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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부정이 긍정으로 전환되는 숲 ②

기자명 김용규

겨울 안에 이미 봄의 씨앗 잉태돼 있다

드디어 봄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남쪽 바다 근처에는 목련이, 섬진강 자락에는 매화가, 산청에는 산수유가…. 지난 주 강연으로 떠돌며 내가 마주한 풍경이 그랬습니다. 분명한 봄을 그렇게 목격하며 새삼 광화문의 풍경이 떠올랐습니다. 새 생명을 키워낼 준비로 분주한 봄, 다시 생기와 온기로 지천이 채워지고 누구라도 삶을 향한 의지로 충만해 지는 이 봄! 그 봄은 어떻게 오는 것일까요? 겨울을 부정하면서 오는 것일까요, 아니면 겨울을 긍정함으로써 오는 것일까요?

칡등 콩과식물 질소고정 능력탁월
거름돼 흙 비옥하게 만들고 소멸

예고한 대로 이번 글은 ‘칡’의 부정이 다른 생명들의 다양하고 찬란한 긍정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을 살펴보겠습니다. 칡이 광포한 발걸음으로 빈 공간을 뒤덮어 오는 숲 절개지, 그곳에 사는 다른 생명들에게 칡이 지배하는 시간의 그 공간은 겨울일 것입니다. 저마다의 소박한 삶을 열망해 볼 빛과 온기와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다가 완전히 사라지고만. 하지만 칡이 앗아간 부정과 어둠의 공간에도 봄은 다시 옵니다. 오히려 그 부정과 어둠을 거름삼아 더 다양한 생명들이 싹트고 성장하면서 활기가 넘치는 공간으로 변해 갑니다. 칡이 장악했던 절망스러운 부정과 겨울의 공간이 더 다양한 생명들을 촉발하며 희망과 긍정의 봄의 공간으로 전환되는 메커니즘은 그래서 지금 우리 사회에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 메커니즘을 이해하려면 긴 시간으로 숲을 보아야 합니다. 지난 호 글 일부를 다시 상기해 봅니다. 부정이 어떻게 긍정으로 전환되는가? 절망이 어떻게 희망으로 전환되는가?

우선 콩과식물이 갖는 생태적 특성 하나를 이해해야 합니다. 칡을 포함한 콩과식물은 질소를 고정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식물은 대기의 약 78%를 차지하는 질소를 직접 취할 수 없습니다. 미생물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콩과식물이 그 미생물들과 손잡고 척박했던 땅을 비옥하게 합니다. 농부들의 밭에서는 콩 농사가, 양분이 부족한 자연의 절개지에서는 칡이 그 노릇을 톡톡히 해냅니다. 한편 서리가 내릴 즈음 칡은 그 너른 이파리를 속절없이 낙엽으로 떨구어냅니다. 흙 표면에 낙엽(유기물)이 보충되면 이제 미생물은 점점 더 확대되고 활력을 갖게 됩니다.

미생물을 먹고 사는 톡토기 같은 토양생물이 자연스레 늘어나고 땅을 기반으로 얽히는 생명들 간의 관계와 순환이 더욱 촘촘해 집니다. 지렁이, 거미, 각다귀, 노래기, 달팽이, 지네, 두더쥐…, 점증하는 생명들의 식생활과 움직임과 배설과 죽음의 순환이 생명의 그물망을 만듭니다. 이 과정에서 흙은 잃었던 제 힘의 기초를 점차 회복하게 됩니다. 흙냄새가 사라졌던 척박한 땅에 서서히 흙냄새가 되살아나게 됩니다. 드디어 너무 척박한 공간에서는 발아되기 어려운 식물의 씨앗이 싹트고 자랄 수 있는 기초가 형성된 것입니다.

한편 다양한 야생의 초식동물들과 소나 염소와 같이 방목하는 초식성 가축에게 칡은 둘도 없는 밥상이 됩니다. 사람을 포함해 이들 동물들에게 간섭과 훼손을 겪으며 칡은 뒤덮었던 제 영역의 일부를 잃게 됩니다. 씨앗의 형태로 기회를 엿보던 칡 이후 시대의 식물들에게 기회가 찾아오고 그렇게 기회를 얻은 식물들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갑니다. 그늘이 드리우고 흙은 점점 더 비옥해집니다. 이런 여건에서는 칡의 씨앗이 싹트지 못하여 마침내 자취를 감추고 맙니다.

지극히 단순하고 광포한 칡의 부정은 결국 이미 그 안에 더 다양하고 찬연한 긍정을 출산하고 사라지는 메커니즘을 품고 있습니다. 거름이 되는 메커니즘인 것이지요. 봄이 겨울을 부정하고 오는지, 긍정함으로써 오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겨울 안에 이미 봄이 씨앗으로 잉태돼 있음은 분명해 보입니다. 칡이 없어야 숲이 아니라, 부정의 공간을 사는 모든 생명들이 제 삶과 역할로 연대하여 마침내 칡을 이기고 넘어서, 그 부정을 거름으로 썩혀낸 공간이 탄생할 때 숲다운 숲, 희망과 긍정의 공간이 열리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김용규 숲철학자 happyforest@empas.com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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