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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불법의 수호자 비사문천왕

기자명 오중철

신력 의지해 전쟁 승리 기원하는 마음 반영

▲ 막고굴 154굴 주실 남벽 하단에 공어타천녀와 함께 그려진 비사문천왕. 토번 점령시기에 그려진 이 비사문천왕상에서 이미 허리의 만도나 어깨 뒤의 소뿔형 광배 등의 토번의 영향이 확인된다. 8세기 말~9세기 초.

돈황 막고굴 154굴 주실 남벽에 그려진 한 무인의 도상은 그 화려한 복장과 위용으로 눈길을 끈다. 우측의 천녀상과 나란히 서 있는 이 존상은 머리에 보관을 쓰고 온몸에 견고한 갑옷을 착용하고 있다. 오른손으로는 긴 창을 들고 왼손에는 보탑을 받들고 있으며, 왼쪽 허리에는 긴 칼을 차고, 다시 허리 앞에는 휘어진 만도(彎刀)를 차고 있다. 두 다리 사이로는 반쯤 모습을 드러낸 인물이 그 발을 받치고 있다. 무인의 부릅뜬 두 눈에서는 위엄과 공포가 절로 느껴진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방제를 통해 이 존상이 비사문천왕임을 확인할 수 있다.

비사문천왕상 7~11세기 유행
우전국을 대표하는 수호신에서
중원·사천으로 신앙 점차 확산
돈황 점령 토번도 신앙 내재화

비사문천왕은 7세기에서 11세기에 이르는 당송대 시기에 돈황에서 크게 유행한 신앙으로 많은 성상이 조성되었다. 벽화와 조소의 형식을 통하여 때로는 사천왕의 일원으로, 때로는 단독상으로, 때로는 다른 존상들과의 조합을 통하여 다양하게 표현되었다. 돈황문서 중에서도 다량의 비사문천왕 도상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중에는 대량 인쇄되어 몸에 수지하는 호신부 용도로 제작된 것도 적지 않다. 이 시기 돈황에서 이처럼 비사문천이 성행한 원인은 무엇일까?

알려진 바와 같이 비사문천왕은 본래 사대천왕 중의 하나로서 북방을 관장하는 천왕이다. 2세기경 간다라 시기의 작품으로 사천왕이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발우를 바치는 ‘사천왕봉발도’ 부조를 보면, 사천왕은 오늘날과 같은 무사 복장이 아닌 숄이나 터번 등 인도의 왕족이나 귀족 복장을 하고 있으며, 각 천왕들을 구분하는 도상적 특징을 보이지 않고 있다.

비사문천왕이 단독으로 부각되고 그 도상에 있어서도 뚜렷한 변화를 갖게 된 것은 비사문천왕을 각별하게 모셨던 우전국(于?國, Khotan)에서 시작된다. 9회 우전국 기사에서 언급했듯이, 우전국은 건국 과정에서 비사문천왕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566년에 한역된 ‘대방등대집경’의 ‘월장분 비사문천왕품’에는 비사문천왕이 염부제의 북방을 수호하고, 중생의 “五事(수명, 재산, 건강, 행복, 명망)”를 관장한다고 설하고 있다. 이 경전에서는 나아가 비사문천왕이 우전국을 수호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 막고굴 237굴 주존감실 천정부. 사리불과 비사문천이 바다를 이룬 물의 재난을 해결하는 장면. 석장과 창을 통해 대승불교 성지 우전국의 영토가 성립한다는 신화내용은 당시의 호국불교 사상을 반영한다. 8세기 말.

고고학적으로 우전국의 비사문천왕 신앙은 라와크(Rawak) 불교사원 유적지와 단단월릭(Dandan-Uiliq) 유적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두 유적의 비사문천왕상은 모두 하반신만 남겨져 있지만, 무릎 아래까지 내려온 갑옷과 발밑에 야차를 조각하거나 혹은 발 사이에 상반신을 드러낸 인물을 조각하는 것은 이후 돈황에서 줄곧 유행한 비사문천왕의 도상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라와크 유적의 경우, 앞서 언급한 막고굴 154굴의 예와 같이 발 사이에 상반신만 드러낸 인물이 비사문천왕의 두 다리를 받드는 형세를 취하고 있다. 이는 우전국의 건국신화에서 비사문천왕이 낳은 아이를 지유(地乳)를 먹여 양육하는 지천녀(地天女)를 표현한 것이다. 라와크와 단단월릭 유적의 비사문천왕상은 우전국에서 늦어도 6세기에 비사문천왕 신앙이 시각문화의 형식으로 유행했음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해준다.

우전국을 대표하는 수호신인 비사문천왕은 비단 돈황에 국한하지 않고 중원과 사천 등 그 유행범위가 점차 확산되었다. 여기에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불안했던 당시 정세와, 불공삼장(不空三藏)으로 대표되는 밀교의 성행이 맞물려 작용한다. 8세기 후반에 들어 당은 안록산의 난과 토번(티베트의 고대국가)과의 끊임없는 전쟁 등으로 내외적인 부침에 시달리게 되었다. 문헌의 기록을 보면, 이때 당은 군사를 운용할 때 자주 비사문천왕 신앙에 의지하였다고 전해진다. 비사문천왕이 가지는 위력으로 호법, 호국, 수호의 의미 외에도 전쟁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군신으로서의 위용이 부각된 것을 알 수 있다.

▲ 사천 협강현 천불애 134감실 비사문천왕상. 사천지역은 돈황의 영향을 받아 9세기 이후 비사문천왕상이 매우 유행하였다. 사천에는 특히 조각상이 많이 남아 있어 그 입체적 도상 연구에 많은 자료를 제공한다. 비사문천왕의 다리 사이에는 우전왕 건국신화와 관련한 지천녀를, 그 양쪽으로는 야차를 조각하였다. 9세기 후반.

당대의 대표적인 밀교승 불공삼장은 비사문천왕 신앙을 적극적으로 유포하고 이용한 인물이다. ‘불조통기’에 의하면 천보12년(753)에 토번이 양주(凉州, 지금의 무위)를 포위하자, 황제가 불공에게 주술로 신병을 일으켜 구원할 것을 명하였다. 이에 불공이 인왕 진언을 수차례 염송하니 비사문천왕이 나타나 적을 물리쳤고, 이후 황제는 모든 군영에 비사문천왕 사당을 짓도록 하였다 전한다. 불공은 비사문천왕에 관한 경전을 다수 번역하였는데 이들 경전에는 비사문천왕의 도상적 특징을 구체화하고 도상과 진언을 통해 성취할 수 있는 수승한 공덕을 소개하고 있다.

돈황이 토번에 점령된 시기에는 비사문천왕 신앙이 더욱 유행하였다. 이 시기 막고굴에는 비사문천왕이 벽화와 조각의 형식으로 집중적으로 조성되었고, “도속을 막론하고 열과 성으로 비사문천왕에게 기도를 올리고, 도처에 비사문천왕을 위한 번개(幡蓋)가 끊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는 당시 이민족의 통제를 받게 된 돈황인들의 불안한 정서와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이 시기 비사문천왕상은 몇 가지 뚜렷한 도상적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그 변화는 토번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머리에 두건을 두르거나, 허리에 만도를 찬 것, 어깨 뒤로 소뿔 모양의 광배가 뻗어 나온 모습 등은 모두 토번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기 불교 수용단계에 접어든 토번 내에서도 돈황과 우전국과의 접촉 속에서 비사문천왕 신앙을 내재화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도상적 변화는 역설적으로 이후 중원, 사천 등 토번과 인접한 지역에서 유행한 비사문천왕상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비사문천왕 신앙의 유행은 궁극의 열반을 지향하는 불교의 교의적 측면과 매순간 생사의 번뇌에 직면해야 하는 중생의 현실 사이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대승적 고민의 발로에서 파생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막고굴 237굴의 주감실 천정부의 모서리에서 사리불과 비사문천왕이 우전국의 수해(水害)를 해결하는 장면은 곱씹어 감상할 만하다. ‘서장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전국은 바로 사리불과 비사문천왕이 수해를 진정시킨 후 드러난 육지에서 실현된 정법의 불국토이다. 돈황석굴 중 불교감통설화 벽화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장면의 진정한 의의는, 사리불의 석장으로 상징되는 홍법과 비사문천의 창으로 상징되는 호법이 제대로 맞물릴 때 비로소 현실에 불국토를 실현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중철 중국 사천대학 박사과정 ory88@qq.com
 

[1396호 / 2017년 6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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