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5. 가까이 있던 것에 대한 무지

기자명 최원형

몸으로 익히는 것보다 더 좋은 공부는 없다

‘햇볕은 고와요, 하얀 햇볕은 나뭇잎에 들어가서 초록이 되고 봉오리에 들어가서 꽃빛이 되고 열매 속에 들어가선 빨강이 돼요 햇볕은 따스해요, 맑은 햇볕은 온 세상을 골고루 안아 줍니다. 우리도 가슴에 해를 안고서 따뜻한 사랑의 마음이 되어요.’

해의 움직임과 더불어 살던 삶
전기·화석 사용하면서 망가져
태양광 충전기 워크숍 진행 후
삶 속에 있던 에너지원 찾아내

이원수 선생의 시 ‘햇볕’이다. 아이들 어릴 적 이 시에 곡이 붙은 동요를 참 많이도 함께 불렀다. 노랠 부르다가 햇볕의 존재를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그랬다. 햇볕이 나뭇잎을 봉오리를 그리고 열매를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살았더라. 늘 있기에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해도 그와 같은 존재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어릴 적에 돋보기로 빛을 모아서 종이를 태우며 놀다가 머리카락을 태워먹기도 했다. 해가 불로 바뀔 수 있다는 걸 처음 경험으로 알게 됐다. 해가 떠야 하루를 열고 해가 지면 하루를 닫으니 우리는 해와 함께 삶을 살아왔다. 해의 움직임과 더불어 했던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전기의 발명과 화석연료의 발견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래야 고작 100여년이다.

해가 자취를 감춘 밤이 낮보다 환하도록 만들어준 기적들에 취해 살아왔다. 기적에 감탄하며 더욱 해를 등지고 살아왔다. 기적은 한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보란 듯이 내놓았고, 빛이 없는 땅 속 생활도 얼마든지 가능케 했다. 그렇게 취해서 우리의 문명에 감탄하는 동안 이 지구는 사람을 비롯해서 목숨붙이들이 살기 힘든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 오랜 시간 혜안을 갖고 살아온 이들은 이 무시무시한 변화를 읽어냈고 경고도 했지만 문명인들은 그들을 일러 오히려 미개하다했다.

망가진 생태계를 눈치 채고 뒤돌아보기까지 시간은 너무도 더디 흐르는 것 같았다. 오래 전 태양을 잔뜩 먹은 유기체들이 땅 속 깊이 가라앉아서 만들어진 화석연료를 이제 더 이상 꺼내 써서는 안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리고 다시 돌아본 게 태양이고 바람이었다. 언제나 떠오르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태양과 바람을 이용해서 에너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연중 바람이 풍부한 먼 바다에서 계곡에서 사람들은 바람을 에너지로 바꿔 쓰기 시작했다. 하기야 풍차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그 소중함을 이제 새삼 되찾고 있는 중이다. 2015년 전 세계에서 전기를 만드는데 사용한 햇빛과 바람이 전체 전력생산량의 평균 22.8%를 차지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사정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는 조계종 종무원조합원들을 대상으로 ‘생태적인 삶, 그대로 부처님 가르침’ 교육의 일환으로 ‘내 손으로 만드는 태양광 휴대폰 충전기’ 워크숍을 진행했다.

기후변화와 불교의 역할에 대한 강의와 태양광 발전의 기본 원리에 대한 강의를 가볍게 마치고 직접 태양광전지판을 만들었다. 납땜을 하고 셀 하나하나를 붙이는 일은 생각보다 까다롭고 섬세한 작업이었다. 두 시간 반이 넘도록 워크숍이 진행되면서 힘들고 지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힘겹게 만든 태양광 충전기는 다음 날 총무원 옥상에서 쏟아지는 햇빛을 흠뻑 쪼였다. 퇴근 무렵 충전기를 챙기러 올라간 종무원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날마다 뜨고 지는 해, 그 이상 생각해본 적 없던 태양이 세상과 소통하는 휴대폰의 에너지원이 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니.

더 이상 별다른 에너지 없이 그저 해만 뜨면 에너지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대단히 매력적이다. 티베트 고원의 빙하가 빠르게 녹아 눈사태가 나고, 강이 메마르고, 모래 폭풍이 일고, 이 땅에서는 겨울가뭄에 이어 봄 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기후변화의 대안은 재생에너지라고 아무리 머리로 이해해도 몸으로 익히는 것보다 좋은 공부는 없는 것 같다. 내가 만든 태양광 휴대폰 충전기가 햇빛을 전기로 바꿔주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나니 스쳐 지났던 태양광 패널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워크숍에 참가했던 한 종무원이 며칠 전 반가운 목소리로 소식을 전해줬다. 모지역의 한 사찰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그곳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있더라는 거였다. 이제 그 귀함이 보이기 시작한 걸까. 보이기 시작하면 애정이 가고 어떻게 변화를 이곳저곳에서 일으킬까 궁리를 시작하게 될 것을 믿는다. 세상의 변화는 결국 내가 변하는데서 출발하니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