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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

기자명 이병두

1925년 한강 범람할 때 708명 구제

▲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까지 살아있는 부처님으로 칭송하던 청호 스님의 젊은 시절 모습.

청호(晴湖, 1875~1934; 입적 연도가 1936년으로 나온 자료도 있으나 ‘봉은사지’에 표기한 대로 따른다.) 스님은 서울 강남 봉은사 역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열두 살에 강원도 양양 명주사로 출가하기 전 속가의 성은 나(羅)씨이고, 출가 뒤 법명은 학밀(學密)이며, 청호는 법호이다.

1912년부터 23년간 주지 소임
뱃사람 설득해 함께 구조 활동
구조된 사람들이 공덕비 세워

스님은 스물세 살에 구족계를 받고, 스물네 살(1898년)부터 학승으로 명성이 널리 퍼져서 전국에서 학인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 뒤 10년 동안 오대산에서 후학 교육에 온 힘을 쏟다가 서울로 와서 조선불교원종총무원 감사부장 소임을 맡게 되었는데, 이때 스님의 능력과 인품을 알아본 봉은사 판사 이보인(李普仁)의 초빙으로 1912년에 봉은사 주지를 맡은 이래 입적에 이르기까지 23년을 봉은사에 주석하였다.

당시 경기 동남부 지역을 통할하던 봉은사는 30본산 중에서 ‘갑찰(甲刹) 대본사’라는 평가를 받는 곳이었지만, 전각이 부실하고 사찰 재정도 힘들었다. 이에 스님이 절 부근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자립기반을 만들고 전각을 중수하여 오늘날 봉은사의 사격을 갖추게 되었다.

그 시절 본산 주지를 했던 인사들이 ‘친일’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청호 스님에게는 이런 딱지가 붙지 않았고, 오히려 지역 주민들이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공덕비를 세우기도 하였는데 그 사연은 이렇다.

1925년, 을축년 여름에 한강이 범람하여 현재 송파구 잠실 일대가 완전히 물에 잠기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붕과 큰 나무 위로 올라가 “살려 달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누구도 구조 활동에 나서지 못했다. 이 때 봉은사 주지였던 스님이 뱃사람을 수소문하여 “사람을 구해 오는 사람은 후한 상금을 주겠다”고 설득하고 독려하며 직접 뱃사람과 함께 배를 타고 현장으로 가서 노약자와 어린이부터 차례로 배로 옮겨 총 708명을 구해서 봉은사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때 구조된 사람들이 훗날 ‘나청호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羅晴湖大禪師水害救濟功德碑)’를 세우게 되었고, 그때 세운 공덕비는 지금도 봉은사 부도밭의 청호 스님 부도 옆에 서있지만, 사람들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다.(그때 수백 명이 매달려 대피했던 느티나무 두 그루 중 한 그루는 1970년대 잠실개발 때까지 살아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내로라하는 석학·독립운동가·예술가를 비롯하여 기독교계 인사들까지도 이런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시와 그림을 전해왔고, 그것을 ‘후세에 영원토록 전하자’는 뜻에서 ‘불괴비첩(不壞碑帖)’을 발간하기도 하였으니, 당시 사람들이 청호 스님에게 ‘살아있는 부처-생불(生佛)’이라는 찬사를 보낼 만도 하였다.

위 사진에 보이는 젊은 시절의 청호 스님은 눈썹이 짙고, 귀가 부처님 귀처럼 길게 늘어졌으며 코도 오뚝하다. 사진에서 이미 기골이 장대해서 호령을 하면 봉은사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을 것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홍수로 넘실대는 물길이 무서워 뱃사공들도 겁을 내는 상황에서 절 재정을 털어 그들을 설득하고 함께 배를 타고 가서 708명의 목숨을 구한 청호 스님이 주석하던 봉은사가 겉모습을 재정비하는 일뿐 아니라, 스님의 ‘요익중생(饒益衆生)’ 원력과 의지도 다시 살려내게 되길 기대한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85호 / 2017년 3월 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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