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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오세영의 ‘너 없으므로’

기자명 김형중

가장 사랑했던 사람 잃은 슬픔
연기사상 바탕으로 창작한 시

너 없으므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너로 하여 이 세상 밝아오듯/ 너로 하여 이 세상 차오르듯
홀로 있음은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승의 강변 바람도 많고/ 풀꽃은 어우러져 피었더라만/ 흐르는 것 어이 바람과 꽃뿐이랴.
흘러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으므로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세월호 희생된 어린 학생들이
유족슬픔 대신해 쓴 조시 느낌
불교철학 접목시킬 방식 고민
바람직한 삶이 무엇인가 탐구

석가모니가 6년 고행 끝에 깨달은 오도송이라고 하는 연기송(緣起頌)의 내용이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어짐으로 인해서 저것이 없어지네” 이다.

이 세상은 인간과 인간 그리고 인간과 자연이 관계를 맺고 형성되어 있다. 커다란 그물코가 상호 관계를 가지고 인타라망(印陀羅網)을 이루고 있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도 ‘꿈1’이란 시에서 “원주 와서/ 넓은 집에/ 혼자 살아온 것도 칠팔 년/ 늘/ 참말 같지가 않았다… 서쪽에서/ 빛살이 들어오는 주방/ 혼자 밥을 먹는 적막에서/ 나는 내가 죽어 있는 것을 깨닫는다”고 읊고 있다.

인간은 홀로 살 수가 없다. 여자와 남자가 함께 살아야 귀여운 아이가 생긴다.

그래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 별나라에서 혼자 산다면 그것은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부모와 자식, 친척과 친구, 스승과 제자 그리고 사회와 나의 상호 공동체 속에서 나의 존재 의미와 가치가 드러난다.

오세영(1942~현재)의 ‘너 없으므로’는 시인이 가장 사랑한 사람을 잃고 그 아픔을 불교의 연기(緣起) 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쓴 시이다.

“너 없으므로/ 나 있음이 아니어라” “흘러흘러 남는 것은 그리움/ 아, 살아있음의 이 막막함이여/ 홀로 있으므로 이미/ 있음이 아니어라”

이 시는 3년 전 세월호 참사로 맹골도 바다 속에 수장된 304명의 어린 학생들이 죽은 유가족의 슬픔을 대신하여 쓴 조시(弔詩)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꽃다운 청춘 고등학생 자식과 부모와의 죽음의 이별은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이다. 온 나라 국민은 상주가 되어 함께 울었다.

드디어 3월23일, 3년 동안 차디찬 바닷물 속에 잠겼던 세월호가 뭍으로 떠올랐다. 자식을 잃고 미쳐서 산 부모에게 죽은 자식이 다시 살아옴이다.

오세영의 시는 동양철학, 특히 불교철학을 접목시키는 방식을 고민하였다. 인간 존재의 실존적 고뇌를 불교사상에서 주장하는 무명(無明)의 깨달음을 통해서 극복하며, 영원성을 얻은 바람직한 인간의 삶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

그의 시론 ‘현대시와 불교영향’에서 “불교가 문학 그 중에서도 현대시에 끼친 영향은 단지 선시(禪詩) 창작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다. 선시가 아닌 일반시에서도 알게 모르게 반영되어 있다”고 구체적으로 시인의 작품을 예화로 들어서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또한 “서구 문명사는 위기에 처해 있다. 그들의 문명사적 종말을 새로운 이념의 확립으로 극복하고자 하며 그 대안의 하나로 동양의 예지, 그 중에서도 불교나 노장사상을 탐색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서구의 현대시론이 불교의 세계관이나 선사상으로부터 많은 자양을 섭취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고 하였다.

현대시에서 표면상으로는 불교와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그 심층에 있어서는 불교의 영향을 깊이 받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오세영은 서울대학교에서 현대시를 가르치고 있는 시인 교수이다. 양손에 시 창작과 시 이론의 양검을 거머쥔 한국시단의 종장이다. ‘오세영 시 전집’과 다수의 시론집이 있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386호 / 2017년 4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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