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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법이란 생겨난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기사승인 2017.05.30  13: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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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를 형태로 보려하면 사견에 빠져

원문: 9월1일 선사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온 이래 오직 일심을 설하셨고, 오롯이 일법을 전하였다. 부처로서 부처에게 전했으며, 다른 부처를 설하지 않았다. 법으로서 법을 전했으며, 다른 법을 설하지 않았다. 법이란 언어로서 설할 수 있는 법이 아니며, 부처는 감히 형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부처가 아니다. 이것이 본원청정심이다. 오직 하나의 사실만이 진실이고, 나머지 둘은 진실이 아니다. 반야는 지혜이고, 이 지혜는 곧 무상(無相)의 본심(本心)이다. 범부는 도에 나아가지 않고, 오직 6정에 사로잡혀 6도를 떠돌아다닌다. 수행인이 일념이라도 생사에 떨어진다면 곧 마구니의 길에 떨어진다. 또 일념이라도 견해를 일으킨다면 곧 외도에 떨어진다. 한편 생이 있다고 한다면, 그 멸에 나아가 성문의 길에 떨어지고, 생이 있음을 보지 못하고 오직 멸만 있다고 한다면, 곧 연각의 길에 떨어진다. 법이란 본래 생한 것도 아니고, 지금 또한 멸하는 것도 아니다. (생멸) 두 견해를 일으키지 않으면 좋거나 싫을 것도 없다. 일체법에 있어 오직 이 일심을 요달해야 일불승이 된다.

법은 참된 성품 그대로일 뿐
결코 생기거나 사라지지 않아
참된 경지는 성문연각 떠난
일불승이 최상승 부처 경지


해설: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세 곳에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을 전한 것을 삼처전심이라고 한다. 첫째, ‘영산회상염화미소’인데,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법을 설하다 꽃을 들어보이자, 대중 가운데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둘째, ‘다자탑전분반좌’인데, 부처님께서 법문을 하시는 도중에 가섭이 오자, 가섭이 옆에 앉도록 자리를 내주었다. 셋째, ‘사라쌍수곽시쌍부’인데, 부처님께서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는데 가섭존자가 슬피 울자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두 발을 내밀어 보였다는 내용이다. 이 삼처전심은 선사들이 선종의 정통성을 세우기 위해 정립한 이론이다. 곧 청정한 본원심인 일심의 일법이 부처가 부처에게, 조사에서 조사로 면면히 깨달음의 흐름이 전해진 것이다.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한다고 하지만, 그 부처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는 일정한 형태가 없다. 남악 회양(677~ 744) 선사가 제자 마조(709~788)에게 “기왓장을 무조건 간다고 해서 거울이 될 수 없듯이 무조건 좌선만으로는 부처가 될 수 없고, 앉아 있는 부처의 형상[坐佛]을 익히는 것이라면 부처는 정해진 모양이 없다”라고 하였다. 모양도 없는 것을 형체화하는 것 자체가 그릇된 일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이런 내용이 있다. “믿음이 있으면 낡은 문설주에서 떼어 낸 나무 조각도 성스러운 물건이 될 수 있고, 믿음이 없으면 거룩한 십자가도 문설주나 다름이 없다” 곧 위대한 성자도 믿음에 의해서 빚어진다. 부처란 일정한 형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모습이라고 단정 짓는다면, 곧 사견에 빠지는 격이다. 법 또한 언어로서 표현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문의 6정이란 안ㆍ이ㆍ비ㆍ설ㆍ신ㆍ 의, 6근 작용을 말하고, 6도는 지옥ㆍ아귀ㆍ축생ㆍ수라ㆍ인계ㆍ천계로서 중생이 윤회하는 세계를 말한다. 곧 중생이 수행길로 뛰어들어 훌쩍 열반에 들지 못한다면 계속 6도를 윤회한다.

성문승은 4성제를 바탕으로 수행한다. 곧 고성제→멸성제에 이르는 수행법을 근간으로 한다. 연각은 12연기를 바탕으로 수행한다. 조사선적 관점에서는 성문ㆍ연각승을 뛰어넘어 생멸이라는 분별심에 머물지 말 것을 강조한다. 곧 황벽은 성문승과 연각승은 ‘생’과 ‘멸’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관념을 두고 있어 청정본원심에 위배되어 있음을 설하고 있다.

법신(法身)은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이를 여래(tath?gata)라고도 하는데, 여래(如來)는 참된 진리 세계에서 사바세계로 왔다고 하지만, 실은 오는 것도 아니다. 또 진리 세계로 간다고 해서 여래를 여거(如去)라고 하는데, 실은 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 ‘여래는 어디로부터 온 것도 아니고, 어디로 가는 것도 아닌 것을 여래라고 이름할 뿐이다[如來者 無所從來 亦無所去 故名如來]’라고 하였다. 본 참된 성품 그대로이지, 생겨나거나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중생의 시비분별로 판단해서 알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래서 참다운 경지는 성문승도 연각승도 아닌 일불승인 것이다. 바로 이 일불승이란 대승의 최상승인 부처 경지이다.

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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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 스님 saribul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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