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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 깊이 새겨야 할 것들

깊이 새기는 게 신수봉행
부처님 가르침을 비롯해
사회 희생자 잊지 말아야

불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관용어 중 하나가 신수봉행(信受奉行)이다. ‘믿고 받아들여 받들어 행한다’는 의미다. 경전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말에는 온몸을 던져 진리의 삶을 살겠다는 서슬 퍼런 결기가 담겨있다. 송나라 학자 정이천이 ‘논어를 읽기 전이나 읽은 뒤나 똑같다면 그 사람은 논어를 읽지 않은 것이다’라고 했듯, 불경을 읽고 나서 ‘신수봉행’의 노력이 없다면 결코 불경을 읽었다고 할 수 없다.

2600년 전 인도에서 살다 가셨던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참으로 희유한 일이다. 학자들은 고대 인도사회에 문자가 등장한 것이 기원전 3세기경으로 추정한다. 불경이 문자로 기록된 것도 기원 전후로 보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500여년 이상을 문자에 전혀 의지하지 않고 입에서 입을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승해왔음을 알 수 있다.

불경은 그 어느 종교의 성전보다 방대하다. 후대 편찬된 대승경전을 제외하더라도 부처님의 원음이 담겨 있다는 니까야도 마찬가지다. 2889개의 경전이 포함돼 있는 상윳타를 비롯해 디가, 맛지마, 앙굿타라, 쿠다카 등 5가지의 거대한 경전 모음집으로 이뤄져 있다. 게다가 율장과 논장의 분량도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면 옛 불교인들은 그 내용을 어떻게 후세에 전할 수 있었을까.

전통적으로 인도는 암송문화가 고도로 발달했다. 바라문들은 신의 언어로 여기는 베다를 토씨 하나 다르지 않게 전승하는 독특한 방법을 고안하기도 했다. 불교는 바라문의 정형화된 기존의 암송방법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어느 학파 못지않게 새롭고도 강력한 구전의 전통을 만들어갔다. 바로 불교수행의 핵심인 사티(sati)의 활용이다.

마음챙김,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되는 사티의 1차적 어원은 기억이며,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장은 이를 ‘새김’으로 번역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다시 그것을 끌로 돌에 새기듯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새겨나갔다. 이러한 과정을 인도학 연구자인 심재관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붓다의 가르침을 제자들이 반복적으로 암기했다는 것은, 불경을 그들의 육체에 새겼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히 기억은 인간의 뇌 속의 해마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다. 혀와 턱 관절, 목과 허리가 반복적으로 요동치면서 만들어진 소리의 진동이 뇌에 전달된다는 점에서 불경의 구전은, 곧 성스러운 문신의 의미가 된다. 붓다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그 가르침을 암기를 통해 평생 육체에 반복적으로 새겨놓았다.”

▲ 이재형 국장
불경은 그런 수많은 불제자들에 의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지혜가 없는 지식은 있어도 지식이 없는 지혜는 있을 수 없다. 부처님 말씀을 공부하지 않고 지혜롭기 바라는 것은 마른 우물에서 두레박질 하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다.

정유년 한해 우리는 부처님 말씀을 떠올리고 몸과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럴 때 삶이 바뀌고 번뇌의 굵은 사슬도 끊어낼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또 기억해야 한다. 무능한 정부의 대응에 무참히 죽어간 세월호 희생자들, 지하철역에서 숨진 19살 정비원 청년, 여성혐오로 살해당한 피해자, 비정한 부모의 폭력 앞에 죽어간 아이들, 눈을 감기 전에 일본의 진정어린 사과를 받고 싶은 위안부 할머니들,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고위공직자와 정치인들, 국정을 농단한 비선실세, 여기에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학살된 3000만이 넘는 동물들... 이들 모두를 우리 뼛속 깊이 새겨야 한다. 그럴 때 차별과 불평등으로 인한 피눈물이 멈추고 우리 사는 세상도 비로소 정토와 가까워질 수 있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75호 / 2017년 1월 1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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