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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 가임기 여성들 탓 아니다

기자명 이중남

경제 컨설턴트 해리 덴트의 ‘인구절벽’이라는 저서가 소개되면서 요즘 ‘인구절벽’이라는 용어가 드물지 않게 사용되고 있다. 출간 전 미국 행정부에서 사용하던 ‘재정절벽(fiscal cliff)’을 본뜬 조어(造語)라고 하는데, 인구 변동은 장기간에 걸쳐 추세적으로 증감하며 또 여러 지표들을 통해 충분히 예견되는 것이므로 ‘인구’에 불측의 급전직하를 비유하는 ‘절벽’을 붙인 것은 그다지 적당한 조어법이 아닌 듯하다.

그렇지만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용어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용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여러해 전에 정부 외국인정책위원회가 ‘제2차 외국인정책기본계획(2013~2017)’을 통해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가 2016년에 정점을 찍고 줄어들기 시작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은 적도 있다. 인구감소의 무서움은 절벽에서 떨어지듯 급격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미리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알고도 당한다는 데 있다.

증감 없이 인구를 현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합계 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은 보통 2.1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난 15년 동안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초저출산 기준치인 1.3명을 상향 돌파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몇 년 째 OECD에서 붙박이 최저 출산국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수년 내 베이비부머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가 개시되면 가장 먼저 주택 가격이 폭락할 것이고, 두 눈 뻔히 뜨고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뒤따르게 될 것이다. 일단 그 단계에 진입하고 나면 정부가 가진 정책수단들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일본의 경험은 말해 준다.

지난해 말 행자부가 행정구역별 임신·출산 통계와 가임기 여성 수 등을 표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라는 것을 온라인에 공표했다가 “여성을 가축으로 보느냐”는 등 강력한 항의를 받고 곧바로 내린 촌극이 있었다. 아이를 임신, 출산하지 않는 가임기 여성들에 문제의 원인을 돌리는 심리가 은연중에 없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저출산은 가임기 여성을 탓한다고 해결될 만큼 간단한 현상이 아니다.

지난 달 발생했던 ‘워킹맘’ 공무원의 과로사 사건은 이 땅에서 아이를 기르는 직장인 여성들이 나날이 대면하는 혹독한 현실을 단적으로 폭로한다. 보건복지부 소속 5급 공무원인 그 여성(35살)은 세 아이의 엄마로서 출산휴가를 끝내고 직장으로 복귀한 뒤 첫 7일 간 매일 근무했다.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 쉬기는커녕 오후 시간을 아이들과 보내기 위해 오히려 새벽 5시에 미리 출근했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 간 도합 70시간을 넘게 근무하던 그는 일요일 오전 청사 안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진 채 발견됐고, 곧바로 병원에 옮겨졌으나 사망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회사’에 다니는 워킹맘의 현실이 이렇다면, 그보다 못한 대다수 워킹맘들의 처지야 말 다했다. 맞벌이는 대세가 되었지만 출산과 보육은 여전히 엄마의 몫이고, 모든 기업이 과로를 열정으로 착각하고 권장하며, 육아휴직을 신청하는 남성을 승진 포기자 쯤으로 취급하는 문화. 이런 곳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슈퍼우먼이 될 자신이 없는 평범한 직장 여성들에게 자녀는 잉태되는 그 순간부터 축복이 아니라 족쇄다. 남편의 벌이만으로 육아에 전념하다가 나중에 비정규 단순직을 전전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의 삶은 좀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다른 게 아니라 이것이 인구통계로 드러나는 초저출산, 출산파업의 본령이다.

한 치 앞을 분간 못할 정국이지만, 그 덕분에 대선에 뜻을 둔 잠룡들과 정당들이 저출산과 과로 문화와 관련해 이런저런 공약성 담론을 선도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이것은 가임기 여성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며, 부동산 가격 같은 경제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행복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을 십분 성찰하고 이제라도 공론을 통해 현실성 있는 제도적 개선책을 찾아야 할 때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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