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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처님은 어떻게 부처가 되었는가

기자명 조정육

죽는 순간까지 원수에 경계없는 자비 베풀다

▲ 박대성, ‘법열(法悅)-본존’(부분), 종이에 석채, 192×1161cm, 2006 : 부처님. 당신은 찬탄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당신은 마땅히 온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한 분으로 뒤바뀌지 않은 지혜를 성취하셨습니다. 타고난 복이 많아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그러할 정도로 베풀고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수억 겁의 세월 동안 거듭거듭 되풀이하여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도 베풀었고 현재에도 베풀고 미래에도 베푸실 부처님. 당신을 오늘도 찬탄합니다.

“뭘 이렇게 많이 싸 왔어?”

셋째 언니가 왔다. 염색도 하지 않아 머리가 허연 언니가 배낭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뭔가를 바리바리 꺼낸다.

서운함 잊지 않는 나와 달리
금세 관계 회복하는 셋째언니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자비심으로 대해

선택적 자비, 경계없는 자비
베푸는 것 일체가 당신의 몫

“모시송편 먹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도 그렇지. 무거운데 이렇게 많이 싸 왔어? 어깨 빠지겠네.”
“이 정도로는 어깨 안 빠져.”

미리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는지 송편은 딱딱했다. 이것은 동부송편이고 이것은 깨송편이다, 공부하다 배고프면 참지 말고 몇 개 쪄서 먹어라. 한두 개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다 떨어지면 또 가져올 테니까 말해라. 송편을 꺼내는 내내 언니의 당부가 계속된다. 그런데 계속 움직이는 언니의 손가락이 이상하다. 양손 모두 새끼손가락이 심하게 휘었다.

“언니 손가락이 왜 그래?”
“이거 퇴행성관절염이래.”
“나도 마찬가진데 언니처럼 그렇게 휘지는 않던데?” “많이 쓰면 그래.”
“아니, 손가락도 아픈 사람이 뭐 하러 이런 걸 싸들고 와? 그냥 오지.”

마음이 언짢아진 내가 괜히 심통을 부린다. 셋째 언니는 언니들 중에서 나와 가장 친하다. 유일하게 왕래하는 언니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언니가 네 명인데 셋째 언니를 제외한 다른 언니들과는 별로 연락을 하지 않고 산다. 순전히 나의 성격적인 결함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아직까지 고치지 못하는데 나의 한계다. 나는 누군가 내게 서운하게 하거나 해코지를 하면 결코 잊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앙갚음을 할 정도로 치졸하지는 않다. 대신 관계를 끊어버리거나 만나더라도 어느 선 이상은 결코 마음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뒤끝이 심한 편이다. 형제자매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8남매 중 집안의 대소사 외에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사는 피붙이도 있다. 반면 셋째 언니는 형제자매들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한 가족처럼 지낸다. 언니 또한 나와 똑같은 경우를 당했어도 그에 대응하는 방식이 나와는 전혀 다르다. 언제 서운한 일이 있었냐는 듯 금세 예전의 관계를 회복한다. 언니는 배알도 없어? 언니도 힘들면서 어떻게 그런 사람에게 쌀을 갔다 줘? 내가 그렇게 핏대를 올리면 언니는 딱 한마디로 대답한다. “불쌍하잖냐.” 언니의 마음을 굳이 표현하자면 자비심의 발현일 것이다. 머릿속에 불교교리를 가득 채운 나는 선택적인 자비심을 실천한 데 반해 언니의 자비심에는 경계가 없다. 나는 불이(不二)를 얘기하고 동체대비(同體大悲)를 떠들면서도 ‘마음에 드는 사람만’이라는 예외규정을 두지만 언니는 정반대다. 불이를 모르고 동체대비를 몰라도 언니의 행동은 그 자체가 불교교리다. 저 비틀어지고 휘어진 손가락으로 우리 집에만 떡을 들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경전 구절 한 번 들먹이지 않고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언니. 점심을 먹고 나서는 휘어진 손가락으로 굳이 설거지까지 해 주고 간다.

예전에 탐욕스런 왕비가 있었다. 탐욕스런 왕비가 어느 날 꿈을 꿨다. 히말라야의 어떤 산에 들어갔다 황금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만났는데, 그 모습이 너무 우아해 황금 상아로 장신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다가 깨어났다. 왕비는 왕에게 달려가 코끼리의 황금 상아를 구해달라고 졸랐다. 왕은 히말라야 황금 상아 코끼리를 잡아오는 사람에게 큰 상을 내린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이 포고문을 본 한 사냥꾼이 사냥에 나섰다. 언젠가 히말라야 숲에서 황금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직접 본 적이 있었다. 그 코끼리는 이 숲 모든 동물들의 왕으로, 동물들이 마음속으로 존경하며 따랐다. 그 코끼리는 수행자들 옆을 지나칠 때는 예를 표하고 가곤 했는데 그 모습을 기억해낸 사냥꾼은 수행자로 위장해 독화살을 들고 숲으로 갔다. 사냥꾼은 수행을 하는 척하며 코끼리 왕을 기다렸다. 드디어 코끼리가 나타났다. 코끼리는 수행자로 위장한 사냥꾼을 보고는 다가와 머리 숙여 예를 표했다. 사냥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독화살을 쏘았다. 코끼리는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비명소리를 들은 숲속 동물들이 사방에서 몰려왔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왕을 해친 사냥꾼을 향해 무섭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쓰러졌던 코끼리가 일어나 코로 사냥꾼을 감아 다리 사이로 옮겨 보호했다. 그리고는 안전한 곳까지 걸어가 사냥꾼을 풀어주며 말했다.

“나는 곧 온몸에 독이 퍼져 죽게 될 것이오. 그러나 독이 온몸에 퍼지기 전에 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오. 그 이유는 당신이 살생의 죄를 짓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또 내 황금 상아를 뽑아 당신에게 주겠소. 내가 죽은 후 뽑으면 당신은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오.”

그 얘기를 들은 사냥꾼은 상금에 눈이 멀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것이 부끄러워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호흡이 더욱 거칠어진 코끼리 왕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나를 해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난 그대를 해치지 않았소. 수행자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오. 당신은 큰 악업을 지었지만, 수행자의 옷을 입었던 공덕으로 다음 생에 수행자로 태어날 것이오.”

힘겹게 말을 마친 코끼리 왕은 옆에 있는 커다란 나무를 향해 달려가더니 황금 상아를 세차게 부딪쳐서 이빨을 뽑았다. 그리고는 검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죽어가던 코끼리왕은 죄책감에 떨고 있는 사냥꾼을 향해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와 같은 인연 공덕으로 내가 다음 생애에 부처가 된다면 맨 먼저 그대의 삼독을 빼줄 것이오.”

‘자타카’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다. 여기서 황금 상아를 가진 코끼리는 물론 전생의 석가모니부처님이다. 우리는 부처님을 향해 ‘여래는 마땅히 온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하고 뒤바뀌지 않은 지혜를 성취하셨다’는 뜻으로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라 부른다. 여래가 복이 많아 마땅히 온 세간의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 된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원수를 위하는 마음을 가지셨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에 비하면 내가 자비의 대상을 ‘마음에 드는 사람만’으로 한정지은 것은 얼마나 유치한 발상인가. 목숨까지는 내놓지 않더라도 있는 힘껏 주변 사람을 돕는 언니는 얼마나 부처님께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인가. 모시송편 때문에 행복한 하루. 언니 때문에 부끄러운 하루. 부처님 때문에 더더욱 나 자신을 되돌아본 하루였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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