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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동국대 교수, 원의범 교수 추모시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7.06.07 11:53
  • 수정 2017.06.07 11:54
  • 댓글 1

‘선생님,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선생님, 당신은 말씀하셨지요
-원의범 선생님의 부음(訃音)을 듣고서

선생님, 불교인식논리학의 명가(名家)답게 당신께서는 수많은 명언을 토로하셨지요.

어느 때 학교에서 인도철학과를 계속 두어야 하느냐 어쩌느냐 그런 일이 있었을 때, 학교 당국자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지요.
“사람은 빵 없이는 살 수 없지만,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다”라고.

어떤 사람이 ‘印度철학’을 ‘人道철학’으로 이해했다고 하면서, “그렇다. 인도철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길을 밝힌 철학이라”고 하셨지요.

‘불타의 변증적 파기(破棄)법’이라는, 당신의 어려운 논문을 어린 우리들에게 설명하시면서 물으셨지요.
“왜, 네거리에서, 동서남북으로 난 길 중 어느 한 길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느냐? 왜 그 자리에 있으면 안 되는가?”

1950년대 월정사에서 외전(外典)강사를 한 경험이 있는 당신께서는 한 스님의 ‘금강경오가해’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셨지요.
“그 책의 토(吐)는 한암 스님의 토인데, 왜 그 스님이 그 토는 한암 스님 토라고 밝히지 않았는지 몰라.”

인도철학을 해서 밥을 먹고 살 수 있을까 없을까 고민하고 있던 어린 우리들에게 사자후(獅子吼)하셨지요.
“인도철학은 인도철학을 해서 밥을 못 먹고 살아도 된다는 배짱을 가르치는 학문이다.”

혜초스님 이후로는 최초로 인도에 불교공부를 하러 가신 당신이지만, 일찍 귀국하셨지요.
“나는 한국에서보다 인도에서 잘 먹고 있었지만, 한국의 가족들이 배고파서 일찍 귀국했다.”

정년 이후에도 절로 절로 법문을 하고 다니셨던 당신이지요. 건강을 염려했더니, 걱정 말라면서 말씀하셨지요.
“피곤하면 주변 어디 여관이라도 들어가서 무조건 좀 누워서 쉰다. 그러면 괜찮다.”

어느 때 곽철환 형과 함께 찾아뵈었더니, 당신이 가장 사랑했던 한 제자와의 애증(愛憎)을 말씀해 주셨지요.
“…마음이 딱 굳어지더라”면서, 지나고 보니 그럴 일도 아니었다는 뜻을, 제자에게 미안했다는 뜻을 우리에게라도 전해주셨지요.

선생님, 수업 시간이면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세례를 퍼부어주셔서 늘 곤란하게 해주셨던 선생님,
저도 이제 벌써 그 많았던 명언들을 다 잊어먹고 말았지요.

“원산항에서 부모님과 생이별하셨다”고 이산(離散)의 한(恨), 이산의 아픔을 말씀해 주신 선생님,
그 아픔 이제 우리에게 주셨네요.
우린 이제 다 고아(孤兒)가 되었네요, 선생님…

2017년 6월7일
불초제자 김호성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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