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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얼굴 없는 불상의 비밀 -양주서상 그리고 류살하 ①

기자명 오중철

양주서상, 산을 가르고 출현해 정치적 길흉 예고

▲ 영창현 성용사 터의 불상. 불상 주변에 남겨진 홈과 틀이 과거 이 상에 비교적 복잡한 목조 시설을 갖추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대대적인 중수공사로 불상이 서상전 내부로 모셔져 있다.

중국 감숙성 무위시 영창현의 어산(御山)에는 성용사(聖容寺)란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던 이 절은 최근 대대적인 중수작업이 한창이다. 그중 산자락에 기대어 세워진 서상전(瑞像殿)에 모셔진 불상은 그 모습이 자못 괴이하다. 전당의 중앙에는 흔히 예상되듯 멋지게 조각되고 장엄된 불상은 보이지 않고, 마치 본래 산자락의 바위가 자연적으로 형성한 것처럼 보이는 어떤 형상이 보인다. 언뜻 보면 그 자태가 마치 가사를 걸치고 서 계신 부처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괴이한 것은 이 형상에는 부처님의 두상에 해당하는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이를 처음 마주하는 예배자라면 누구나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상이 돈황석굴에서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고 가장 중시되었던 서상, 즉 중국불교미술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불상 중 하나로 꼽히는 양주서상의 모태가 된다는 점이다.

북위 태무제 시대 승려 류살하
어곡산에 불상 출현 예언 남겨
“상호가 부족하다면 난세 도래”
성용사 얼굴 없는 불상과 연결

막고굴 237굴 주실 천정부에는 ‘반화도독부 앙용산 번화현북 성용서상(盤和都督府 仰容山 番禾縣北 聖容瑞像)’이라는 방제(旁題)가 달린 입불상이 벽화로 모셔져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오른손은 아래로 드리운 채 손바닥을 보이고 있으며, 왼팔은 반쯤 올린 채로 법의를 움켜쥐고 서 있다. 불상의 뒤로는 겹겹이 그려진 산자락이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와 같은 도상적 특징을 전형으로 하는 불상은 보통 ‘번화(番禾, 지금의 영창현) 서상’, 혹은 ‘양주(凉州, 지금의 무위시) 서상’이라 불린다. 방제에서 드러난 지명을 볼 때, 이 상이 영창현 성용사와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형상적으로 온전치 않은 성용사의 무두불(無頭佛)과, 완연한 상호를 갖춘 돈황석굴의 양주서상이 어떻게 연결이 된다는 것일까?

양주서상에 관한 이야기는 당나라 도선(道宣, 596~667)율사의 저작에서 처음 나타난다. 664년 경에 편찬된 ‘속고승전’과 ‘집신주삼보감통록’의 기록들을 종합해보면, 양주서상에 대한 사연은 대략 다음과 같다. 북위(北魏)의 태무제가 집정하던 435년경, 류살하(劉薩何)란 이름의 승려가 양주 번화군 동북지역에 이르러 어곡산을 바라보며 장차 이곳에서 불상이 출현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덧붙여 말하기를, “만약 그 불상의 모습이 원만하고 구족하면 장차 태평성세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 상호에 무언가 부족함이 있다면 곧 난세가 도래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겪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로부터 80여년이 지난 520년 어느 날, 번개가 치더니 산이 갈라지고 일장 팔척 크기의 석불상이 솟아나왔는데, 불상의 머리가 없었다. 곧 장인을 불러 별도로 두상을 만들게 하여 안치하였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내 떨어지고 말았다. 이때는 북위의 국운이 기울어 동서로 분열될 환란을 앞둔 시기였다. 북위가 망하고 북주(北周)가 세워진 해(557년)에 양주성 동쪽에서 홀연히 불두(佛頭)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이를 가져다 어곡산의 불상에 안치해보니, 꼭 맞았다. 이를 기념하여 561년에 이곳에 서상사란 절을 세웠다. 북주 무제가 즉위한 건덕초년(572)에 수차례 불상의 머리가 떨어지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오래지 않아 무제의 폐불조치가 단행되었다. 이때 서상사도 폐사의 운명을 피해갈 수 없었지만, 오직 석상만은 무사하였다. 수나라 건립 후 609년에 수양제가 이곳을 참배한 후 감통사(感通寺)라 개명하였다. 또한 전국에서 장인들을 불러들여 이 불상을 모사하고 널리 유포하게 하였다.

▲ 막고굴 72굴 남벽의 양주서상 변상도의 일부(복원 및 선묘). 좌측에 상하로 배치된 두 부처의 상이 벽화의 중심축에 해당한다. 상단은 천상에서 법회의 중심에 자리한 부처를, 하단은 사바세계에서 현현한 양주서상을 나타내고 있다.

정치적 길흉을 예고하는 서상, 인도나 서역의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중국 본토에서 산을 가르고 출현한 불상이라는 점은 분명 당시 대중들의 마음을 잡아끄는 요소였음에 틀림없다. 양주서상은 북위 시기부터 단독상으로 조성된 예가 확인되고 있으며, 지역적으로 감숙, 산서, 섬서, 심지어 사천 등 비교적 광범위하게 유행하였다. 돈황석굴의 경우 8세기 전후에는 막고굴 203굴, 300굴, 323굴 등에서 주존으로 모셔졌고, 이후 오대와 송대에 그려진 불교감통화 가운데에서도 그 위상이 특별이 강조되었다.

▲ 막고굴 237굴 주실 천정부의 양주서상.

돈황에 새겨진 양주서상의 백미는 막고굴 72굴의 벽화라 할 수 있겠다. 72굴 주실 남벽은 보통 경전을 주제로 한 변상도로 채워져야 할 자리인데, 특이하게도 이곳을 양주서상을 위한 완벽한 텍스트의 공간으로 할애하였다. 화면 속에서 관객은 상의 출현, 불두의 출현과 이탈, 류살하의 예언 등 중요한 서사의 장면들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양주서상에 대한 당시 대중들의 종교적 관념도 명확히 읽어낼 수 있다.

미술사학자 우홍(巫鴻)은 벽화 중앙의 축을 따라 상하로 자리한 두 부처님 상의 구도에서, 사바세계에 현현한 서상(하단)과 그 상의 원형으로서의 천상(天上)의 부처(상단)라는 이원적 개념을 도출한 바 있다. 실제로 벽화의 설계자는 각 장면에 덧붙여진 방제에서 이를 ‘석가성용상(釋迦聖容像)’과 ‘석가불(釋迦佛)’로 구별하여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시의 대중들은 양주서상을 특별한 정치적 서상으로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신앙적 실재를 확인케 하는 중요한 매체로 인식하였을 것이다.

이쯤 되면 성용사의 얼굴 없는 불상이 어떻게 양주서상과 연결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을 가르고 불상이 솟아나왔다던가 불두가 이탈하였다는 전설은 성용사 불상이 자연석으로서 두상이 결여된 내력과 부합되는 부분이다. 더군다나 성용사 상 주변에 남겨진 갖가지 홈과 틀은 이 상을 중심으로 복잡한 목조 구조물이 설치되었음을 추정케 한다. 또한 상의 뒤로 보이는 탑 내벽 2층의 벽화에는 양주서상의 도상이 그려져 있어 양자의 관계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 중국학자 순시우션(孫修身)에 의하면, 발견 당시 본래 이 상에서 떨어져 나간 불두가 함께 있었다 한다. 북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불두는 현재 영창현 문화관에서 따로 보관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있다. 이 특별한 불상의 출현을 예언한 류살하란 인물은 도대체 누구인가? 이 신승은 혜달이란 법명으로도 불렸는데, 바로 지난 회에서 지옥에서 계시를 받고 아육왕 탑상을 참배했다는 그 승려이다. 당시 남과 북의 유명한 성상의 참배자이자 예언자로 등장하는 이 인물의 행적은 양주서상에 담긴 종교적 함의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실마리의 한 축을 형성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살펴보고자 한다.

오중철 중국 사천대학 박사과정 ory88@qq.com
 

[1381호 / 2017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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