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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동아시아불교의 역사적 성격-중

대승불교 참뜻 추구하며 이상세계 구현 위해 노력 경주

▲ 혜능 스님이 은둔 생활을 마치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 삭발 수계한 중국 광주 광효사. 광효사에는 혜능 스님으로부터 시작된 ‘비풍비번’ 공안을 상징하는 깃발이 곳곳에 걸려 있다. 사진 가운데 탑은 혜능 스님의 머리카락이 들어있다고 전하는 의발탑이다.

한역대장경을 근거로 성립된 동아시아 불교권의 또 다른 공통적인 특징은 대승불교를 중심으로 발전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스리랑카·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타이 등 남아시아 불교권이 소승불교(小乘佛敎 또는 上座佛敎)를 중심으로 전개된 것과 크게 다르다. 인도불교의 발전과정에서 본다면 원시(原始 또는 根本)불교에서 소승[部派]불교로 발전하고, 다시 대승불교가 흥기하였는데, 중국에 불교가 전래된 시대는 인도에서 이미 대승불교가 융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인도로부터 중국에 전해진 불교는 인도불교의 발전과정과는 상관없이 대승과 소승이 뒤섞여 들어오는 가운데 대승불교가 주류가 되었다. 그리하여 중국불교인들은 처음부터 대승불교를 가지고 출발하여 오직 대승불교의 참뜻만을 추구하여 일승불교(一乘佛敎)의 교학체계를 확립하고 그 이상을 구현하려는 노력을 집중하였다.

1세기 중반 쿠샨왕조 탄생
불교의 중국 전래 본격화

한 무제의 흉노 토벌 계기
불교 전래 극적 계기 마련

시기 뒤섞인 경전 중국 전래
교설을 분류하는 교판 성립

화엄종은 중국불교의 극치
중관·유식 통합한 새 불교

중국불교에서 선종 성립은
분석에서 직관으로 전환한
중국 독창적 불교의 전형

인도불교는 마우리아제국의 붕괴 이후 왕후나 도시 상공업자의 지원으로 번영하였는데, 각 부파는 서로 경쟁적으로 고도의 교리연구를 진행하여 다수의 논서들을 만들어냈다. 본래 초기불교에서는 경전이나 논서가 속어[프라크리트]로 기록되었는데, 기원전 2~1세기경부터 브라만교의 성전어인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는 부파[說一切有部]도 나타났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경부터 보수적인 부파불교를 비판하는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승불교의 기원에 대해서는 종래 부파불교 가운데서 진보적인 대중부와의 관계가 주목되었다. 대중부에서는 다른 부파에 비하여 붓다의 절대성과 이타적인 보살행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히라카와 아끼라(平川彰)에 의해 대승불교운동의 기원을 불탑숭배(佛塔崇拜)에서 찾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늘날 이 신설에 대하여 찬반 논란이 있지만, 불탑숭배와 대승불교운동이 재가성(在家性)·대중성(大衆性)·타력본원성(他力本願性) 등에서 공통의 기반을 갖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대승불교운동자들은 출가자 개인의 완성을 추구하는 종래의 보수적인 종교활동을 이기적이며 독선적인 열등한 길, 즉 ‘소승(小乘, Hinayana)’이라고 비판하면서 자신들의 ‘대승(大乘, Mahayana)’과 구별하였다. 그리고 기원전 1세기경부터 부파불교의 전통에 구속받지 않는 새로운 경전들을 편찬하면서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항하는 자파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독자의 철학사상을 발달시켰다. ‘공(空)’의 이론을 체계적으로 설한 남인도의 나가르주나(Nagarjuna, 龍樹, 150~250경)는 대승불교 철학의 확립자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가 발생한 지역이 어디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남인도의 안드라지방이 대승불교의 한 거점이었던 점은 확실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대승불교 전체의 전개과정부터 보는 경우 가장 중요한 지역은 인도 및 이란·그리스·중앙아시아의 여러 민족과 다양한 문화가 유입된 인도의 서북지역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인도 서북지방은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 이후 파르티아(Parthia, 安息國)와 박트리아(Bactria, 大夏) 등 여러 세력으로 분열되어 있었는데, 1세기 중반 유치(Yuechi, 月氏)라는 유목민의 일파에 의해 통합되어 쿠산(Kushans)왕조가 성립되었다. 쿠산왕조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3대 카니슈카(Kanishka) 왕 때의 세력범위는 아프가니스탄·간다라·카슈미르·펀잡·네팔·베나레스 등을 포함함으로써 서아시아·중앙아시아·중국, 그리고 로마제국과의 무역이 전개되었다. 이 시대의 인도 서북지방은 여러 민족의 문화와 종교가 융합되고 있었는데, 당시 동서의 여러 종교가 혼재되었던 상황은 쿠산왕조 시대 화폐의 이면에 새겨진 신상(神像)들이 잘 보여준다. 대승불교에서 등장하는 붓다와 보살 가운데는 서아시아의 종교에 기원한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미륵보살은 이란의 태양신 ‘미즈라’나 서아시아의 ‘메시아’신앙, 관세음보살은 이란의 여신 ‘아나히타’, 아미타불은 이란의 ‘미즈라’, 극락정토는 유대의 ‘에덴동산’ 등이 각각의 기원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인도의 서북 지역은 불교신앙만이 아니고 사상면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전통적인 부파불교 가운데 특히 설일체유부가 융성하였으나, 새로 일어난 대승불교도 이 지방의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어 번영하게 되었다. 카니슈카왕은 전국적인 규모의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불서의 필사본을 수집하여 토론케 하고, 또한 각 종파 사이의 상이점을 조화시키고 불교의 표준적 교리를 수립케 하였다. 이 종교회의에서는 당대의 대표적인 불교학자인 바수미트라와 아스바고사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는데, 특히 아스바고사는 원래 마우리아 제국의 수도인 파탈리푸트라에서 활동했던 철학자 시인으로서 산스크리트 시문학 걸작품의 하나로 평가되는 ‘석가의 일생(Buddha Charita)’을 저술한 인물이다.

그 결과 대승불전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편찬되었으며, 또한 그리스·로마의 조형사상과 기술이 유입됨으로써 1세기경 최초로 불상이 조성되고 불상숭배의 풍조가 일어났다. 또한 카니슈카왕은 대승불교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그치지 않고, 포교단을 조직하여 중앙아시아와 중국, 티베트에 파견하여 동아시아불교의 주류로 발전시켰다. 아소카 대왕의 업적이 부파불교를 남아시아에 전파하는데 있었다면, 대승불교를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 전파한 공로는 카니슈카왕에게 돌려져야 할 것이다. 중국의 초기 불교전래설화에서 안식국과 대월지국 출신들이 불교전도와 역경의 주역으로 빈번히 등장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인도와 중국을 연결시키는 교통로는 크게 나누어 동지나해를 경유하는 해로(海路)와 중앙아시아를 경유하는 육로(陸路)가 있었는데, 인도의 번역승과 중국의 구법승들은 대부분 해로보다 육로를 이용하였다.

한편 중국과 서역지방과의 교통로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은 전한(前漢)의 무제(武帝)시대, 정확하게는 대월지(大月氏)와 함께 흉노(匈奴)를 토벌할 의도를 가진 한무제가 장건(張騫)에 명하여 서역원정을 추진한 때(기원전 139~126)부터이다. 이후 선제(宣帝)시대에 걸쳐 전한의 세력은 거의 서역 전체에 미치게 됨으로써 인도 서북지역과 직접 연결되는 동서교통로가 열리게 되었다. 이 육로를 따라 동서무역 상인들의 왕래가 빈번히 이루어지게 되었는데, 불교의 전래도 장건의 원정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중국에서 본격적인 불전 번역은 후한(후한) 시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이 시대를 대표하는 역경승은 안식국인 안세고(安世高)와 대월지국인 지루가참(支婁迦讖)이다. 그런데 안세고와 지루가참이 같은 ‘불설’로서 번역한 여러 경전은 각기 소승경전과 대승경전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그들 양자 사이에는 내용상으로나 형태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이점이 있었다. 중국 불교계에서는 당초부터 인도에서 역사적으로 발달한 경론 자체 성립의 순서나 상호관련성과는 무관하게 거의 동시에 번역되고 연구되었기 때문에 무엇이 궁극의 불설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불설 전체를 체계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 요청되었다. 그것은 교판[敎相判釋]이라고 하는데, 경론에 설한 형식·방법·순서, 또는 의미·내용 등에 따라 교설을 분류하고 체계화함으로써 붓다의 참 의도를 명확하게 파악하려는 것이었다.

교판은 불교인의 주체성과 한역경전의 전체에 의거한다는 본질 때문에 중국불교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개성이 형성되어 인도불교와 다르게 교판을 딛고 발전한 불교를 탄생시켰다. 교판은 현재 전해지는 것만 해도 상당수인 데, 수(隋)대에서 확인되는 것만 하더라도 교판 제창자 20여명, 교판 종류 20여종에 달한다. 대부분의 중국 불교인들이 교판 가운데 어느 하나에 의지하여 스스로의 불교사상을 구축하려고 한 결과 다양한 학파와 종파가 형성되었다.

불교사상이 본격적으로 이해되기 시작하는 위진남북조시대에 성립된 대표적인 학파불교는 열반학파(涅槃學派)·성실학파(成實學派)·지론학파(地論學派)·섭론학파(攝論學派)·삼론학파(三論學派) 등이다. 이 가운데 특히 삼론학파는 401년 장안(長安)에 와서 많은 대승경전을 번역하였던 구마라습(鳩摩羅什)의 불교를 이어 수말당초의 길장(吉藏)이 대성한 것인데, 구마라습이 번역한 ‘반야경(般若經)’과 중관불교 논서들은 격의불교(格義佛敎)라는 사이비 이해 단계를 벗어나게 하였다. 본체론적으로 말한 노장철학의 ‘무(無)’와 인식론적으로 말한 반야의 ‘공(空)’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구분하게 된 것은 대승불교의 핵심개념인 ‘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고, 대승불교 철학의 이해기반이 구축되었음을 의미한다.

다음 수·당대에 성립된 대표적 종파불교는 천태종(天台宗)·법상종(法相宗)·화엄종(華嚴宗) 등이다. 그 가운데 천태종은 실상론(實相論)의 극치이고, 법상종은 유심론(唯心論)의 대표이고, 화엄종은 실상론과 연기론을 종합한 법계연기론(法界緣起論)을 세웠는데, 이것은 중국불교가 도달한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화엄종은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주류인 중관학파(中觀學派)와 유식학파(唯識學派) 사이의 공유(空有) 대립을 극복한 통합불교를 성립시킴으로써 인도불교의 아류로부터 독립하여 새롭게 창조된 중국인의 일승불교로 평가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불교계는 독창적인 사상체계를 수립하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그 불교를 실천하고 생활화하는 방향으로 전개시킴으로써 선종(禪宗)이나 정토교(淨土敎) 같은 실천불교를 탄생시켰다. 중국불교사에서 선종의 성립은 교학불교에서 실천불교로의 전환이라는 의의를 가진 것뿐만 아니고, 인도인의 분석적 사유를 중국인의 직관적인 사유로 전환시켰다는 점에서 인도불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근본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그런데 인도의 대승불교를 발전시켜 성립된 중국의 독자적인 불교는 한역경전의 전파와 함께 동아시아 각국으로 유포되어 한국·일본·베트남 등 여러 나라 불교의 원류가 되었다. 동아시아 불교권은 곧 대승불교권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국과 일본의 대승불교 수용에 대해서는 따로 장을 나누어 비교하려고 한다. 그리고 베트남에서도 한역대장경을 수차례 수입하고 있었으며, 또한 중국의 불교를 단계적으로, 그리고 다양하게 수용하고 있었다. 그런데 중국 승관(僧官)제도의 도입, 선종(禪宗, 특히 臨濟宗) 중심의 불교 수용, 유교(儒敎)의 국가적 이념 채용으로 인한 불교의 쇠퇴와 서민대중의 신앙화, 그리고 선과 정토의 융합 등의 면에서 한국불교의 전개과정과 유사한 점이 많이 발견되는 바, 두 나라 불교사의 비교연구가 요구된다.

최병헌 서울대 명예교수 shilrim9@snu.ac.kr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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