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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순정효황후 대지월보살

기자명 이병두

명석하고 불심 깊었던 마지막 황후

▲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순정효황후 모습.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와 국방에 관한 모든 권한을 빼앗긴, 이름 뿐의 ‘제국(帝國)’ 대한제국 마지막 순종황제의 황후 윤씨(시호: 獻儀慈仁純貞孝皇后. 아래에서는 ‘황후’)는 을사늑약과 한일 병탄에서 매국 행위에 앞장 선 ‘공로’(?)로 일본 정부에서 후작 작위를 받았던 친일파 윤택영의 딸이다. 한일 병탄 당시 ‘황후’가 옥새(玉璽)를 치마 속에 감추고 내놓지 않으려 버티며 조약 서명을 막으려 애썼으나 숙부 윤덕영에게 빼앗기고 울음을 터뜨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용성 스님과 각별한 인연
불행 이겨내고 불교 귀의
매일 좌선·독경하며 생활

위 사진은 ‘황후’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 총명하게 보이는 두 눈과 눈썹, 오뚝한 코와 꽉 다문 입술에서 옥새를 치마 안에 감추고 망국을 막으려 버텼으며 평민이 된 후에 신식 공부를 시작해 ‘타임’같은 영문 잡지를 읽고 피아노를 연주할 정도가 되었다는 ‘황후’의 강인함과 명석함이 느껴진다.

‘황후’가 1966년 2월3일 창덕궁 안 낙선재에서 73세의 파란만장한 삶을 마무리하고 고인의 유해가 창덕궁을 떠나 수십 년 전 세상을 떠난 순종이 묻힌 유릉으로 향하던 날, 추담·동헌·향봉 스님 등 한국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고승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며 행렬을 인도하였다. 스님들은 왜 이처럼 고인에게 정성을 다했을까.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순종황제가 이왕(李王)으로 격하됐으므로 ‘황후’도 이왕비(李王妃)가 되었고, 1926년 순종이 사망하자 대비로 불리다가 민족해방 이후에는 평민으로 전락하였다. 거처도 창덕궁 대조전에서 낙선재로, 그리고 한국전쟁 부산 피난 시절에는 범어사 동래포교당과 부산 구포의 민가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고초를 이어갔다. 그러나 ‘황후’의 고된 삶은 1953년 휴전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조선왕실을 부정하던 이승만이 ‘황후’의 창덕궁 환궁을 방해하여 서울 정릉동의 인수재(仁壽齋)에 기거하다가 1960년 4·19 혁명 이후에야 낙선재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경술국치 이후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황후’는 거처인 창덕궁에서 가까운 서울 봉익동에 민가를 구입·개조하여 대각사 문을 열어 용성 스님이 주석하게 하였다. 스님이 투옥됐다가 출옥할 때는 서대문 감옥으로 상궁을 보내 보살폈으며, 스님이 만주에서 선농일치 운동을 펼칠 때에는 광대한 농토를 살 수 있는 자금을 후원하는 등 용성 스님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스님의 상좌인 동헌 스님이 ‘황후’의 장례에 유독 신경 쓴 것도 이런 연유가 있다.

▲ 순정효황후의 창덕궁 돈화문 앞 운구행렬.
▲ 순정효황후 장례행렬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은 개인·집안(王家)과 나라(大韓帝國)의 불행을 이겨내고 불보살에 귀의하여, 민주공화국이 된 이 땅의 시민들에게서도 계속 존경을 받았던 ‘황후’는 말년에 향봉 스님을 가까이 지내며 독실하게 신행생활을 이어갔다. 스님이 상경하면 거처에 상궁을 보내 보시금을 전하기도 했으며, 법명 대지월(大智月)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 스님이 ‘황후’ 서거 후 9일장 기간 동안 빈소를 지키며 장례의식을 면밀히 살피고, 49재를 강릉 백운사에서 지낸 뒤 그곳에 위패와 영정을 모신 것도 스님과의 이런 인연에서 비롯한다.

낙선재에 머물던 시절 ‘황후’는 매일 좌선을 하고 경전을 읽으면서 일과를 보냈으며, 처소에는 용성 스님의 한글 번역 경전과 작은 탱화를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황후’와 불가의 깊은 인연은 세상을 떠날 때가 된 것을 느낀 ‘황후’가 미리 써 놓은 유서에서도 짐작하게 한다. “여생을 오직 부처님 전에 귀의하며 세월을 보내던 중 뜻하지 않은 6·25 동란을 당하자 한층 더 세상이 허망함을 느꼈던 중, 내 나이 70여세 되오니, 불(佛)세계로 갈 것 밖에는 없어, 내 뜻을 표하노니….”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94호 / 2017년 6월 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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