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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사 혜원 스님의 거위

법문 때면 강당에 와 경청
스님 입적 땐 구슬피 울어
“모든 생명은 전생의 가족”

한동안 잠잠했던 조류독감(AI)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조류독감이 늦가을 시작해 다음해 봄이면 끝났던 과거와 달리 초여름에 나타남에 따라 관련기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난해 3000만 마리가 넘는 닭과 오리 등이 애꿎게 죽임을 당한 사태가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들도 나온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6월13일 서울 세종로 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노동위원회는 집단살생을 중단하고 근본 대책을 세울 것을 촉구했다. 불살생과 자타불이 정신을 중시하는 불교계가 이런 문제에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불교만큼 동물을 존중하는 종교나 사상을 찾아보기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윤회하는 모든 생명은 전생에 자신의 부모 형제가 아닌 것이 없다”고 했으며, “다른 생명을 빼앗느니 차라리 내 생명을 버리라”고도 말씀했다. 오랜 불교역사에서 동물들을 위해 자신의 몸의 기꺼이 내어주거나, 스님과 동물 사이에 각별한 정을 느낄 수 있는 기록들도 꽤 많다.

6세기 북주(北周)의 무제가 혹독한 불교말살 정책을 펼 때 그 앞에서 “폐하는 지금 힘만 믿고 삼보(三寶)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아비지옥은 귀천을 가리지 않거늘 폐하는 반드시 아비지옥에 떨어질 것이오”라고 외쳤던 정영사 혜원(523~592) 스님. 그도 거위와 깊은 인연이 있었다.

‘속고승전’ 제8권에 따르면 혜원 스님이 정영사로 옮기기 전에 청화사라는 절에 머물렀다. 이때 거위가 혜원 스님의 강론을 듣는 것을 좋아해 모두들 신기하게 여겼다. 그런데 혜원 스님이 정영사로 떠나자 거위가 밤낮으로 슬피 울어 그곳의 한 스님이 거위를 정영사로 데려갔다. 그러자 거위는 곧바로 혜원 스님의 방으로 뛰어가더니 반갑다는 듯 푸드덕거렸다. 이후 거위는 혜원 스님의 법문시간을 알리는 종소리만 나도 강당으로 향했고 법문이 끝날 때까지 경청했다. 그렇게 6년 동안 스님의 법문을 빠뜨린 적이 없이 듣던 거위가 하루는 절 마당을 오가며 슬피 울기만 할뿐 더 이상 강당에 들어가지 않았다. 거위가 울기 시작한 지 20여일이 지난 뒤 혜원 스님이 입적했다고 전한다.

‘속고승전’ 제13권에는 당나라 신조 스님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강백이자 율사였던 스님은 일평생 청정하게 살았으며, 59살 되던 해 자신이 머물던 사찰이 아니라 출가 본사에서 입적했다. 그런데 생전에 스님에게는 늘 따라다니던 개가 있었는데 스님의 죽음이 가까워지자 슬피 울고 사나워졌다. 스님이 세상을 떠나던 날 밤새 200리 떨어진 출가본사를 갔다 돌아온 개는 종일 울부짖었다. 나중에 부고가 도착하고서야 대중들은 비로소 개의 행동을 이해했다. 이후 그 개는 종일 엎드려 눈물을 흘리고 먹지 않다가 죽었다고 기록돼 있다.

▲ 이재형 국장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사람과 동물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불교에서도 사람이건 동물이건 고통을 싫어하고 즐거움을 추구하는 동일한 중생이다. 그렇기에 다른 생명을 앗아가며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결코 선업이 될 수 없다. 이제 살처분이라는 대량학살은 멈춰야 한다. 열악한 사육환경은 개선하고, 예방 백신을 실시해 동물들이 AI로 몰살하는 상황을 없애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매년 200억 마리가 넘는 동물들이 인간의 입맛을 위해 죽어가는 비극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그 답은 불교의 채식문화에 있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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