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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모든 존재는 귀한 인연

기자명 최원형

“어치야, 우리가 아주 가까운 이웃이었구나”

어느 날 아침밥을 먹던 우리 가족은 모두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세히 그날을 이야기하자면 이랬다. 드물게 즐기는 내 취미는 우리밀로 빵을 굽는 것이다. 간만에 시간을 내어 구운 빵이었는데 하필이면 식구들이 먹을 짬이 없을 때를 맞춘 거였다. 급기야 그 빵에 곰팡이가 여기저기 피기 시작했다. 날도 따뜻했지만 밖에서 사온 빵이라면 아직 멀쩡했을 그 시간에 방부제 없이 만든 그 빵은 이내 곰팡이 세상이 돼버렸다. 아까운 마음에 어쩌나 싶다가 새들 모이대가 떠올랐다. 해서 빵을 잘라 일단 두 덩어리만 내 놓아봤다. 먹을지 어떨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놓고 막 아침밥을 먹던 참이었는데, 거실 창 쪽을 향해 앉았던 나는 아주 순식간에 벌어진 풍경에 그만 소리를 지르고야 말았다. ‘어, 어치, 어치가!’ 말을 다 끝맺지도 못한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나의 소란스러움이 가리키는 창을 향해 식구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그러나 그땐 이미 어떤 움직임도 사라진 그저 고요한 창가일 뿐이었다. 궁금해 하는 식구들에게 어치가 방금 전에 내가 내 놓은 빵을 한 덩어리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는 상황을 설명 했다. 얘기를 전해들은 식구들은 모두 그 풍경을 상상하며 신기하다고도 했고 재미있다고도 했다. 모두 창가로 몰려가 주변을 살피며 한참을 기다렸지만 더 이상 어치 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일순간의 소란을 가라앉히고 식구들이 다시 아침밥에 열중하던 차에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리고 힐끔거리던 큰 아이 눈에 다시 어치가 등장했다. 아주 작은 그러나 빠른 속도로 아이는, ‘왔어!’를 속삭였고 우리의 시선도 빠른 속도로 창을 향했다. 어치는 모이대에 내려앉아서는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만 남은 빵 한 조각을 냉큼 물고는 또 한 번 훌쩍 날아올랐다. 우리는 모두 창가로 달려가 어치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우리 집 베란다의 왼쪽에 있는 숲을 향해 양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가는 어치를 보며 우리는 박장대소를 했다. 참새들이라면 며칠을 두고 먹었을 양식을 저 녀석이 한 번에 물어갔다며 아이들은 깔깔 거렸고, 나도 딱히 알 수 없는 기쁨에 마냥 즐거웠다. 우거진 숲 가장자리에 두 그루 나무가 서 있는데 그 나무 사이로 들어가면서 어치는 사라졌다. 그렇게 어치가 우리 집 모이대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참새 모이로 준 빵에 어치 등장
식사하던 아이들도 호기심 발동
새에서 시작된 관심 숲으로 확대
숲 가족들 알아갈수록 귀히 생각

그 후로 어치가 어쩌다 들르는 날이면 왠지 큰 선물을 받는 기분이었다. 산까치로도 불리는 어치는 특히 날개에 있는 하늘색이 물감으로 채색한 듯 선명하고 예쁘다. 주로 갈색인 참새가 찾는 모이대에 어치의 화려함은 일상에 한 점 이벤트 같다고 표현하면 적절할 것 같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깊어갈 이즈음에 다시 어치에 관한 재미난 비밀 하나를 알게 되었다. 며칠 전 일요일 아침에 있었던 일이다. 이제 익숙하게 길을 튼 때문인지 어치가 모이대에 들르는 일이 점점 빈번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러 우리에게 즐거움을 전해주던 어치가 어느 날 내 놓은 떡이며 귤을 한참 와서 먹다가는 훌쩍 날아가는 뒷모습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여전히 우리 집 왼쪽 편 숲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고 우리는 어치가 어디로 날아갈지 대략 그 위치를 알고 있었다. 그는 늘 두 그루 나무 사이로 들어갔으니까. 겨울이라 잎을 죄다 떨군 두 그루 나무는 뒤에 있는 숲을 훤히 보여줬다. 어치는 숲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는 대신 두 그루 나무 가운데 오른쪽 나무 위에 안착을 하는 게 아닌가! 막연히 깊은 숲 어딘가에 살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 밖의 반가움에 ‘어치야, 네가 우리와 아주 가까운 이웃사촌이었구나!’ 혼잣말을 하고 말았다.

이웃사촌, 얼마나 친근하고 따스한 말인가. 마침 큰 아이도 곁에서 어치가 안착하는 장면을 본 터라, 우리는 어치가 내려앉은 그래서 아마도 둥지가 있을 그 나무에게로 자연스레 관심이 갔다. 어치가 귀한만큼 그 나무도 갑자기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바로 전까지 아무런 관심이 없던 그 나무의 존재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그랬다.  ‘만약 누군가 저 나무를 베려한다면 우리가 나가서 반대할 것 같아.’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알아 가면 갈수록 그 존재의 귀함이 느껴지는 이치! 어치에서 시작된 관심이 이제 숲 가장자리에 우뚝 자리한 나무에게로 옮겨갔다. 우리가 숲의 식구들을 알아갈수록 점점 숲의 존재가 귀하게 느껴질 거라는 걸 이제 안다.

어치로 인해 맺어진 인연에 감사한다. 묵은해가 저물어가는 즈음, 우리가 관계 맺고 있는 무수한 존재들 역시 이와 같이 그 귀함이 더욱 귀함의 인연으로 이어지길 빌어본다.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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