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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연기(緣起)의 바람

기사승인 2017.05.30  13: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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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망은 얽히고설킨 인연 그물로 울고 웃게 만들어

일체현성 개이무위법 이유차별. 모든 슬기로운 성인들이 범인들과 다른 점은 무위법이다.

얻으면 잃을까 근심하는 건
득과 실이 쌍으로 오기 때문
유위법 떠나 무위법에 거해야
호호탕탕 연기 바다 헤쳐나가


누구나 왕이 되고자 하지만 막상 왕이 되면 사방에서 왕위를 노리는 자들 때문에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부처님 당시의 대국 마가다와 코살라의 빔비사라 왕과 파세나디 왕은, 각각, 자기 아들들인 아자타사투와 비유리에게 쫓겨나고 살해당했다. 금지옥엽으로 키운 왕자도, 부왕이 너무 오래 왕위에 머무르면, 부왕을 아비가 아니라 원수로 본다. 불심천자 수문제는 아들 양광(수양제)에게 살해당했다. 많은 경우에 부자의 자식들은, 돈 맛을 알 나이가 되면, 늙은 아비가 죽기만 기다린다. 선정을 베풀어 나라가 부유해지면 오히려 군침의 대상이 된다. 소아시아의 크로에수스 왕은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과 풍요로운 땅을 사뭇 자랑했지만, 바빌론의 키루스 대왕에게 정복당했다.

왕자로 태어나도 안심할 수 없다.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죽었고, 당나라 태자 이현과 그의 세 아들은 어미이자 할머니인 측천무후 손에 죽었다. 오스만 제국의 왕자들은 부왕이 죽으면 후계자 한 명을 제외하곤 모두 살해당했다. 하렘의 수많은 여인들이 낳은 수많은 아이들이 비명에 죽었다.

미인으로 태어나면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중국 4대 미인인 왕소군은 한나라로 쳐들어온 미개한 흉노족 왕에게 바쳐져 한동안 그와 같이 살다 그가 죽자 배다른 아들의 여인이 되었다. 그녀가 미인이 아니었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그래서 미인박명이란 말도 있다.

미인을 얻으면 마냥 좋을 것만 같지만, 사방에 널린, 미인을 빼앗아 가려고 군침을 흘리는 자들 때문에 걱정이 끊이질 않는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도 안심할 수 없다. 당 현종의 아들은 천하절색 양옥환(양귀비)을 얻었지만 아비에게 빼앗겼다. 오페라 '돈 카를로'의 주인공 스페인 왕자 돈 카를로는 사랑하는 여인 엘리자베스를 아버지 필립2세에게 빼앗긴다. 연인이 새어머니가 되었다.

더 힘 있고 돈 많고 더 잘난 자를 찾아 스스로 떠나가기도 한다. 당태종은 아들 이치에게 후궁 무조를 도둑맞았다. 플러스 마이너스, 영이 아니다. 가진 걸 잃으면 말할 수 없는 상실감이 온다. 가지기 전보다 훨씬 더 불행해진다. 그래서 부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지 말라 하셨다. 이별이 너무 아프기 때문이다. 사람이 아닌 물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타인의 자유의지는 종종 날벼락이다. 느닷없이 닥치는 인연의 돌풍과 폭풍과 태풍 역시 내 힘과 통제 밖이다. 인구 5000만의 잉카제국 황제 아타왈파는 화승총을 들고 동쪽 바다를 건너온 흰 피부의 사람들에게 도살당했다. 수평선 너머에 어떤 악마가 숨어 있는지와 그 악마가 언제 자기를 찾아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악마에게 자유의지가 있는 게 문제이다. 악은 평범해서 누구나 악마가 될 수 있다. 아니,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악마이다.

재벌의 자식은 누구나 부러워하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들이 적지 않다.

‘얻으면 잃을까’ 근심해야 하는 게 유위법의 세계이다. 득(得)과 실(失)은 쌍으로 오기 때문이다. 없으면 얻지 못해 괴롭고, 얻으면 잃을까 괴롭다. 태어나면 죽을까 괴롭고, 죽으면 나쁜 곳에 태어날까 괴롭다. 이래도 괴롭고 저래도 괴롭다. 그래서 일체 현성(賢聖)은 유위법의 세계를 떠난다. 무위법의 세계에 거한다. 범인들과 다른 점이다. 사방에서 연기의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도, 마음은 호호탕탕(浩浩蕩蕩),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연기의 바다를 떠간다.

부처님의 제자가 된 어떤 왕은 ‘왕이었을 때는 누구에게 해를 당할까 사방에 병사를 두고도 항상 불안했지만, 걸식 수행자가 된 지금은 더없이 마음이 평안하다’고 토로했다. 이 점에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구속한다. 욕망은 인간을 얽히고설킨 인연의 그물로 얽어 희로애락우비고뇌 속에서 울고 웃게 만든다. 항상 웃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대게 끝은 눈물이다.

강병균 포항공대 수학과 교수
bgkang@postech.ac.kr
 


[1393호 / 2017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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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균 교수 bgkang@poste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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