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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박경용의 ‘대추나무에’

기자명 신현득

아미타부처님 48대원보다 많은
열매 맺고 싶은 대추나무의 원력

작고 매끄러운
수다스런 잎들 사이로
반짝!
구슬 같은 것이 와서 박힌다.

반짝!
또 하나가 와서 박힌다.

작고 매끄러운
파닥거리는 잎들 사이로
반짝! 반짝!
자꾸만 구슬 같은 것이 와서 박힌다.

무얼까?
잡고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들?
내 꿈 조각 같은 것들?

아니다!/ 반짝!/ 대추 한 알.
아니다!/ 반짝!/ 대추 또 한 알.

작고 매끄러운
동그란 잎들 사이,
반짝! 반짝! 반짝!
쉴 새 없이 구슬 같은 것이 와서
박히는 자리마다에
아, 잡으면 잡히는 것들
대추, 대추, 대추들.
대추가 열고 싶은
대추나무에.

동시는 내용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이는 시의 부류다. 이런 동시 특성을 동시의 투명성이라 한다. 동시는 거울 속처럼 시의 내면이 환하다. 거울 속을 들여다보는 마음가짐으로 시의 내면을 들여다보자. 대추나무는 지금 대추가 열고 싶은 거다. 대추나무의 원력이다. 새해가 되었고 봄도 오고 있으니, 대추나무는 한 해 동안 할 일을 더듬어서 원력을 세운 것이다.

시인도 이해 못할 비시 많지만
동시의 투명성을 보여준 작품
동시가 서정시의 알맹이임을
표현 하나마다 담아 느끼게 해

“금년은 우등생이 돼 봐야지.” 이것은 새해를 맞은 초등학교 꼬마의 마음다짐이다. “금년은 새로 구한 씨앗을 심어 가꿔봐야지.” 이것은 새해를 맞은 농부의 계획이다. “금년은 몇 개 나라에 수출을 늘여야겠어.” 이것은 사업가의 생각이다.    

대추나무는 이보다도 계획이 많다. 작은 가지 끝마다 몇 천 개 아니, 몇 만 개의 동글동글한 예쁜 열매를 열고 싶은 것이다. 

동그랗고, 수없이 반짝이는 대추 열매를 열고 싶은 대추나무의 그 원력은 아미타의 48대원보다도 엄청 많다. 이것을 원력으로 내세우고, 대추나무는 기도의 다라니를 외우고 있다. 그러자, 잎이 돋으려는 가지에 벌써부터 반짝이는 구슬 알이 와서 매달리는 걸 느끼게 된다.

반짝! 반짝! 반짝! 쉴 새 없이 구슬 알이 온다. 수많은 구슬 알이 날아서 온다. 잡으면 잡히는 꿈 조각들이다. 대추나무의 소원인 동그랗고 반짝이는 열매가 꿈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것이 시의 내면에서 보이고 있다.

그 표현, 그 흐름, 그 울림, 그 판타지가 얼마나 시다운가. 그래서 동시를 서정시의 알맹이라 한다. 동시는 참으로 할 만한 시 작업이라는 걸 이 한 편의 시에서도 느낄 수가 있다.

이 시는 시가 어렵다는 생각을 물리치고 있다. 시인들도 머리가 아픈 시는 제쳐 두고 읽는다. 시인이 이해하지 못하는 시가 얼마든지 있다. 시인이 이해할 수 없는 시라니? 그 대개가 엉터리 시다. 이를 비시(非詩)라 한다. 세상에는 엉터리 시, 비시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동시에서 작품성이 부족한 시는 있을 수 있지만, 비시라는 언어로 견줄 수 있는 시는 없다. 동시는 투명한 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의 독자는 동시를 읽을 일이다. 동시는 어린이에서부터 전 국민이 읽는 국민의 시인 것이다.

동시 시단에서는 동시를 국민 모두가 읽고 즐기는 국민의 시로 발전시키자는 계획을 세워놓고 실천해 가고 있다. 세계에서 앞서 가고 있는 한국 동시는 세계의 아동문학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시점에 있다. 

동시 ‘대추나무에’의 지은이 박경용 시인(1940~ )은 1960년대 초부터 한국의 동시문학을 일으켜 온 공로자의 한 사람이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379호 / 2017년 2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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