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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계찰의 청정심

“나는 그때 내 결심을 실천한 것 뿐이다”

▲ 그림=근호

공자가 활동하던 시절 몇몇 나라에 공자와 비견될 만큼 덕 높은 현인들이 있었다. 주나라의 노자, 제나라에는 안영, 위나라에는 거백옥과 사어가 그들이다. 공자는 노자를 만난 다음 그를 용에 비유했다. 안영은 자신의 등용을 반대한 사람이었지만 공자는 그를 군자로 칭송했는데, 그런 칭송을 받아 마땅할 만큼 안영은 현명하고 공정한 사람이었다.

총명한 오나라 넷째 왕자 계찰
왕위 거절하며 시골로 내려가
서나라 왕 무덤 찾아가 검 전달
혜청정의 고상함 돌아보게 해

위나라에 머물던 시절, 공자는 거백옥의 집에서 삼 년간 기거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뒤에 거백옥의 사자가 공자를 방문했다는 기록이 ‘논어’에 보인다. 거백옥과 사어 또한 공자가 높이 칭찬했을 만큼 현명하고 공정하며 강직한 사람이었다.

같은 시대에 오나라에는 그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계찰(季札)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오나라 왕의 네 번째 아들이었는데, 형들보다 현명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를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그가 굳이 듣지 않았으므로 왕은 첫째 왕자인 제번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죽으면서 형제 상속을 명했다.

왕이 된 제번은 아버지의 상(喪)을 벗을 때까지는 왕위에 있다가 상이 끝나자 막내 동생인 계찰에게 왕위를 넘기고자 했다. 그러나 계찰은 왕위를 사양하며 말했다.

“조나라 선공이 죽었을 때 그의 서자인 부추가 태자를 살해하고 위를 계승했는데, 그가 성공입니다. 성공이 스스로 제후가 되자 다른 제후들과 조나라 사람들은 성공을 의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욕하며 다른 서자인 자장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자장은 도망쳐 버림으로써 성공의 지위를 안전하게 했고, 사람들은 자장의 행동을 칭찬했습니다. 지금 군왕께서는 자격을 갖춘 후계자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그 지위를 범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무 재능도 없는 사람으로서 감히 자장의 절의를 따르고자 합니다.”

이렇게 거절했는데도 오나라 사람들이 거듭거듭 계찰을 왕으로 세우려 했으므로 그는 시골로 피해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얼마 뒤에 제번왕이 죽었다. 그는 죽으면서 왕위를 아우 여제에게 물려주었다. 여제왕은 즉위한 뒤에 아우 계찰이 연릉이라는 지방을 다스리도록 했고, 계찰은 이를 받아들여 연릉에서 살았다.

얼마 후 오왕이 계찰을 사신으로 삼아 여러 나라를 돌며 우호를 다지게 했다. 사신 자격으로 제나라에 도착한 계찰은 안영을 만나 말했다.

“경은 속히 식읍과 정사를 임금께 반납하십시오.”
“왜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제나라의 정권은 곧 다른 사람의 손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그래야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안영은 그의 말에 따랐는데, 과연 일은 계찰이 예측한 대로 되었다.

계찰이 척 지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숙사에 들려고 하는데 어디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계찰은 음악 소리를 듣더니 중얼거렸다.

“괴상한 일이다. 내가 듣기로 ‘아무리 지략이 뛰어나다 해도 덕이 없으면 몸을 보존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을 다스리는 손문자는 헌공에게 죄를 짓고 쫓겨 왔으니 두려워하고 근신해도 오히려 부족할 터인데 음악을 즐기는구나. 이곳은 위험하다.”

계찰은 곧 행장을 꾸려 그곳을 떠났고, 그 일을 전해 들은 손문자는 평생 음악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계찰은 진나라에 도착하여 조문자, 한선자, 위헌자를 만난 다음 말했다.

“진나라는 장차 이들 세 가문의 소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일도 훗날 그가 말한대로 되었다.

계찰이 북방의 서나라에 갔을 때의 일이다. 서국의 왕이 계찰이 차고 있는 검을 몹시 갖고 싶어했다. 그러나 계찰은 왕에게 검을 주지 않았는데, 그것은 검을 아껴서가 아니라 사신은 검을 패용하는 것이 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계찰은 서나라를 거쳐 다른 여러 나라를 돌며 사신 임무를 수행했다. 그렇게 임무를 모두 마치고 오나라로 돌아가는 길에 서국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때는 검을 갖고 싶어했던 서국의 왕이 이미 죽은 뒤였다.

계찰은 죽은 왕의 무덤을 찾아가 무덤 앞의 나무에 검을 매달아 놓고 떠났다. 수행자가 의문을 일으켜 계찰에게 물었다.

“서국 왕은 이미 죽었습니다. 저 칼은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

계찰이 대답했다.

“지난 번 서국에 들렀을 때 서국 왕이 내 검을 갖고 싶어했다. 그리고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이 검을 그에게 주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그때의 내 결심을 실천한 것뿐이다.”

불도에 세 청정이 있으니, 계청정(戒淸淨), 심청정(心淸淨), 혜청정(慧淸淨)이 그것이다. 계청정은 행위를 맑힘으로써 이루어지고, 심청정은 정서를 맑힘으로써 이루어지고, 혜청정은 이성을 맑힘으로써 이루어진다.

물론 불교가 말하는 혜는 철학이 말하는 이성보다 높고 깊다. 그러나 그것이 지혜인 이상 불교의 지혜 또한 이성과 궤를 같이 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성이 보다 높아지고 보다 깊어진 상태가 혜인 것이다.

혜가 맑아진다는 것은 이성이 사사로움을 초월해 공공성에 이른다는 것이고, 이성이 그에 이르면 정서가 맑아진다. 이렇게 혜청정은 심청정을 낳는다. 그리고 혜청정·심청정이 계청정을 낳는다.

먼저 계청정을 닦고, 그를 바탕 삼아 심청정을 닦으며, 다시 그를 바탕 삼아 혜청정을 닦는 것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점수법이요, 혜청정을 먼저 이룸으로서 아래 두 청정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돈오법이다.

계찰은 서국왕을 보던 때 검을 그에게 주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 뜻을 입 밖으로 발설하지는 않았다. 나중 일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발설하지 않은 것이다. 범속한 사람들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면서 내일 일을 섣불리 약속하고 장담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내일 일을 함부로 약속, 장담하지 않는다.

다시 서국에 이르러 그는 죽은 왕의 무덤에 검을 두고 떠났다. 자신만이 아는 마음속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밖으로 발설한 약속이 아닌데도 왜 굳이 그걸 지키느냐고? 그렇게 묻는 사람은 혜청정의 참맛, 그 시원한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맑은 약수물 맛은 향기로운 커피나 홍차 맛보다 시원하고 상쾌한 바가 있다. 무미(無味)의 그 묘미(妙味)! 검을 두고 떠난 계찰의 이야기는 심청정  · 혜청정의 맛이 얼마나 멋진지, 얼마나 고상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김정빈 소설가·목포과학대교수 jeongbin22@hanmail.net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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