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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해 불화가 들려주는 덕담

기자명 정진희

신중과 성신 통해 무병장수·소원성취 기원

▲ ‘제석천룡도’, 1750년, 비단채색, 173×204cm, 국립중앙박물관.

정말 다사다난이란 말이 딱 맞았던 한 해가 가고 정유년 새해가 왔다. 새로운 한 해 모든 일이 형통하길 바라는 마음에 만나면 첫인사로 서로 덕담을 건네는데 가장 일반적인 내용은 한마디로 ‘건강히 오래오래 장수무병하시고 부자 되셔서 행복하시길 바란다’는 것이다. 사찰에서도 일반 가정집과 같이 ‘통알’이라는 신년하례인사를 하며 한 해 평안하고 건강하게 보내자는 첫출발의 마음을 다잡는다. 사실 덕담으로 건네는 부자 되고, 오래 살고, 복 많이 받으란 말들은 속세의 탐진치 삼독에 걸리는 물질과 욕심에 기인하는 말들이다. 필자도 납의(衲衣)의 출가수행자처럼 이 세상을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무소의 뿔처럼 멋지게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다. 하지만 그러한 경지는 까마득히 높은 산꼭대기에 꽂힌 깃발처럼 눈에는 보이지만 부단히 마음을 닦는 노력 없인 이루지 못할 꿈이란 것을 알기에 새해가 되면 불특정 다수의 신에게 올 한해도 복 많이 받아 건강히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는 기원을 남발하는 범부의 희망을 품고 산다.

신중은 수승한 능력 신들 조합
신중기도로 재앙 사라지길 염원
염원 성취 신속한 회답 바라며
‘치성광여래도’ 북두칠성 그려

새해에 기원하는 수많은 소원을 이루어 주는 수승한 능력을 가진 신들이 종합세트로 구성된 조합이 바로 신중(神衆)이다. 때문에 사찰에서는 해가 바뀌면 신중기도를 올려 화엄신중의 옹호 하에 불법공부에 전념하게 해달라는 기원과 함께 모든 재앙은 사라지고 소원성취하기를 바라는 염원을 기도한다.

사찰에 걸린 불화를 불교미술 초발심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필자는 종종 사진에 비유하곤 한다.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는 석가부처님을 중심으로 영축산의 야단법석에 참석했던 성중들이 모여 함께 찍은 단체기념사진이고 아미타내영도는 아미타여래와 협시보살님들이 극락왕생을 바라는 영가를 맞이하는 모습을 찍은 스냅사진이다. 같은 방식으로 신중도를 풀이해 보면 우리들 범부가 염원하는 이 모든 꿈들을 들어주는 각각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 단체로 기념촬영한 모습이다.

본래 신중이란 인도의 신화와 종교에서 유래한 신들을 불교에서 수용하여 부처와 그 가르침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 ‘화엄경’에 나오는 39위 화엄신중이 그 시작이지만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전래되면서 거기에 각각의 지역에서 호응이 높은 천신들이 더해져 104위까지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신중화에 등장하는 천신들은 각각 재난을 제거하는 식재(息災), 행복과 장수, 사업의 번창을 비는 연수(延壽)와 증익(增益), 그리고 재앙의 악신이 범접하지 못하게 하는 항마의 역할을 한다. 때문에 신중화를 그려 봉안하는 마음에는 사는 동안 재앙을 물리고 복을 누리며 무병장수하는 기원이 있는 것이다. 신중도에 그려지는 인물들이 천룡팔부중, 사천왕 등 갑옷과 무기류를 손에 들고 있는 무장형의 인물들이 많은 이유는 불교가 국가의 통치이념이었던 시절 신중은 국가를 안위하고 백성들의 평안을 염원하는 호국신앙적인 성격이 강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중화 속의 무장들은 나라를 지켜주는 천신들로 조직된 막강한 군대와 같다. 하지만 신앙의 성격이 타력적 기복신앙으로 변천되면서 신통에 의한 개인적인 염원을 이루는 신비주의 경향이 강조되게 되었고 이에 우리나라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산신(山神), 정신(井神), 칠성(七星)과 같은 토속신들이 더해지게 되었다.

신중도는 제석천도에서 시작되었다. 여신 혹은 보살형으로 그려지는 제석천은 벼락을 무기로 악마를 정복하는 신들의 제왕으로 장수와 복을 주는 천신이다. 일설에서는 신중의 기능이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적 기능이 강하기 때문에 따로 전각을 마련하지 않고 사찰의 주전각에 봉안된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월저당 도안의 ‘北辰殿記(북신전기)’에 따르면 북두칠성을 모시는 전각에 천궁의 제석과 명왕이 함께 모셔지고 있어 호법신장적 의미와 더불어 각각의 특성에 따른 기원이 있어 주전각과 별도로 따로 모셔지고 있었다.

▲ ‘향림사 치성광여래 설법회도’, 조선후기, 지본채색, 188×187㎝. 국립중앙박물관.

신중도와 같이 새해의 덕담 등의 소원을 들어주는 신들이 그려진 불화가 ‘치성광여래도’이다. 우리에게 ‘칠성도’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이 그림은 밤하늘의 북두칠성을 의미하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이 신앙했던 해와 달을 비롯하여 별들의 신을 그린 것이다. 화면의 중앙 치성광여래 아래 보관을 쓰고 앉아 흰 수염이 멋진 위엄 있는 노인은 자미대제를 그린 것이다. 자미대제는 도교에서 북극성을 의미하는 천신으로 일본에 남아 있는 안택(安宅)을 기원하는 부적에는 북극성신인 현무대제가 그려지고 있어 북극성은 새해 첫 달인 정월 한 가정의 안녕과 번영을 비는 성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래된 ‘치성광여래도’에는 북두칠성이 아닌 구요(九曜)가 함께 그려져 있었다. 밤하늘의 북두칠성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한다는 성수신앙은 한민족의 뿌리 깊은 민족 신앙이었기에 조선 후기부터 ‘치성광여래도’에는 구요가 아닌 북두칠성이 화면의 주요 구성체가 되고 있다. 북극성신과 함께 그려진 북두칠성 일곱 별은 각각 이루어 주는 소원이 정해져 있다. 북두 제1 천추성(天樞星)은 자손만덕이요, 제2 천신성(天璇星)은 장애와 재난을 없애준다. 제3 천기성(天璣星)은 업장을 소멸해주고, 제4 천권성(天權星)은 바라는 바를 들어준다. 제5 옥형성(玉衡星)은 백 가지 장애를 없애주며, 제6 개양성(開陽星)은 복덕을 고루 갖추게 한다. 마지막으로 요광성(搖光星)은 수명을 길게 해주며, 북두칠성 일곱 별은 약사칠불과 같은 의미를 담아 칠성여래라는 부처님으로 그려지고 있다.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모든 별들은 인간세상의 고뇌와 고통을 없애주는 신성을 지니고 있었기에 이전 조선전기 이 그림은 재앙을 없애준다는 의미에서 ‘소재회도(消災繪圖)’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한 폭의 그림에 안택을 기원하는 불교와 도교의 북극성신이 다 그려졌던 까닭은 염원의 성취에 대한 신속한 회답을 바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화면에 인간의 길흉화복과 수명을 주재하고 자손을 번창하게 해 준다는 북두칠성이 칠성여래와 칠원성군, 동자칠원성군의 3중적 구조로 그려진 이유도 세 배로 빠르게 소원을 들어달라는 기원자의 염원이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현상이 신중신앙과 권선서(勸善書)의 영향에 의한 것이고 칠성신앙의 분파 확대에 따른 것이란 학술적 연구가 있지만 보는 대로 느끼는 필자의 감상은 그러하다.

‘신중도’와 ‘치성광여래도’에 그려진 신중과 성신(星辰)은 ‘그대에게 닥쳐올 재앙은 모두 사라져 복 많이 받고 무병장수하시고 모든 소원성취 하시오’라는 덕담을 사시사철 사부대중에게 건네고 있다.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고픈 마음에서 인간의 의지대로 풀 수 없는 마법과 같은 기적을 바라는 소원을 담아 정초 사찰을 찾은 도반님들은 마음을 열어 천신들이 건네는 덕담을 잘 들으셔서 새해 소원성취 하시길 바란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74호 / 2017년 1월 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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