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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전각의 소실

기자명 이동식

잎이 무성한 관목 사이와 좁은 바위틈을 지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굽이굽이 길을 돌아 올라가니 시원한 남해가 왼쪽으로 보이고 오른쪽으로 전각의 기와지붕이 보인다. 그런데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둥에서부터 문살, 처마의 석가래, 공포 모두가 금빛이었던 것이다.

그날 해가 완전히 난 것도 아닌데 나는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향일암 원통보전이었다. 그 앞에서 찍힌 기념사진에서도 내 얼굴은 약간 찌푸려져 있다. 눈을 제대로 뜨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2009년 7월19일 낮 여수 남쪽의 향일암에 오른 나는 그렇게 놀란 토끼가 되어 있었다.

향일암, 우리나라의 4대 관음보살의 성지가 아니던가? 우리나라에서 일출이 가장 좋다는 관음성지. 그러기에 이름도 향일암(向日庵)이렷다. 기암절벽을 올라가서 만나는 거침없이 탁 트인 남해, 그 바다 파도 위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누구에게나 큰 감동과 환희심이다. 그러기에 여기서 새해 첫날에 받는 감동은 제일 큰 것이고, 기도와 함께 비는 소원 한 가지는 꼭 들어준다는 소문이 날 만도 하다. 이런 유서 깊은 곳이기에 힘들여 올랐는데 황금의 전각을 보고는 뭔가 좀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그러다가 다섯 달 뒤인 2009년 12월20일 아침에 향일암에 불이 났다는 소식에 깜짝 놀랐다.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화면은 분명 내가 본 향일암 원통보전이었다. 불에 탄 시꺼먼 기둥들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이 무슨 변고이자 재앙이란 말인가?

향일암에는 1년에 100만 명이 넘는 분들이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전에 있던 대웅전이 낡아서 2007년 6월에 해체하고 그 자리에 관음보전으로 새로 지은 뒤 황금색으로 단청공사를 시작해 2009년 6월에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향일암 단청은 엷은 금으로 된 종이, 곧 금박지를 그림이나 글씨, 단청 디자인을 따라 붙인 것이다. 원통보전이라는 현판도 금색으로 붙였다.

여기에 들어간 금이 7킬로그램이란다. 대략 1800돈이 넘고 당시 금값을 한 돈 당 10만원으로 잡으면 1억8000만 원이다. 지금 보면 그리 큰돈이 아니라 하겠지만 참배객들이 1인당 1000원씩 시주한다고 해도 18만명이 내야 하는 돈이다. 서울에 수천억원을 들여 지은 교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 항변할 수도 있지만 아무튼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부처님 전각을 번쩍거리게 하는 데 들어간 것이다.

동남아의 미얀마나 태국은 금으로 전각을 장식하는 것이 전통이겠지만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스님들이 청정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기에 불교 사찰의 당우(堂宇)도 기왕이면 검소하고 단정하고 소박했으면 하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기에 다소 특이한, 눈에 튀는 장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튼 향일암 원통보전은 불사가 끝나 막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때에 우리가 참배를 간 것이고 우리가 다녀간 지 두 달 만에 낙성식을 가졌고 그 낙성식 후 석 달 만에 불 속으로 들어갔다. 화재가 난 뒤에 소방당국도 방화 가능성을 놓고 수사를 했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아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알 수 없다.

2012년 5월 향일암 원통보전이 복원되어 화려하지 않은 단청으로 다시 태어났다. 편액과 주련(柱聯)만 금박으로 예전 황금장식의 흔적을 전할 뿐이다. 새로 짓는 데에 전라남도 도비 5억6000만원, 여수시의 시비 3억8000만원, 국비 1억원, 사찰에서 1억5000만원 등 1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갔다. 아까운 국민들의 세금이 많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지금도 이 불이 방화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더 좋기로는 이런 외형적인 데에 우리 불교가 마음을 팔지 않았으면 한다. 화재 당시 향일암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었다. “복구하더라도 금박은 하지 않은 그대로의 모습이었으면 합니다. 금박 대금은 가난한 절에 시주하시고요."

이동식 언론인  lds@kbs.co.kr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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