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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기자명 광전 스님

얼마 전 오래된 도반들과 함께 일본 오사카근처의 구마노고도(熊野古道)를 다녀왔다. 일본의 고승 홍법대사의 등신불이 모셔져 있는 고야산 주변의 순례길로 사찰과 신사, 그리고 아름다운 숲으로 이어진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에 이어 두 번째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길이었다. 일본인들은 기이반도의 산에 신들이 살고 있다고 여겨 고대로부터 숭배해왔다. 특히 구마노 삼산(구마노혼구, 구마노나치, 구마노하야타마 대신사)과 고야산 지역을 신성하게 여기며 이곳을 지나는 구마노고도 순례길을 만들었다. 일본인들은 구마노고도 순례길을 걸으면 큰 복을 얻는다고 생각하며, 길에서 겪는 어려움이 클수록 그 복도 크다고 여긴다. 종교적으로는 일본 본토신앙인 신도와 외래 종교인 불교가 융합된 형태의 신앙을 지니고 있다.

며칠간 아름다운 순례길을 걸으며 우리는 이상한 점을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숲길이 정상을 향해 나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에 오르면 의례 정상을 밟고 내려와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나라의 등산로와는 달리, 구마노고도 순례길은 산 중턱쯤에서 굽이굽이 다음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준비해준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고 행복해하며 하루에 대여섯 시간 이상을 걸었다.

우리의 삶에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듯 순례길은 마찬가지였다. 다양한 풍경과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고마운 시골 아저씨도 만날 수 있었고, 길을 묻는 우리에게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불친절한 아주머니도 만날 수 있었다. 길은 정말 우리의 인생과 닮아 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보지 못한 새로운 길을 가고 있다. 선거로 뽑힌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었으며, 새로운 대통령을 뽑기 위한 선거가 한 달 남짓 남아있다. 또 우리 종단도 올 10월이면 새로운 총무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총무원장이 된들 큰 차이가 있겠냐는 생각이 들다가도, 아직 가보지 못 한 길을 떠나기 직전의 어리석은 설렘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더 나은 새로운 세상이 되길 기원하는 마음이 드는 건 중생의 헛된 희망일까?

미디어를 통해 보수와 진보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 차이가 너무 큰 것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무엇 때문에 저리도 다르게 생각할까? 이기적이라 그럴까? 아니면 정말 나쁜 사람들일까?

그것은 아마도 제한된 정보의 차이에서 오는 생각의 차이가 주된 원인일 것이다. 현실에 대한 상황인식, 그리고 그 원인에 대한 분석, 후보로 나서는 인물들에 대한 정보의 부족 때문에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시시비비를 하고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제한된 정보에서 오는 판단의 오류가 우리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그 영향이 다시 우리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

그것은 어쩌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닌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다만 선택에 따르는 책임을 달게 감내할 수만 있다면 저 굽이굽이 돌고 도는 순례길처럼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행운도 시련도 우리에게 큰 교훈을 안겨줄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의 모퉁이에 서 있다. 두려움을 떨치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갈림길에서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왜일까?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앞장서 가는 사람은 외롭고 힘들 것이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 다른 이들이 그 길을 걸을 것이고 세월이 지나면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이 될 것이다. 우리의 삶에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에 있을 것인가? 다만 어떤 후회를 할 것인가 하는 선택만이 우리에게 남겨져 있을 것이다.

광전 스님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chungkwang@yahoo.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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