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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극락구품도

기자명 정진희

19세기 민중 염원 반영한 새 장르의 출현

▲ 파주 보광사 극락구품도 벽화, 19세기 후반.

신록의 오월, 창취한 유월이라는 말처럼 초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계절 하루가 다르게 창밖의 풍경은 녹음이 점점 짙어간다. 얼마 전 불교중앙박물관에서 왕실발원불화인 ‘극락구품도’를 보면서 파주에 있는 보광사 대웅보전 벽면에 그려져 있던 연화화생도가 생각났다. 보광사 대웅보전의 외부 측면에는 널판을 끼워 맞춘 판벽에 벽화가 빽빽이 그려져 있다. 19세기 후반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들 가운데 연꽃이 핀 못의 풍경을 묘사한 장면은 아기자기한 구성에 불보살님도 볼 살이 통통한 아기와 같은 모습으로 그려져 보광사 판화 가운데 대중적인기가 가장 높다.

‘관경’ 그려낸 ‘16관경변상도’
조선후기 대중결사 늘어나며
왕생 바라는 ‘극락구품도’로
기복신앙 흥성 시대상 보여줘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연화대좌에 앉으신 부처님의 머리 위에는 천개와 함께 팔보 장식이 바람에 날리고 그 주위로 극락조와 극락의 보궁을 표현한 듯 전각의 지붕도 연못 풍경 위에 함께 있다. 이 모티프들을 다 조합해 보면 이 벽화는 선업을 지은 인연에 따라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에 연화화생하는 형상을 그림으로 나타내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고려시대 그려진 ‘16관경변상도’는 우리나라에서 극락정토를 그린 불화로서는 현재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다. ‘관무량수경’에는 아미타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정토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구체적인 수행방법을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특별한 것과 일반적인 것을 합쳐 모두 16가지를 일러주셨는데 그 내용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16관경변상도’이다. 경전에 따르면 석가모니 부처님은 ‘관무량수경’을 인도 마가다국의 바이데히 왕비를 위해 설하셨는데 그 배경에는 남편인 빔비사라 왕과 아들 아자타샤트루 태자 사이에 있었던 기구한 인연이 자리하고 있었다. 왕과 왕비는 오랫동안 자식이 없어 고민하다 어렵게 아들을 얻었는데 점술가들은 그 아들이 자라나면 후환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왕은 점술가의 말에 따라 태자를 죽이려 하였지만 궁녀의 도움으로 태자는 숨어서 장성하였고 이후 아버지에게 원한을 갚기 위해 왕을 굶겨 죽이려 하였다. 왕비의 도움으로 왕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된 태자는 어머니까지 죽이려하자 세상에 어머니를 죽인 일은 없다는 주위의 만류에 왕비를 어두운 방에 가두어 버린다. ‘관무량수경’이 설해진 원인이 되는 이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관경서분변상도’이다.

▲ 16관경변상도, 1300년 전후, 비단채색, 202.8×129.8㎝, 일본 서복사.

일본 서복사에는 16관경을 설하게 된 바이데히 왕비의 사연을 그린 고려불화 ‘관경서분변상도’와 함께 13세기 전후에 그려진 고려의 ‘16관경변상도’가 있다. ‘16관경변상도’는 경전에 의거하여 극락세계를 관상하는 16개의 방법을 하나의 화면에 모두 담기 위해 화면을 크게 상중하 삼단으로 나누었다. 화면의 가장 윗부분에 불회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해서 14관에서 16관까지 순서대로 그리고 화면 좌우에 2관에서 13관까지 배치하고 있다. 전체적인 화면의 구도와 모티프의 구성이 남송계열의 ‘16관경변상도’와 유사성을 보이고 있지만 화면 상부 불회도와 같은 모티프를 화면에 중심내용으로 표현한 것은 고려만의 개성과 독창성이 발휘된 부분이다. 화면 중앙에서 하단까지 중심부분에 그려진 내용은 삼배관(三輩觀)으로 수행자의 근기에 따라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모양을 보는 방법인데 이것이 다시 각각 셋으로 나뉘어져 구품으로 세분된다. 따라서 극락세계를 그린 ‘16관경변상도’에서 극락으로 왕생한 사람을 볼 수 있는 부분은 14관에서 시작해서 16관까지 구품의 연못이 그려진 장면들이다.

고려 ‘16관경변상도’의 도상은 시대를 따라 계승되어 조선후기에 이르면 ‘16관경변상도’의 여러 모티프 가운데서 신자의 품성에 따라 구품왕생을 그림으로 나타낸 연못 모습을 확대시킨 독특한 도상이 새롭게 모습을 나타낸다. 극락을 보는 나머지 방법을 모두 생략하고 구품의 연못에 포커스를 맞춘 도상이 확고하게 자리를 잡게 되면서 ‘극락구품도’라는 새로운 불화의 장르가 생기게 되었는데 불교 박물관에 전시된 수국사와 흥천사의 극락구품도가 여기에 속한다. 조선말 불교계는 극락왕생을 염원하는 염불결사와 같은 대중결사를 통해 폭넓게 신도를 확보할 수 있었고 이들의 후원으로 경제적 기반을 다져 신앙의 목적과 부합되는 다양한 불사의 추진이 가능하게 되어 ‘극락구품도’와 같은 새로운 장르의 불화가 탄생할 수 있었다.

▲ 극락구품도, 1907년, 비단채색, 186×254㎝, 수국사.

‘16관경변상도’와 같이 복잡하고 어려운 교리적 차원의 이해가 있어야 해석이 가능한 불화에 비해 ‘극락구품도’는 극락에 연화화생하는 장면에 초점을 맞춰 간략하고 단순화되어 있어 기복적 신앙으로 변모한 조선시대 불교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극락구품도’라는 불화가 그려진 19세기는 세도정치에 농민저항운동 등으로 그 시대를 사는 민중의 삶이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어려운 세상을 살아가는 불자들의 마음에는 교리적으로 복잡한 그림보다는 극락으로 가는 방법이 명확하고 단순하게 그리고 중복 강조되어진 그림을 원했기 때문에 아홉 장면 모두 극락에 연꽃으로 화생하는 왕생자들을 그린 이런 불화가 탄생하였을 것이다.

극락왕생하는 연지의 모습을 확대하여 그린 ‘극락구품도’는 19세기에 그 예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아마도 보광사의 대웅보전에 그려진 연화화생하는 연못의 그림도 역시 시대적인 양식에 따라 ‘극락구품도’를 표현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비단바탕에 그려져 법당에 모셔져 있는 극락세계를 표현한 다른 불화들과 비교하였을 때 보광사 극락구품도벽화의 구성은 너무 간소하고 어딘가 엉성하고 거칠어 보인다. 하지만 화려한 비단그림에서 찾을 수 없는 수수함과 소박함에서 고달픈 민중의 시린 마음을 달래주었던 따뜻한 감성이 더 잘 전달되는 듯하다. 연꽃 위에 앉아 두 손 모아 합장하고 앉아 있는 왕생자도 그들을 맞이하는 여래도 모두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통해 이 그림을 그린 작가는 극락세계는 미소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세상임을 우리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있다.

정진희 문화재청 감정위원 jini5448@hanmail.net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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