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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조계종 교육아사리 정운 스님

선학의 뿌리서 캐낸 수행 고갱이 대중언어로 전하는 열린 필봉

▲ “불교의 핵심인 선학을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은 출가자로서 더없이 큰 복”이라는 정운 스님은 “교학을 통해 부처님의 은혜와 시은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말한다.

서울 개봉동 언덕길에서 한참 동안 두리번거렸다. 조계종 교육아사리 담연정운(湛然定芸) 스님의 주석처인 니련선하원은 산중이 아닌 서울시내 주택단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출가 후 6년간 극심한 고행을 감행한 부처님은 니련선하 강물에 목욕하고 보리수 아래서 마침내 정각을 이루셨다. 그 강물이 도심 한복판에 흐른다는 뜻인가. 도량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마조선 연구’로 박사학위
연구·강의·집필에만 전념
교계 안팎 매체 글 연재하며
저서 10여권 넘는 ‘유명인사’
“집필은 공부 독려하는 끈”
 
미얀마서 1년간 수행하던 중
전 세계인들 모이는 것 보며
한국 禪 대중화 필요성 절감
 
대승경전 근간한 중국선 연구
선종 형성의 뿌리부터 되짚어
“현대 언어로 리모델링 해야
대중에게 수행 전할 수 있어”

 

“찾기가 쉽지 않죠? 어떻게 사는지도 알아야 글 쓰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요. 번듯한 사찰은 아니지만, 이렇게 삽니다.”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 정운 스님은 현관문을 활짝 열어 기자를 맞아준다. 일주문이 서 있는 산중 사찰도, 오가는 길목 눈에 잘 띄는 도심포교당도 아니다. 부처님 모신 소박한 법당과 햇빛 잘 드는 자리에 마련된 찻상을 빼고는 온통 책으로 가득 찬 니련선하원은 누가 보아도 교학의 길 걷는 학승의 도량이다.

정운 스님은 1982년 명우 스님을 은사로 서울 성심사에서 출가했다. 운문사승가대학,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마조선 연구’로 2009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줄곧 연구와 강의, 집필에만 전념해왔다. 조계종 교육아사리라는 소임 외에는 밖으로 드러낸 공식 직함도 없지만 ‘정운’이라는 법명만으로 이미 유명 인사다. 신문, 잡지, 포교지 등 교계 안팎 다양한 매체에 글을 연재하고 저서도 십여 권이 훌쩍 넘는다. 그 가운데 두 권은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로 선정됐다. 동국대, 중앙승가대를 비롯해 조계사, 봉은사 등 불교대학 강의도 끊이지 않는다. 2009년, 2010년에는 동국대 교수평가서 ‘최고 강사(Best Lecturer)’ 상을 수상했다. 연구 성과는 더욱 눈부시다. 2003년부터 거의 매년 한 편 이상의 논문을 학술지에 발표해 왔다. 올해에는 무려 네 편의 논문을 ‘동아시아불교문화’ ‘선학’ ‘한국불교학’에 잇따라 게재했다.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운 저서와 연구실적 목록을 보며 떠올렸던 풍경, 온갖 책과 자료, 원고뭉치들이 켜켜이 쌓여있을 것이라던 상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단정하게 정리된 스님의 서재는 부지런한 스님의 일상을 그대로 비춰주는 듯하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예불과 기도 외에는 책 보고, 원고 쓰고, 수업 준비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의뢰받은 원고는 마감 날짜를 지켜야하기 때문에 일정을 꼼꼼히 체크해 집필한다. 마감 날 임박해서 글을 쓰는 일은 절대 없다. 보통 1주일, 적어도 마감 3~4일 전에는 집필을 마무리하고 며칠에 걸쳐 수정한 후 송고한다.”

▲글감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많게는 한 달에 10편 이상 외고를 쓴 적도 있다. 새로운 아이템을 충전하지 않으면 바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원고가 실리는 매체의 특성에 맞춰 며칠 전부터 책을 읽거나 뉴스를 눈여겨본다. 일간지 등 일반매체에 글을 쓸 때는 시사뉴스에 더 관심을 갖고, 교계매체에 글을 쓸 때는 교계소식과 불교서적에 더 관심을 기울인다. 하지만 어떤 글이든 불교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전업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 다양한 매체에 꾸준히 글을 싣는 이유는.
“글을 쓴다는 것은 공부를 하는 끈이다. 원고를 쓰기 위해서는 책 읽고 공부하기를 멈추지 않아야 한다. 그 과정이 공부의 계기다. 이유는 그뿐이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 내 글이 도움이 됐거나 덕분에 힘을 얻었다는 이들도 종종 만난다. 보람도 된다. 그래서 집필 부탁은 가급적 사양하지 않는다.”
 
학창시절부터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어떤 스님의 시집을 읽으며 출가를 결심했다. 극구 반대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집을 나설 때에도 챙긴 것이라곤 시집 몇 권뿐이었다. 하지만 글을 쓰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수행자가 글을 가까이 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시절”이었다. 스님도 승가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선방에서 정진했다. 하지만 이십대 초반, 무턱대고 붙잡은 선방의 문고리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세납 서른을 넘겨 동국대에 진학하고 석·박사과정까지 마쳤다.
 
▲석·박사 연구 주제를 모두 마조로 택한 이유는.
“중국선종은 마치 다양한 반찬이 잘 차려진 식탁 같다. 초기불교가 단순하고 깔끔한 맛이라면 중국선종은 색과 맛이 다양한 반찬이다. 그만큼 살피고 연구할 분야도 많다. 중국선에 매력을 느꼈고 마조대사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학문으로서 매력은 있겠지만 대중에게는 멀게 느껴지는 분야다.
“맞다. 특히 요즘에는 초기불교나 위빠사나 쪽으로 관심이 기울어지다 보니 학계에서도 중국선종은 그리 인기 있는 분야가 아니다.”

▲인기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한문을 어렵게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문화는 한문이 있었기에 더욱 화려하게 꽃 필수 있었다. 중국선종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세대만 해도 한문을 깊이 있게 배우지 못했다. 서양식 교육, 영어식 개념에 더 익숙하다. 그러다보니 서양의 유명한 수행자들이 서구식 교육체계와 개념에 맞게 변형시킨 초기불교나 위빠사나가 더욱 친근하고 쉽게 이해된다. 상대적으로중국선은 한문 용어부터 더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선이 대중으로 멀어진 것은 한문교육 쇠퇴와 일정부분 맥을 같이 한다고 본다.”
 
정운 스님 역시 처음부터 중국선종이나 마조대사 연구가 목표는 아니었다. 박사과정 수료 후 곧바로 동국대와 불교대학, 인터넷방송 등서 강의가 이어졌다. 숨 가쁘게 꼬박 4년을 보내고, 중국행을 택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출발한 길이었다. 평소 관심 있었던 중국 선종사찰 순례를 시작했다. 광활한 중국대륙에 흩어져 있는 선종사찰을 찾아가기 위해 한 곳씩 지역을 정하고 15일~20일 안팎으로 일정을 刊짰다. 홀홀단신으로 강서성, 호남성, 광동성, 절강성, 하남성, 사천성 등을 순례하며 책에서만 보던 선사들의 비문과 그들이 머물렀던 사찰을 직접 확인했다. 선사들의 행적이 평면 위 문자가 아닌 3차원 실루엣으로 다가왔다. 중국에 머무는 1년 반 동안 길 위에서 6개월 여를 보냈다. 발길은 중국서 다시 미얀마로 이어졌다. 판디타라마와 맬라민에 위치한 파옥센터서 1년간 수행했다.
 
▲박사과정 수료 후 논문을 쓰기까지 거의 10여년이 걸렸다.
“중국순례 후 2007년 미얀마서 수행하며 비로소 결심이 섰다. 당시 미얀마는 비자 받기도 어렵고 수행여건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전 세계서 수행자들이 몰려들었다. 파옥센터서 700여 명이 수행했는데 400여명이 외국인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선종의 맥을 잇고 있는 한국불교는 왜 수행을 희망하는 외국인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지 고민하게 됐다. 귀국해 논문을 마무리 짓고 한국불교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졌다.”

▲이후 연구들은 경전에 나타난 선사상에 집중돼 있다.
“‘열반경’을 시작으로 ‘유마경’ ‘화엄경’ ‘능가경’ ‘법화경’ ‘금강경’에 나타난 선관(禪觀)을 고찰했다. 대승경전의 선관은 초기 선맥 형성의 기준이다. 초조 달마 이후 초기 선종의 종파들이 늘어나면서 각 문중의 계보가 정리되기 시작한다. 선사들의 어록이 형성되기 전까지 문중과 선사들의 가르침은 공안이 아닌 대승경전에 나타난 선관을 기준으로 정립됐다. 대승경전의 선관을 살펴보는 것은 선종의 뿌리를 찾는 작업이다. 이후 간화선이 등장하면서 화두가 중심이 되고 불립문자 교외별전이라고 하지만 초기 선종은 경전을 근간으로 선사상이 정립되었다. 선종의 수행 역시 반드시 경전에 입각해야 하는 이유다.”
 
선과 교의 관계는 결코 우열이나 선후가 아닌 겸수여야 한다고 스님은 강조한다. 선수행의 경험이 있어야 선사어록이나 경전의 가르침이 깊이 있게 이해된다.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이 화두정진의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경전이 길잡이가 되어준다. 하지만 스님은 “겸수가 가장 어려운 길”이라고 말한다. 더욱이 한문이 낯설고 선수행이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리는 현대인들에게 경전을 읽고 함께 수행하자는 말은 귓전을 스쳐갈 뿐이다.
 
▲최근 발표 논문들을 보면 수행 대중화, 현대화에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전공은 선학이지만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순수 학문으로서 선학에 대한 연구는 계속돼야겠지만 학문이 대중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는 현대화, 대중화를 위한 접목, 리모델링이 필요하다. 참선에 근간을 두더라도 자비명상의 방법을 도입한다든지 요즘 학생들에게 익숙한 힐링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올해 발표한 네 편의 논문 가운데 두 편에서 스님의 이런 시도를 엿볼 수 있다. ‘힐링을 위한 염불행법의 현대적 의미(동아시아불교문화 25집)’와 ‘깨달음과 교화에 관한 소고(한국불교학 80집)’는 요즘 스님의 관심사가 대승불교의 보살관, 즉 자리이타를 통한 회향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대변한다.

“수행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지만 이것을 중생의 제도로 회향한다는 ‘입전수수’의 가르침이 오늘날 한국불교계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논문만이 아니다. ‘너무 멀리서 찾지 마라’ ‘명상, 마음치유의 길’ ‘경전 숲길’ 등의 저서도 수행의 방법과 경전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전하기 위한 노력의 결실들이다. 스님의 연구와 집필이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맞춰 호흡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한 학기 수업을 마치며 제자들이 마련한 조촐한 축하의 자리. 수업에는 빈틈 없는 정운 스님이지만 학생들을 살갑게 대하는 모습은 마치 언니, 누나 같기로 유명하다.

▲학문의 목표는 무엇인가.
“솔직히 말해서 교학을 시작할 때 무엇을 해야겠다거나 무엇이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부가 좋았고 다른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그들이 신심을 일으키는 것에 보람을 느꼈다. 교학을 통해 부처님의 은혜와 대중의 시은을 갚을 수 있었다. 교학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이에게 책을 읽어 줄 수는 있었겠지만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진심을 담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내 수업과 강의, 집필 등이 누군가에게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주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어떤 학문의 목표보다도 커다란 결실이다.”

▲다른 분야와 달리 선학이 갖는 의미는.
“선학은 불교의 핵심 사상에 대한 접근이다. 대승불교의 북방계인 우리나라에서는 선사상이 중심이다. 그것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불교의 근간을 유지하기 힘들다.”
 
정운 스님은 ‘우리나라 불교는 보석과도 같은 존재’라고 강조한다. 오랜 시간 중국선종을 연구했기에 우리가 갖고 있는 수행과 교학의 전통이 얼마나 빛나는 유산인지 더욱 절감한다. 중국불교는 공산화와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쇠락했다. 선종의 뿌리는 중국에 있지만 “선학을 위해 반드시 중국에 가야 할 필요는 없다”고 스님은 단언한다. 우리에게도 그 이상의 자료와 전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경전을 구하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당나라로 유학 가는 것은 까마득한 옛날이야기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을 연구하고 우리에게 맞게, 현대사회에 맞게 발전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때”라고 강조한다.
 
▲출가자 감소하고 출가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교육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
“예전에는 무조건 참선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교학을 더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느낌이다. 출가자의 나이와 학력이 높아지는 등 변화 특성에 맞춰 교학은 현대적으로 변모해야겠지만 전통적인 수행의 측면도 강화돼야 한다. 실참이 없었다면 불교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승가대학의 교육도 변하고 있다.
“각 승가대학이 독특한 학풍을 구축했으면 좋겠다. 개성 있는 학풍으로 출가자를 양성한다면 그 속에서 불교는 더욱 다양한 문화의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승가의 구성원에게 통일된 교육과 습의를 익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당연하다. 출가를 자유라고 표현하지만 승가에게는 세속보다 더욱 엄격한 규율이 요구돼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본인의 마음이 얼마나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는가가 수행자의 성장이다. 몸은 엄격하지만 마음은 자유로워야 한다. 반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승가교육은 그 과정의 출발이다.”
 
하지만 스님은 그 모든 것을 다 하려고 종종걸음치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스님의 글, 강의, 책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아 그들의 언어에, 그들의 시야에 맞게 전하는 것이 지금 스님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곳 니련선하원이 10여년 째 삶의 냄새 흠뻑 배어있는 도심 한가운데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니련선하 강물이 수행자 싯다르타의 고행 흔적을 씻어내고 성도의 기운을 불어 넣었듯 이 작은 도량서 흘러나오는 스님의 글과 책, 강의가 예토의 삶 버거운 누군가에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수행의 인연을 맺어주는 감로일지 모른다. 그렇기에 스님은 오늘도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있다. 작은 노트북을 필봉 삼아 부지런히 써내려가는 글 줄기들이 메마른 도심을 부처님 법향으로 촉촉이 적시는 강물처럼 보이는 이유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힘들 때도 웃음 잃지 않는 긍정형…10년 된 공부모임도 항상 진지
 
내가 본 정운 스님
 
운문사승가대학장 일진 스님=정운 스님은 늘 단정하고 조용한, 그러면서도 밝은 얼굴로 생활하는 긍정적인 성격의 학인이었다. 졸업 후에는 학문과 문서포교에 매진하면서 주어진 여건에 안주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스스로의 자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매사에 꼼꼼하고 세심하게 배려하며 후배나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는 큰 책임감을 지니고 있다. 교육자로서 좋은 자세이지만 그런 무게감에서 조금은 벗어나도 괜찮다. 지금 삶의 모습 그대로도 후학들에게는 충분히 길잡이가 될 만한, 자랑스런 운문사승가대학의 동문이다.
삼선불학승가대학원 조교수 원과 스님=동국대서 함께 강의하며 가까워졌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 두루뭉술하게 타협하는 성격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다른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뚜렷한 관점을 갖고 있지만 다른 관점이나 생각이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열어 놓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기 때문에 누구와 어떤 주제의 대화를 하든 다양한 견해를 주고받을 수 있다. 다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다. 수업을 할 때 비구학생들이 수업에 충실하지 못한 경우 불편한 관계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눈감아 주는 일 없이 원칙적으로 판단하고 처리한다. 지금도 정운 스님과 만나면 경전이나 교리 등에 관한 대화가 주를 이룬다. 신변잡기나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없다. 늘 공부하고 누구에게든 배우려는 자세로 노력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경전공부 모임 회원 전지연씨=10여년 전 조계사에서 스님에게 ‘금강경’ 강의를 들은 것이 인연이 되어 지금까지 7명의 재가불자들이 가르침을 받고 있다. 한 달에 두 번씩 모여 경전과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경전 강의도 쉽고 명쾌하지만 불자의 올바른 신행과 마음가짐에 대해 더욱 많이 배우게 된다. 모든 가르침이 경전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스님의 행동이나 모습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다. 공부모임이 10년 넘었으면 친목모임이 될 법도 하지만 웃고 떠들기보다는 여전히 진지하게 공부하는 분위기가 유지되는 것은 빈틈을 보이지 않는 스님 덕이다. 그러다 보니 신도들도 자연스럽게 스님을 닮아가게 됐다. 지금껏 한 번도 신도들에게 불사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을 정도로 주변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성격이지만 그 때문에 식사 한 끼 공양 올리기도 조심스러울 지경이다.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교학자이지만 가끔은 빈틈도 좀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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