재 책장 하나가 전부 ‘금강경’ 관련 서적이다. 그는 불교 사상이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다며 ‘금강경전서’를 추천했다. 1990년대 후반 전통강원 교재로 사용 중이던 ‘금강경오가해’와 산스크리트 원전, ‘금강경’의 6가지 한역을 한데 묶어 편찬한 책이다.

 

 

 

 
‘감각과 영혼의 만남’/ 저자 켄 윌버/ 범양사
철학, 종교, 심리학, 신(新)과학, 인류학, 사회학 분야 대사상가로 아인슈타인에 버금가는 인물인 켄 윌버의 저작이다.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경험 과학과 영적 종교의 통합론을 보여준다. 과학과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는 종교의 화해를 꾀한다. 켄 윌버 저작을 모두 소장 중인 신지견은 “현대물리학과 불교의 접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며 어렵지만 일독을 권했다.

 

 

 

 
‘라캉과 현대 철학’/ 저자 홍준기/ 문학과지성사
“라캉을 공부하지 않고는 현대철학과 심리학을 논하기 어렵다”고 추천한 책이다. ‘주체의 죽음’을 이야기했던 현대철학의 큰 흐름 속에서 라캉의 사상을 재구성했다. 초기 라캉의 프로이트 메타 심리학 수용에서부터 무의식과 현상학, 정신분석학과 마르크스주의, 주체 문제 이르기까지 라캉의 사상과 철학 사상을 명료하게 분석했다.

 


 

[1370호 / 2016년 12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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