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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스님! 노후는 잘 준비하고 계신가요?

기자명 조정육

“지금 순간순간 잘 살면 그것이 노후복지”

▲ 박항률, ‘저쪽’, acrylic on paper, 75.3×142.5cm, 2001 : 가세 가세 어서 가세, 저 피안의 언덕으로 어서 가세. 인로왕보살이 앞장서고 관세음보살이 밀어주는 반야용선에 올라 아미타부처님이 상주하는 극락세계로 어서 가세. 나도 가고 너도 가고 잘난 사람도 가고 못난 사람도 가고 우리 모두 함께 가세. 힘을 합쳐 노를 저어 어서 어서 피안의 언덕으로 가세.

“아, 이제 다 살았어.”

있는 돈 없는 돈 모두 털어
사람들에게 보시하는 스님
노후준비 안 하느냐 질문에
“이 순간 잘 살면 노후준비”

치과에 다녀온 남편이 탄식 끝에 붙인 후렴구다. 점심 때 식당에서 밥을 먹다 딱딱한 것을 씹었는데 너무 아파 치과에 갔더니 신경치료를 하라고 했단다. 신경치료가 끝나면 이빨을 씌우는 보철을 해야 하고 그것도 심해지면 임플란트를 해야 한단다. 그러면서 절대로 딱딱한 것이나 질긴 것은 먹지 말라고 했단다. 이제 음식도 함부로 먹을 수 없으니 다 살았어, 다 살아. 남편은 거듭거듭 한탄을 늘어놓는다.

“다 살긴. 이제는 젊은 나이가 아니니까 몸을 살살 부리라는 거지. 김치냉장고도 10년이면 수명이 다하는데 그 작은 이빨로 50년 이상을 썼으면 품질이 심하게 좋았단 소리 아니야? 당신 주변 사람들 봐봐. 우리 나이에 임플란트 안 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나. 물론 이번 생에 누룽지는 더 이상 못 먹겠지만 말이야.”

남편을 위로하기 위해 김치냉장고까지 들먹이며 킥킥거리는데 남편 표정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노후 준비도 안 되어 있는데 벌써 몸이 이러니 그동안 뭐하고 살았는지 몰라. 열심히 살았다고 살았는데 아무것도 남은 게 없네.”

이빨에서 시작된 남편의 신세 한탄은 불확실한 노후로 옮겨졌고 계획 없이 살아 온 시간에 대한 회한으로 계속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스님보다 낫잖아. 스님은 아직도 전혀 정신 차릴 생각을 안 하고 계시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빨리 이빨 치료하고 돈 많이 벌어야지. 우리뿐만 아니라 스님 노후까지 책임져야 되잖아.”

우리가 얘기한 대책 없는 스님은 그야말로 노후가 뭔지도 모르는 스님이다. 아니, 노후를 굳이 준비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분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우리나라 불교계 노후대책은 그야말로 우려할 수준이라고 했다. 수행자가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지 않아 스님들 스스로가 자신의 노후를 준비해야 할 정도로 열악하다. 불교의 발전을 위해서는 꼭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바로 이 스님들의 노후대책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 스님은 얼마 되지 않는 주지월급을 ‘전부’ 털어 사람들에게 보시를 한다. 주로 책보시를 많이 하시는데 어찌나 자주 하시던지 나는 주지월급을 아주 많이 받는 줄 알았다. 그런데 최저생계비를 조금 넘는 액수라는 사실을 알고는 정말 놀랐다. 그런 낮은 급여를 받으면서도 받은 돈 대부분을 다시 보시로 ‘탕진하는’ 스님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빽을 믿고 저렇게 함부로 살까 싶어 물어본 적이 있었다.

“스님은 노후 준비 안 하세요? 연금보험이나 적금 같은 거 들고 있으세요?”

가장 세속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질문이었다. 그런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노후 준비 잘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러시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님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지금 순간순간을 잘 살면 그것이 노후 준비고 보험 드는 것입니다. 복은 짓는 대로 돌아오는 것이 보험입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쥐고 싶어도 복이 없으면 돌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지금 누군가를 도와주면 나중에 누군가 나를 도와주지 않겠어요? 물론 꼭 도움을 받기 위해 복을 짓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보험이 없어도 서로 도와주고 선행을 실천하며 복 짓고 살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것이 진짜 노후 준비입니다. 얼마 전에도 어느 지역의 불교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신행단체에서 피아노가 없다고 하기에 강의료를 전부 회향하고 왔습니다. 돈은 필요한 곳에 있어야 하고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요?”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가장 세속적인 질문에 가장 불교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노후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법이었다. 스님의 대답은, 우리 부부만 노후를 안락하게 살아보겠다는 좁은 생각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해주었다. 혼자 배부르게 사는 것보다 좋은 사람들과 더불어 가는 노후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었다. 수행자의 본분을 잊고 살아 손가락질 받는 스님들도 많지만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부처님법을 실천하며 사는 스님들은 더욱 많다. 그래서 우리 불교는 미래가 밝다.

부처님 시절에는 노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없었을까.

제자 삥기야가 부처님께 물었다.

“저는 나이를 먹고 힘도 없으며 초췌하게 늙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어둠 속에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태어남과 늙음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육신을 가진 존재는 늘 괴로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육신이 있기 때문에 병의 고통이 생긴다. 그러니 그대는 육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부지런히 정진해서 다시는 생사를 받지 않도록 하라.”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처님은 사람으로 태어난 한계와 조건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신다. 사람마다 태어나서 누리는 복덕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조건은 똑같다. 생사(生死)를 피해갈 수 없다는 조건이다. 매번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으로 실천하며 살겠다고 다짐해도 막상 어떤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진짜 잊어서는 안 될 핵심을 놓친다. 노후 준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어디 부실한 이빨뿐이겠는가. 잘 돌아가지 않는 뒷목도 움직일 때마다 저린 손목도 결국 인간으로 태어난 데 그 원인이 있지 않은가. 스님의 대답과 부처님의 가르침은 삥기야와 같은 질문을 하는 나의 손을 이끌어 보다 근원적인 질문 앞에 서게 한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생사가 없는 피안의 세계로 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짜 노후 준비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 곁에 수행자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데 매몰되어 목적을 잊고 있을 때 그 목적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수행자가 수행에 몰두하여 얻은 지혜를 재가신자들에게 전해줘야 한다면 재가신자들은 수행자가 부처님 법을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잘 보필해야 한다. 부처님과 부처님 법과 스님은 불교의 세 가지 보배다. 셋 중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불교는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미얀마나 스리랑카 등에서 수행자는 수행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놓은 수행풍토는 본받을만하다. 수행자는 수행을, 재가신자는 수행자를 보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 그래서 우리 모두 반야용선을 타고 함께 피안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생에서 마무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빨 치료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목적이다. 앞으로도 우리 부부는 부지런히 돈을 벌 것이다. 그래서 삼보를 청정하게 보필하고 지혜를 얻어 피안의 언덕으로 나아갈 것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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