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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차-불교의 도깨비

기자명 정진희

풍요 가져다주는 심술궂지만 순박한 신

▲ 비사문천왕과 권속, 당, 견본채색, 37.6×26.6㎝, 대영박물관.

우리나라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깨비는 귀신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그렇다고 서양 동화에 나오는 요정은 더더욱 아닌 뭐라 꼭 집어 설명하기 곤란한 전설에 나오는 잡신 가운데 하나였다. 터무니없고 까닭 없는 일을 도깨비장난이라 하는 걸 보면 도깨비는 장난을 좋아하는 허무맹랑한 캐릭터에, 불로 혹은 빗자루로 변하는 걸 보면 둔갑술도 꽤 하셨나 보다. 세상이 변하면서 우리네 삶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던 도깨비가 요즈음 핫한 드라마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죽음으로 인도하는 무서운 저승사자도 친근감마저 느끼게 되니 참 사람의 마음이란 오묘하고 현대사회에서 매스미디어의 힘은 대단하다.

설화서 야차로 비유되는 도깨비
숲에 살며 초자연적인 힘 갖춰
불교에 흡수돼 불법수문장 변모
모든 세계 두루해 인간 변신도

우리나라 도깨비는 부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다. 무섭고 심술궂지만 순박하고 인간에게 속을 만큼 착하다. 중국에서는 어떤 짐승이나 사물이 오래되면 정령으로 변하고 그 정령이 도깨비로 된다고 하며 일본 도깨비 ‘오니’는 뿔이 달리고 가시가 박힌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뿔 달린 도깨비로 생각하는 이미지는 실은 일본의 오니에 가깝다. 우리나라 설화에서도 청년이 밤새 씨름한 도깨비는 날이 밝자 피 묻은 빗자루로 변했다 하니 중국과 도깨비의 개념이 유사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박기용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고려대장경’에 전하는 도깨비 관련 설화는 총 195화에 달하고 있다. ‘불설미증유인연경(佛說未曾有因緣經)’에서 도깨비는 ‘지옥의 죄를 마치고 아귀로 태어나 이매(魅), 망량(魑魅) 따위의 도깨비로 돌아다니기 8000겁을 지나서 아귀의 죄를 마치고는 6축(畜)의 몸을 받았습니다’라 하여 생물이 오래된 정령이거나 아귀의 일종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에서 하늘과 땅의 정령들과 수명이 다하여 죽은 신선이 다시 살아나서 도깨비가 되었다고 한다.

불교설화에 등장하는 도깨비는 주로 야차(藥叉, yaksa)로 비유되는데 원래 야차는 숲이나 나무에 사는 정령으로 그 모습은 보이지 않고 초자연적인 힘을 갖추고 있다. 야차는 자비심 많은 성격을 가짐과 동시에 공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신이 되기도 한다. 불교로 흡수된 야차는 악신에서 부처의 교화를 받고 불법을 수호하고 지키는 수문장으로 변화한다. ‘대방등대집경(大方等大集經)’에 의하면 12신장이 주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교대로 감시한다. 12신장은 12야차대장이라고도 부르는데 ‘약사경’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약사여래의 본원공덕에 대하여 법문을 설하실 때 그 소식을 들은 12야차대장들이 그 설법회에 참석하여 큰 감화를 받고 ‘약사유리광여래의 명호로 공경, 공양하는 모든 사람을 옹위하여 일체의 고난에 벗어나게 하고 바라는 소원을 이루게 하겠다’는 서원을 세웠다. 이에 의거하여 야차12신장은 불법을 옹호하는 호법신이 되었다.

불교에서 야차의 왕은 북방 다문천왕을 달리 부르는 비사문천왕이다. 원래 비사문천왕은 인도 신화에 나오는 재물과 보화의 신인 쿠베라(kubera)가 변용된 것인데 이와 같은 연유에서 도깨비가 부자를 만들어 준다는 신앙이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돈황 17굴에서 발견된 비단그림에는 왼손에 부처님이 모셔진 불탑을 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비사문천왕과 그를 따르는 권속을 그린 불화가 있다. 권속 무리 끝에 그려진 도깨비 야차는 검은 피부에 근육질 몸매로 눈이 불거지고 코끝은 뭉툭한 돼지 코 형상이며 코에 바짝 붙어 양쪽으로 갈라진 입술에는 뾰족한 윗니가 그려져 인상이 험상궂다. 붉게 그린 머리카락은 모두 솟구쳐 있으며 목에는 해골처럼 보이는 장식이 달린 목걸이를 하고 있어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 분노의 형상이다.

 
▲ 연화배경 도깨비와 산수배경 도깨비 문양전, 백제, 각각 29×29㎝, 두께 4㎝, 국립부여박물관. 보물 제343호.

우리나라 불교에서 도깨비는 사찰을 지키는 수호신이며 재앙이나 귀신, 질병 등 사람을 해치는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고마운 존재이다. 전라도 강진 사문(寺門)안 석조상에는 중국 불화에 그려진 도깨비와 유사한 형상을 한 인물상이 새겨져 있는데 머리에 뿔이 있고 눈을 부라리며 방망이를 든 도깨비 모습이다. 13인의 인물형상이 새겨진 이 돌기둥은 원래 월남사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었던 것으로 돌기둥에 새긴 인물들은 악귀를 물리치고 사찰을 수호하는 호법선신의 역할을 한다.

부여 규암면 외리 절터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는 도깨비를 나타낸 무늬벽돌이 두 점 있다. 뾰족하고 긴 손톱과 발톱을 갖고 부라린 두 눈은 튀어 나올 듯 부리부리하다. 그리고 돼지 코처럼 생긴 두툼한 코 바로 밑에서 갈라진 입 속에는 송곳니가 날카롭다. 과장되게 나타낸 당당한 상체와 눈코입만 표현된 얼굴 주위로는 타오르는 화염문이 선명하여 사납고 무서운 귀면임을 나타내고 있지만 전체적인 느낌은 금방이라도 장난을 칠 듯 익살스럽고 귀여운 모습이다. 두 개의 도깨비 전돌을 나란히 놓아 붙이면 하부의 모서리 문양이 서로 이어지고 있어 아마도 이 두 개의 도깨비 전돌은 번갈아 이어서 깔렸을 가능성이 있다. 사찰의 입구 통로나 복도에 도깨비 문양 벽돌이 쭉 이어서 깔려 있었으면 아마 재앙과 악귀는 사찰 주변에 범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불설라마가경(佛說羅摩伽經)’에서 도깨비 신은 모든 세계 두루하고 법계의 평등한 모든 중생을 위하여 보기 좋아하는 몸으로 나타났다고 하니 불교의 도깨비는 인간의 몸으로 변신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신격이다. 그러면 한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보여주셨던 멋진 도깨비님의 보기 좋은 모습은 이래저래 어지러운 상황으로 인해 슬픈 우리네 중생들을 위로하는 하나의 방편이셨나 보다.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되는 이 시기 불교 도깨비 야차의 초자연적인 힘을 빌어 모든 불자님의 가정에 재앙과 악귀가 범접하지 못하고 도깨비 방망이에서 쏟아지는 금은보화의 기운으로 부자 되시길 바란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78호 / 2017년 2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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