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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제주도 성지순례 ① 한라산 존자암-영실기암-병풍바위

기사승인 2017.05.22  13: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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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0오름 품은 한라서 900아라한을 친견하다

   
▲ 영실코스를 걸어 한라산을 오른다는 건 900아라한이 상주하는 성지를 오르는 것이다. 병풍바위 부근서 조망한 한라산 오름과 제주 바다.

제주(濟州)의 옛 이름은 탐라(耽羅)! ‘탐’은 섬(島)이고, ‘라’는 나라(國)이니 탐라는 ‘섬나라’란 뜻이다.

발타리존자 연유한 존자암
불래(佛來)오름에 존재해
섬나라 최초 불교전래 전설
수직절벽·기암괴석에 새겨


삼국시대 당시 북방의 고구려 영향권에서는 벗어나 있던 탐라였지만 중부지역서 활개 쳤던 백제에는 조공을 바쳐야 했을 만큼 국력은 미약했다. 백제와 달리 신라는 섬나라를 나름 경계했다. 신라 주변 9개국의 침입을 막고자 조성한 황룡사 9층 목탑. 그 목탑의 4층은 탐라를 상징한 것이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탐라는 통일신라에게 조공을 바쳤고, 고려가 들어서자 다시 고려에게 조공을 바치며 나라의 명맥을 유지해 갔다. 그러나 고려 숙종 10년(1105) 탐라국은 고려의 지방행정구역으로 편입되면서 탐라군(耽羅郡)으로 격하됐다. 이는 나라로서의 독립성을 잃었음을 의미한다. 고종 원년(1214) ‘탐라군’은 다시 ‘제주군’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 다소곳이 서 있는 절벽과 석주가 불법을 경청하고 있는 불제자들 형상이다.

제주도 중앙에 우뚝 솟은 한민족의 영산(靈山) 한라산(漢拏山). 한(漢)은 은하수이고, 라(拏)는 잡아당긴다는 뜻이니 직역하면 ‘은하수를 당기는 산’이다. 별을 잡을 만큼의 높은 산(해발 1950m)이라는 뜻일 게다. 산 정상에는 전설 속 흰 사슴이 노닐었다는 백록담이 있다. 

그 백록담 서남쪽 해발 1600여m의 위치서 아래로 약 250여m 일대를 사람들은 ‘신령스런 기운이 서려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아 영실(靈室)이라고 불러왔다. 영실에는 수직 암벽과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통칭 이 암석들을 일러 ‘영실기암’이라고 한다. 그 영실에 오백나한이 상주한다 하여 친견하고자 한라산을 오른다.

영실 탐방로 입구에 들어서니 소나무 향이 짙게 풍겨온다. 향에 실려 온 바람은 청량하기 그지없다. 중국 당나라의 그 누군가가 ‘소나무 그늘 아래/ 돌을 베고 잠이 드니/ 달력도 없는 산속에 / 추위가 다해도 세월 가는 줄 모른다’고 했는데 그루터기에라도 잠시 앉았다가는 제주의 봄이 지나도 모를 것만 같다. 해발 1280m의 산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한적한 산책로를 걷는 듯하다.

   
▲ 전면에 가로로 길게 펼쳐진 바위가 병풍바위다.

계단이다. 올 것이 왔구나! 하나 탓할 일 아니다. 오백나한이 상주하는 성지로 가는 계단 아닌가. 땀 한 방울에 계단 하나와 맞바꾼다 해도 기꺼이 오르리라!

장관이다. 하늘을 떠받드는 기암괴석들이 산마루에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산 중턱에 우뚝 솟은 암벽들은 압권이다. 수직절벽인데 하나같이 합장한 채 누군가의 말에 귀 기울이며 다소곳이 서 있는 형상이다.

그렇다. 석가여래의 법을 경청하고 있는 불제자들의 모습이다. 하여, 누군가는 인도의 영축산(靈鷲山)을 떠올려 저곳을 통칭 영실(靈室)이라 했고, 또 누군가는 불법에 의지해 깨달음을 이룬 나한을 떠올려 암벽과 석주를 두고 오백나한이라 칭했다. 500나한은 제주의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들려 줬던 900아라한에 닿아 있다.

   
▲ 아라한이 운집한 영실.

제주도에는 300여개의 오름이 있다. 그 중 불래오름은 ‘부처님이 오신다’는 ‘불래(佛來)’의 뜻을 함축하고 있다. 일설에는 보리수의 제주도 방언 ‘볼레낭’에서 유래됐다고도 한다. 불교와 밀접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 불래오름에 존자암(尊者庵)이 자리하고 있다. 존자암 최초 창건설은 홍유손(1452~ 1529)의 ‘소총유고(篠叢遺稿)’에 실린 ‘존자암개구유인문(尊者庵改構侑因文)’에 실려 있다.

‘존자가 암자가 된 것은 세 성씨가 처음 일어날 때 창건되어 세 고을이 정립한 뒤에까지 오래도록 전해졌다. 이들은 사냥 해서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하루는 바닷가에 밀려온 나무함을 발견해 열어보았더니 돌함과 사자(使者)가 있었다. 돌함을 열자 푸른 옷을 입은 세 처녀와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씨가 있었다.’

제주도와 관련한 세 성 즉 양씨, 고씨, 부씨의 성씨(姓氏) 시조신화는 양성지가 1454년 편찬한 ‘고려사 지리지’와 ‘영주지’(1450년), 1416년 정이오의 ‘성주고씨가전’(1416년),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나와 있다. ‘고려사 지리지’를 보자.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태초에 사람이 없더니 한라산 북녘 기슭의 모흥혈(毛興穴)에서 양을나(良乙那)·고을나(高乙那)·부을나(夫乙那) 3신인(三神人)이 솟아났다.’

   
▲ 전면에 솟은 오름이 불래오름이고, 그 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둥근 산이 산방산이다.

제주시 이도동에 있는 삼성혈(三姓穴. 제주사적 134호)에는 지금도 세 개의 구멍이 남아 있는데 이 곳을 모흥혈로 보고 있다. 세 신인이 거주했다는 고을은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이다. 고고학계에서는 탐라의 부족국가 태동을 기원전으로 보고 있다. 홍유손의 기록을 토대로 본다면 한반도 최초불교전래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보다 훨씬 빠르다. 탐라의 불교전래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한 토막이 있다. 저 500나한과 연관 있다.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大阿羅漢難提蜜多羅所說法住記)’는 아라한 난제밀다라가 16아라한의 불법 전수와 수호에 대해 설한 내용을 담고 있다. ‘법주기’라고도 하는데 당나라 현장 스님(602~664)이 번역했다. 난제밀다라(한역경전에서는 ‘경우존자’로 불린다)는 스리랑카 승려로서 344년 적멸에 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주기’는 16아라한의 이름과 각기 머무는 곳을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하여, 우리나라의 16나한도는 대부분 ‘법주기’에 근거해 그려지고 있다. 고려대장경에 실린 16아라한 이야기 중 여섯 번째 아라한 얘기에 주목해 보자.

‘여섯 번째 존자가 그 권속인 900아라한과 더불어 탐몰라주에 들어와 살았다(第六尊者與自眷屬九百阿羅漢多分住在耽沒羅洲. (제6존자여자권속9백아라한다분주재탐몰라주)’.

이능화(1869~1934)는 ‘법주기’를 근거로 ‘조선불교통사’를 통해 이렇게 전했다.

   
▲ 존자암의 초봄. 존자암 전각에는 남방불교 풍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육(六) 발타리존자) 범어 발타라(跋陀羅)는 중국말로 호현(好賢)이다. 이 존자는 900아라한과 함께 대부분 탐몰라주에 머물러 있다. 전해오기를 탐몰라주는 탐라를 말하는데 지금의 제주도이다. …존자암은 발타리존자의 이름을 딴 것이 아닌가 한다.”(조선불교통사 4, ‘탐몰라주존자도량’ 인용. 동국대학교출판부)

제주도에서 900명의 아라한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한라산이다. 발타리존자와 연관 있는 존자암이 지금도 존재하고 있음이 방증한다. 한라산 정상아래 서 있는 저 암벽과 석주들을 보고 아라한이라고 하는 건 발타라 존자와 900아라한을 기억하고 싶은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그리고 제주도의 불교전래가 결코 삼국에 뒤떨어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의 발로이기도 할 것이다. 비록 육지의 나라에 조공을 바쳤던 탐라지만 말이다. 그러고 보면 ‘500아라한’이라고 할 게 아니라 ‘900아라한’이라고 해야 할 듯싶다.

혹자는 저 암벽과 석주들이 기운차게 서 있다 해서 ‘오백장군’이라고 하는데 이는 시(詩) ‘존자암’을 남긴 조선의 임제가 그의 책 ‘남명소승(南溟小乘)’에서 영실기암 풍광을 전하며 ‘오백장군동에서 놀았다’라고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조선의 김상헌은 ‘남사록’을 통해 그 여론을 잠재웠다.

‘여러 책들을 살펴보니 오백장군이란 이름은 없다. 아마 골짜기의 이름이 자순(子順. 임제)에게서 비롯된 것이리라.’

김상헌은 ‘오백장군’설을 과감히 버리고 ‘천불봉(天佛峯)’이라 칭했다.

‘도를 닦는 골짜기인데 속칭 영곡(靈谷)이라 한다. 여러 봉우리에 괴석이 험준하게 솟아 세속의 흔적이 없으니, 여러 부처가 손을 모은 것과 같다. 봉우리 이름은 이런 까닭이다.’

불래오름 끝자락 너머 우뚝 솟은 둥그런 산이 산방산이다! 초의 선사의 벗 추사가 머물며 불경을 사경했던 그 산이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참고자료 : 배연이 논문, ‘제주도의 불교와 불교미술 고찰’. 손오규 논문, ‘한라산 산수유기의 산수문학적 연구’.

 

 

[도·움·말]

 

   
 


길라잡이


한라산국립공원 영실 매표소(주차장) 정면 왼쪽에 존자암 입구가 보인다. 암자까지는 걸어서 20분 거리이며 경사도는 가파르지 않다. 영실 매표소에서 영실 탐방로 입구(휴게소)까지의 2.4Km 구간은 도로로 포장돼 있어 차로도 가능하며, 휴게소 주변(해발고도 1280m)에 차를 주차할 수 있다. 영실탐방로 입구 왼쪽에 서 있는 ‘오백나한전’ 표지석을 따라가면 30m 거리에 영원사가 있다. 영실탐방로 입구서 영실기암 전망대까지는 40분이면 충분하다. 영실기암 전망대서 병풍바위(20분 소요)까지는 계단이지만 경사도는 심하지 않다. 가능한 병풍바위까지는 오르기를 권한다. 제주도에 솟은 다양한 오름과 제주 바다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만은 꼭!

   
 
존자암 세존사리탑: 존자암 경내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다. 발타리존자가 2550여 년 전 인도에서 모셔온 부처님 사리를 안치한 ‘세존사리탑’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유무를 떠나 제주 불교는 이 사리탑을 신성시 하고 있다.

 

 

 

 

 

 

   
 
영원사: 영원사 주변의 영실(靈室)에는 수많은 암자가 산재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절은 영원사 뿐이다. 경내에 오백나한을 안치한 오백나한전이 있고, 조계종 종정을 역임했던 고암 스님의 부도비도 있다.

 

 

 

[1392호 / 2017년 5월 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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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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