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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1929년 조선불교대회

기자명 이병두

민심 장악 꾀한 일제의 교묘한 술책

▲ 1929년 10월11일 열린 조선불교대회에는 총독을 비롯한 일본의 고위 인사도 다수 참여했다.

1929년 10월11일, 이제는 허물어져 역사 속으로 사라진 옛 조선총독부 안의 큰 홀에서 당시 총독 사이토 마코토(齊藤實, 1858~1936)가 입회한 가운데 조선불교대회(이하에서는 ‘불교대회’) 창립대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육군·해군대신, 외무·사법·체신차관, 궁내대신 등 일본군과 내각의 주요 인사를 비롯하여 정토진종(淨土眞宗) 대곡사파·본원사파·불광사파 관장(총무원장에 해당) 등 일본 불교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총독이 참석하는 자리이니만큼 그들에게 잘 보여야 하는 조선의 재계와 불교계 고위 인사들이 참석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면 특정 종교 행사를 왜 총독부 건물 안에서, 그것도 총독까지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고 대회를 마친 뒤에는 총독부 정면에서 기념사진까지 찍었을까?

사찰 아닌 총독부에서 개최
조선 불교계 고위인사 참석
교화 내세운 식민통치 수단

이때는 3·1혁명 운동 이후 사이토 총독이 부임하여 일제가 이른바 ‘문화정책’을 내세우던 시기였는데, 이런 일제의 방침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던 불교 단체 중 하나가 조선불교단(이하에서는 ‘불교단’)이었다.

‘불교단’은 조선인 유력자를 포함하여 조직했으나 운영은 일본인이 주도했고, 평양·신의주·대구·부산에 지부가 설치됐다. ‘불교단’의 목표는 ‘조선 불교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강화, 내선융화 정책 보조, 조선인에 대한 사상적 통제’였는데, 이를 위해 강연회와 강습회를 열고 일본에 유학생을 파견하며, 사회사업에도 참여하였다.

동아일보(1925.8.15와 1927.10.22.) 기사에 따르면, ‘불교단’은 “큰물로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법회(水死者追悼會)와 ‘영화[활동사진] 상영과 음악대회’를 개최하는 등 조선인의 닫힌 마음을 열어서 식민 통치에 협조하도록 유도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단장 이윤용(남작)·부단장 한창수(남작)와 고문 박영효(후작)·이완용(후작)·권중현(자작)·이하영(자작)·민영기(남작) 등 임원진 명단에서 이미 어용단체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어서 조선인들의 마음을 얻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1929년 1월에는 서울 각황사(현 조계사)에서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가 열려 “조선불교의 전통을 계승하여 수호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종헌을 정하는 등 독자 노선을 확실히 다지고 있어서, 총독부 당국을 긴장시켰을 것이다.

‘불교대회’의 목적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대회장 권중현과 부회장 이원석·이사 나카무라 겐타로(中村健太郞)·간사 이윤현 이름으로 나온 그 대회의 취지서를 보면 잘 드러난다. “우리 조선불교대회는 [이런] 시국을 잘 살피고 ‘불교로 인심을 교화하여 사회의 행복과 국가의 평화를 도모코자 하오니 여러분들이 같은 목소리로 상응(相應)하여 찬동해주시기를 바람.”

위 사진 앞쪽 의자에 앉아 있는 인물이 당시 총독 사이토이고, 대중을 상대로 말을 하는 인사는 대회장 권중현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이 내세운 “불교로 인심을 교화하여 사회의 행복과 국가의 평화를 도모한다”는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따로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문제는 이와 비슷한 일들이 민족 해방 이후 이승만·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시절에도 계속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나라는 ‘독립’했지만, 불교는 ‘자립’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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