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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꽃은 단순한 꽃이 아닐 수도

기자명 최원형

마음 오고 가는 꽃다발에도 생태계는 슬프다

베란다에서 추운 겨울을 지낸 군자란이 막 꽃대를 밀어올리기 시작했는데, 집안에는 장미, 튤립, 양귀비, 카네이션 등 활짝 핀 꽃들로 화사함이 가득하다. 거기에 프리지아의 싱그러운 향기까지 더해지니 봄기운이 물씬 느껴졌다. 갑작스레 집안에 꽃이 만발한 까닭은 작은 아이가 졸업식 때 받은 꽃다발들 덕분이다. 꽃다발 포장을 풀어 꽃을 꺼내서 크고 작은 화병에 꽃아 집안 곳곳에 두었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기분이 좋아졌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화병에 꽂고 나니 남겨진 쓰레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꽃을 묶었던 철끈부터 꽃다발을 예쁘게 장식하느라 들었던 비닐 포장지며 포장 끈이 한 가득이다. 기쁜 마음이 오고가는 일에도 쓰레기가 남다니 불편하기 짝이 없다.

꽃다발 포장도 결국엔 쓰레기
장미농장 많은 케냐 환경훼손
농약 등으로 어부들 피해 커
사찰서도 화분 활용 고민해야

한편에서는 졸업시즌이어도 꽃이 팔리지 않아 화훼농가의 시름이 깊다는 소식이 들린다. 불경기 탓도 당연히 영향을 끼쳤겠으나 요새는 꽃다발보다 현금이나 실리를 따지는 선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국내 생산되는 꽃이 장미, 국화 등 외국에서 수입한 꽃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고 있는 현실도 화훼농가에 시름이 깊어지는 한 원인이다. 사정이 이러한 마당에 꽃다발에서 나온 쓰레기문제를 얘기하는 게 대단히 조심스럽긴 하다. 그럼에도 꽃 문화에 대해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꽃을 키우는 일에는 대단히 많은 에너지와 물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과 꽃다발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남겨지는 쓰레기 문제 때문이다.

최근 관혼상제에 화환을 받지 않겠다고 미리 알리는 경우를 종종 접한다. 몇 년 전 한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가 꽃 화분을 선물 받았다. 작은 장미꽃이 소담스런 화분이었는데 인기가 많아 금세 동이 났다. 작년연말 한 환경단체에서도 후원의 밤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선물로 자그마한 화분을 나눠줬다. 이곳에서 받은 화분에는 관엽 식물이 심겨있었고 아직 어려 볼품은 그리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집에 남아있는 화분은 후자다. 장미꽃 화분은 내 실수였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꽃이 지자 이내 시들더니 그만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관엽 식물은 그 사이에 아주 훌쩍 커서 화분을 한번 바꿔줬다. 새로 잎이 나오는 것을 지켜보는 기쁨이 크다. 선물로 받은 게 만약 꽃다발이었다면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겠지만 화분이어서 오래 두고 볼 수 있다. 화분을 볼 때면 화분을 나눠준 단체를 떠올리고 그들의 활동을 생각하곤 한다. 

유럽 장미의 70%가 아프리카 케냐에서 비행기로 공수된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얘기다. 케냐의 축복받은 날씨는 장미를 키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문제는 장미가 날씨만으로는 절대 키울 수 없다는 데 있다.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나이바샤 호숫가에 자리 잡은 화훼단지가 호숫물을 끌어다 쓰면서 일대는 물 부족을 겪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장미를 키우면서 뿌려댄 농약이며 화학비료로 호수는 오염되었다. 호수에서 어업으로 생계를 잇는 이들에게까지 피해는 실로 엄청났다. 장미 한 송이를 키우는 데 들어가는 물의 양은 대략 10리터 정도라 한다. 비행기로 장미를 나르는 동안 소비되는 에너지 소비며 온실가스 발생 또한 엄청나다. 그러니 장미 한 송이는 단순히 ‘들에 핀 한 송이 어여쁜 꽃’일 수가 없는 것이다.

꽃은 절에서도 공양물로 많이 올린다. 싱싱하게 꽃을 보관하기 위해 절에서 꽃전용 냉장고를 사용하는 곳도 어렵지 않게 만난다. 화사하게 피어있는 꽃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준다. 그런데 그 꽃이 지고 났을 때 일순간 쓰레기로 전락하는 것은 어찌해야할까? 꽃을 싱싱하게 유지하기 위해 냉장고를 돌리며 소비하는 전기에너지, 그로인해 발생하는 온실가스로 티베트 고원의 빙하가 녹고 있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냉장고 보관이 필요하지 않는 작은 화분으로 바꾸는 건 어떨까? 일정기간 공양물로 올려 졌던 화분은 절에 온 신도들에게 나눠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절에서 가져온 화분이라면 더욱 정성들여 키울 테니 그 기쁨이 클 수도 있겠다. 그렇게 키우는 식물들은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온실가스도 줄일 수 있고 시든 꽃을 처리하느라 발생하는 쓰레기양도 줄일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닐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82호 / 2017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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