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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촌놈의 의미

기자명 원빈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6.12.27 15:19
  • 수정 2016.12.27 15:20
  • 댓글 0

모든 것이 변하는 무상 속에서
‘촌놈’ 의미 또한 변하기 마련
습관·고집 버리고 깨어 있어야

“고향이 어디세요?"

누가 질문을 할 때마다 난감합니다. 고향에서는 딱 6개월을 살았다고 하고, 고양에서 나머지 기간을 살았기 때문에 어디를 고향이라고 말해야 할지가 애매한거죠. 하지만 태어난 곳이 고향임을 감안한다면 제 고향은 천안입니다.

생후 6개월 경 고양시로 이사와서 초, 중,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는데 방학이 되면 어김없이 큰 집 천안에서 한달의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큰 집에는 속가 사촌 누님과 형님이 있는데 그들과 밤새 부루마블하고, 뛰어놀며 보내는 시간이 즐거웠기에 매년 천안에 가곤 했겠죠?

사촌들과 함께 그들의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때 저를 지칭하는 이상한 표현을 자주 들었습니다.

“야! 서울촌놈!"

다들 저보다 형이고 누나여서 뭐라고 반문하지는 못했지만 약간 이상한 표현이었죠. 본래 촌은 서울 외에 지방을 지칭하는 말이기에 분명히 천안이 촌인데, 왜 서울 사람한테 촌놈이라고 부른 것일까요?

최근 지찬스님과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우도에 하나 뿐인 절 <금강사>에서 하루를 편안히 쉬고 첫배를 타고 나오니 커피가 한잔 하고 싶더군요. 열심히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편의점을 찾던 중 일찍 오픈한 한 가게를 찾았습니다. 기쁜 마음에 지찬스님이 앞장서 편의점에 가더니 갑자기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원빈스님, 아직 안 열었어요."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편의점이 열려 있다는 근거는 세 가지나 되는데 안열렸다니요!

그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둘째, 지찬스님이 문 앞에 도달하기 직전 손님이 나오는 것을 봤습니다.
셋째,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점원이 있더군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왜! 지찬스님은 편의점이 닫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일까요? 그 이유를 곧 알게 되었습니다. 가게가 닫혔다고 난감해하고 있는 지찬스님을 뒤에서 보고 있던 한 노인이 껄껄껄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스님, 문을 옆으로 미세요."

그 자리에 있던 지찬스님, 지나가던 노인, 편의점 점원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빵! 터졌습니다. 한참을 깔깔깔 웃다가 점원에게 물었습니다.

“여기는 왜 문을 여닫이가 아니라 미닫이로 설치하나요?"

알고보니 제주도 해안가의 경우 여닫이로 설치하면 태풍이 왔을 때 문이 날라가는 경우가 많아서 미닫이로 설치하면 그 피해가 좀 적다고 합니다. 그래서 문을 미닫이로 설치하는 경우가 꽤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육지에서 온 우리들은 그 사실을 알리가 없으니 육지습관으로 문을 앞뒤로 밀어보고 가게가 닫혔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편의점 점원과 지나가던 노인이 그 모습을 보고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아! 저 서울 촌놈들...'

세상의 모든 법은 고정된 바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생사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행과 선정을 모두 수행하시고, 중도의 길로써 깨달음을 얻으신 바를 연기의 진리라고 표현합니다. 연기법의 입장에서 보자면 일체법은 무상하기에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죠.

세상의 모든 것이 변화하는데 촌놈이라는 말이 고정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을리가 없겠죠?

한국 사람들에게 나라의 수도는 서울이지만 개개인들에게 세상의 중심은 자신이 살아가는 그곳입니다. 그러니 천안사람에게 천안외의 다른 지역 사람들은 사실 촌놈으로 인식하는 것도 일리가 있는 것이죠.

만약 외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어색하지 않게 지낸다면 촌놈이라는 표현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 지역 사람들이 당연히 아는 것을 모르면 촌놈이라는 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올수도 있는 것이죠. 천안촌놈들이 서울사람들을 서울촌놈이라고 부른다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밑바닥에 깔린 맥락을 이해한다면 서울촌놈이 천안에 가서도, 제주도에 가서도 촌놈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원빈 스님
행복명상 지도법사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과 같이 그 지역의 문화를 존중하며 자신의 습관과 고집을 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세상 어느곳에서든 어색하지 않게 주변과 동화되는 무상함의 진리를 아름다운 몸짓으로 표현하는 수행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전히 어느 지역에 가든 촌놈 소리를 듣는 것이 제 현실이지만 부처님의 금구에 물들어가는 시간만큼 세상 어디에가도 촌놈소리를 듣지 않는 어색하지 않은 수행자가 되기를 부처님전에 발원합니다.

 

 

[1373호 / 2016년 12월 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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