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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호 스님

기자명 구담 스님

간절함이란 무엇일까

▲ 작업실에서 지장보살도를 표현하고 있는 지호 스님의 모습, 2017년 3월.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이라 출가자 중에 작업에 몰두하는 분을 모시고자 발원하면서 작업과 수행이 일행으로 이루어지고 간절한 기도의 정향(定香)이 작품으로 성취되는 수행자를 찾아 나섰다. 인천의 굴포천역에서 내려 걷자 교회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건넨다.

사경으로 불보살 형상 표현
글자크기 2mm에 농담까지
사경화로 법당 장엄 발원해

“하나님 믿으세요.”

건물마다 작은 교회들로 몸살이다. 이윽고 건물 3층 포교당으로 오르자 지호 스님의 작업실이자 불법을 일구는 도량이 반겨준다. 작업실에는 스님의 손을 타고 밭고랑을 흐르는 가갸거겨의 숱한 불음(佛音)들이 농담 짙은 법수(法數)의 수묵으로 활짝 핀 검댕 부처님으로 화현하고 있다. 한자 한자 찍고 꺽는 붓놀림이 기이하다, 화려하다.

보통은 불화, 사경화라고 알려져 있지만 스님은 정작 ‘사불화(寫佛畵)’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언뜻 멀리서보면 보통의 불화이려니 하지만, 다가설수록 모든 선과 점 하나 하나가 부처의 음성이 담긴 경전으로 화폭에 펼쳐져 있음에 모든 이가 경탄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제껏 글씨로 부처의 형상을 옮긴이는 알려진 바 없었기에, 사경으로 그림을 그리는 스님의 업장은 두텁고도 고행에 가까워보인다.

스님은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서 스님들을 볼 기회가 자주 있었고, 훗날 자연스레 출가의 불연을 맺게 되었다. 어떤 인연인지 출가 이후 사경을 수행으로 다짐하게 되었고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듯 쉼 없는 용맹정진의 연속이었다. 따로 그림을 공부한 적이 없던 스님에게 어느 날부터 부처님의 모습이 글씨로 자꾸 떠오르기 시작했고, 스님은 떠오르는 대로 글씨로 부처님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고창 선운사에서 지장보살님을 그릴 당시였다. 화폭에 부처님을 그리다가 붓을 잡고 그대로 잠들기를 반복하다 꿈에서 평소 존경하던 스님들과 티베트의 린포체 스님을 친견하고 무릎 꿇고 수기를 받게 되었다. 환희심으로 화폭이 눈에 선하게 들어왔다. 처음 글을 쓸 당시 2cm 였던 글자크기를 2mm까지 치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로인한 육체적 한계가 절실해서일까, 치아가 뿌리까지 뽑히는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깨알 같은 작은 글씨를 겹겹 그리다 보면 어느새 시간은 멈춰버린다. 바로 삼매다. 보통 한 작품에 하루 13시간씩 석 달은 족히 걸리는 작업에 지금까지 ‘법화경’ ‘금강경’ ‘지장삼부경’ 등이 씌어져 불보살의 존격으로 승화되었다. 그려진 한 자 한 자 명암의 조화가 어우러져 어느덧 불화의 회화성을 담보로 한 문자 특유의 조형미까지 갖추게 되었으니 새로운 불화의 기틀을 여미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글씨와 그림의 절묘한 대비가 상호의존적 관계 설정으로 점차 모든 삼라만상을 담아낼 수 있는 넉넉한 그릇으로 변용된 것이다.

지호 스님은 다시 간절함을 서원한다. 먼저 채색을 통한 ‘칼라차크만다라’와 ‘석가모니만다라’를 완성 지었고, 금니의 선묘를 활용해 작품세계를 확장시키고 나아가 분채도 자신의 사불화에 적용시키고자 계획하고 있다. 법당 전체를 사경으로 표현한 사불화로 장엄하기를 재고축(再告祝)하고, 이번 생애에 이루어보고자 또 다시 붓을 든다.

어릴 적부터 수전증을 앓던 스님은 사불화 작업 때만큼은 떨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도 전생에 티베트 승려였을 거라던 스님은 이 일을 어떤 보람을 찾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손사래를 친다. 그저 초발심만 지속하게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라며 말을 줄인다.

구담 스님 불일미술관 학예실장 puoom@naver.com
 

[1387 / 2017년 4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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