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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선악 분별하지만, 마음 두지 말라

기자명 정운 스님

모든 사념 떠난 그 마음이 부처

원문:부처님께서 갠지스강의 모래에 비유해 법을 설하셨다. 제불ㆍ보살ㆍ제석ㆍ범천들이 지나갈지라도 모래는 기뻐하지 않는다. 또 소ㆍ양ㆍ벌레가 밟고 지나가도 모래는 화내지 않는다. 진귀한 보배와 향료가 쌓여 있다고 할지라도 모래는 탐내지 않으며 똥오줌의 악취에도 모래는 싫어하지 않는다. 이런 마음이 곧 무심이다. 모든 분별심을 여의어 중생과 제불, 어떤 것에도 차별하지 않는 무심한 경지, 이것이 궁극적인 경지이다. 수행자가 바로 무심하지 못하다면, 아무리 오랫동안 수행해도 이루지 못한다. 성문ㆍ연각ㆍ보살, 삼승의 수행 공덕으로 해탈하지 못한다. 

무심이란 선악 분별하지만
거기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
구하려면 멀어지는 법이니
구하려는 그 마음을 쉬어야

형상에 집착해 악을 짓기도 하고, 선을 짓기도 한다. 형상에 집착해 악을 지으면 윤회에 떨어지고, 형상에 집착해 선을 지어도 고통을 받는다. 모두 말끝에 본 심법을 깨닫는 것만 못하다. 이 법은 곧 마음이요, 마음 이외에 어떤 법도 없다. 이 마음이 곧 법이요, 법 이외에 마음도 없다. 마음은 본래 무심이요, 또한 무심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마음을 가지고 무심하다고 하면, 도리어 유심이 된다. 묵묵히 계합할 뿐, 어떠한 사념을 여읜 마음[경지]이다. 그러므로 언어의 길이 끊어졌으며, 마음의 행처가 사멸되었다. 이런 마음이 본원청정한 부처이며 누구나 다 갖고 있는 것이다. 준동함령이 제불보살과 다르지 않다. 다만 망상분별로 여러 가지 업과를 지을 뿐이다.

해설:원문에서 ‘부처님께서 갠지스강의 모래에 비유해 법을 설하셨다’는 내용은 무심의 실례를 보여준다. 이 구절은 황벽의 설법 중 ‘무심’을 설명하는 대표 문구로 자주 회자된다. 갠지스강의 모래는 고귀한 부처님이나 보살, 혹 이쁜 아가씨가 지나가도 기뻐하지 않는다. 그 반대로 개ㆍ돼지ㆍ소가 지나면서 대소변을 보거나 살인자가 지나가도 싫어하지 않는다. 이렇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차별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그 자체를 무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유마경’에서는 이 무심을 ‘무분별심’이라는 단어로 쓰고 있으며, ‘금강경’에서는 ‘청정심’이라고 하였다.  

수행이 아닌 일상의 삶에서도 적용된다. 상대방을 볼 때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선입견을 두고 자신의 잣대대로 평가하고 결론을 내린다. 대학ㆍ부모ㆍ출신지로 그 사람을 단정 짓고, 상대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인간은 자신의 평가가 마치 보편타당한 것처럼 정당화하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초라한 인간의 군상인가?! 그래서 석가모니 부처님 같은 분이 세상에 출현해 중생의 어리석음을 지적해주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원문에서 ‘형상에 집착해 악을 짓기도 하고, 선을 짓기도 한다’는 내용 이후는 주제가 무심에 관한 선사의 말씀이다. 당나라 때 대주혜해 선사는 ‘돈오입도요문론’에서 이런 말을 하였다. “선악에 다 분별하지만, 거기에 착하지 않는다[善惡皆能分別 於中無着].” 곧 선한 것은 선한대로 악한 것은 악한 그대로 분별하지만, ‘선하다는 것’, ‘악하다는 것’에 대한 분별심을 내거나 관념 두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렇게 조사들은 분별심이나 집착심이 없는 무심에 초점을 두고, 수행의 근간으로 삼았다.  

‘소품반야’에서는 ‘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어떤 마음으로 행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무심, 또는 비심(非心)으로 행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초조 달마 선사도 무소구행(無所求行) 법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이 곳곳마다 욕심 부리는 것을 구(求)라고 한다. 모든 것에 생각을 쉬고 구하지 말라”고 하면서 집착하지 않는 무심을 강조하였다. 

우리 일상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구심훨즉무사(求心歇卽無事)라고, 구하려는 마음을 쉬는 것이 순탄한 삶의 길이다. 구하려고 집착하면 점점 더 멀어지는 법이다. ‘욕력오중배(欲力五重倍)’라고 욕심을 내면 다섯 배의 힘이 더 든다는 말이다. 지나치게 돈을 추구하면 돈이 따라오지 않는 법이다. 성의껏 열심히 살다보면, 부와 명예가 따라오는 것이지, 지나치게 추구함은 오히려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사찰에서 스님들도 소임을 사는데, 어른 스님들이 늘 하는 말씀이 있다. ‘그저 물 흐르는 대로 살려고 해야지, 너무 잘하려고 하면 역효과가 난다.’고. 그러니 매사에 무심하라!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84호 / 2017년 3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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