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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에로스와 프시케 ①

기자명 김권태

동화 속 결혼은 합일과 통합의 중도 상징

옛날 어느 나라의 왕과 왕비에게 세 딸이 있었다. 그중 막내 프시케는 아주 빼어난 미모로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질투를 샀다. 아프로디테는 아들인 사랑의 신 에로스를 시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추하고 미천한 남자의 품에 안기도록 했다. 그러나 에로스는 오히려 사랑의 감정에 도취되어, 어머니의 명을 어기고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해주고 돌아왔다. 제대로 아프로디테의 미움을 산 프시케는 그 후 아무리 아름다워도 그 아름다움에 대한 대가를 가질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산꼭대기의 괴물과 살게 된 프시케는 놀러온 언니들의 꾐에 빠져, 밤에만 머물다 가는 남편의 얼굴을 확인하다 남편인 에로스의 노여움을 사 그간 누리고 있던 모든 것을 잃게 됐다.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에게 가서 에로스를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을 물었고, 아프로디테는 풀기 어려운 네 가지 과제를 주었다. 주변의 도움으로 꿋꿋이 과제를 풀어가던 프시케는 마지막 과제에서 그만 상자를 열어보지 말라는 금기를 어기고 호기심에 미의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속에는 죽음 같은 잠이 들어있었고, 프시케는 이윽고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 마침내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에로스가 나타나 프시케를 죽음에서 구해주었고 제우스에게 애원하여 어머니 아프로디테의 노여움을 풀고 결혼에 성공하였다. 그 후 프시케는 신들의 음료인 넥타르를 마시고 불로불사의 생명을 얻었으며, 에로스와의 사이에 ‘환희’라고 불리는 볼룹타스라는 딸을 낳았다.

빼어난 미모의 프시케 공주
신의 미움받아 괴물과 동거
셋째 자식은 현실 인간 상징
재탄생 위한 성숙 시간 필요

‘에로스와 프시케’ 이야기다. 프시케는 왕과 왕비의 ‘셋째 딸’이다. 즉 셋째 공주다. 동화에는 왕자와 공주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것은 왕자와 공주처럼 사랑받던 유년시절의 소년과 소녀의 자기표상이다. 그리고 동화에 가장 많이 나오는 ‘3’이라는 숫자, 즉 셋째 아들·셋째 딸은 ‘엄마-아빠-나’로 이루어지는 삼각관계를 뜻한다. 둘로 나누어지지 않는 이 3이라는 홀수는 ‘가위, 바위, 보’처럼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우위에 있지 않고 늘 서로 힘의 조화와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관계의 역동성을 뜻한다. 셋째는 첫째와 둘째에게 질투를 받으면서, 또 이들을 견제하고 관계를 유지하며 원하는 사랑을 쟁취해야 하는 현실의 우리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다.

산꼭대기의 ‘낡은 성’은 그동안 감추어졌던 것들, 특히 어른들의 궁금한 사생활이 드러나는 것이며,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신의 무의식적 충동을 따라가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괴물 남편’과 살아간다는 것은 징그럽고 금기시했던 성에 대해 눈을 뜨고 서서히 성적인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오이디푸스 갈등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이성을 동경하고 또 수용해 나감을 의미한다.

에로스를 찾기 위한 과제를 수행하다 ‘영원한 잠’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한 내적인 성숙의 시간이 필요함을 뜻한다. 마치 나비가 알(유아기)에서 깨어나 애벌레(아동기)가 되고 번데기(사춘기)라는 죽음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아름다운 나비(성인)로 날아오르듯이 말이다. ‘영혼’이라는 뜻의 프시케(Psyche)는 ‘숨’이라는 뜻과 ‘나비’라는 뜻도 함께 가지고 있는데, 이는 삶과 영혼에 대한 아름다운 대상은유라고도 할 수 있다.

영혼(프시케)이 사랑(에로스)을 만나 ‘환희’를 낳았다는 것은 그 어려운 배우자 선택을 통해 드디어 자신의 내적대상인 엄마표상과 아빠표상을 자기로 통합하고,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 날아올랐다는 환희에 찬 영혼의 송가다. 그래서 인간의 성장서사를 담은 동화들은 대부분 왕자와 공주가 고난을 극복하고 마침내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것은 결혼이라는 주제가 성적인 결합과 자식이라는 불생의 꿈뿐만 아니라, 인간의 다양한 내적요소들을 통합하는 통과의례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양단을 뛰어넘어 자유로움을 얻는 중도(中道)의 체득이 동화와 신화 속에서는 결혼이라는 합일과 통합의 상징의례로 구체화되어 표현된 것이다.

김권태 동대부중 교법사 munsachul@naver.com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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