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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그 이후

죽음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찾아올지 아직 정해져 있지 않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든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죽음이 찾아올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구나,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여유 있게 죽을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자기 삶을 단숨에 종결짓는 죽음, 지금까지 얼마나 준비해왔는가? 마치 남의 죽음이라도 되는 듯이 아무 준비 없이 황망하게 죽어도 되는 것일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 수도 있고 내생이 올 수도 있다.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까? 내일이 먼저 찾아올지 내생이 먼저 찾아올지 아무도 모른다. 아무 준비 없이 죽는다면, 얼마나 황망할까? 죽음 준비는 제한된 삶의 시간을 보다 의미 있게 영위함으로써 편안히 죽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다. 죽음준비는 죽을 준비가 아니라 바로 삶의 준비. 죽음준비 없이 사는 사람은 삶을 준비하지 않은 채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죽음준비, 우리 삶에서 이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는가!

이제 다시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죽을 것인지…. 웃으면서, 여유 있게 떠날 수 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웃으면서 떠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는지? 육신이 호흡과 심장박동을 멈추면, 영혼은 3일 반에 걸쳐 육신으로부터 분리된다. 이제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에 있는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누구든지 자기 자신이 있음을 당연히 전제하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도대체 내가 누구인가? 과연 나라고 부를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죽어가는 육신이 자기 자신인가?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자기 자신인가? 죽은 이후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가?

누구든지 자기 자신을 당연히 전제하고 살아가지만,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는가? 과연, 무슨 답을 할 수 있을까? 육신이 바로 자신인가? 죽어서 화장한 뒤에도 육신이 자기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라고 부를 것이 과연 있다면, 죽어서 화장해 한줌 재로 남은 뒤에도 나라고 부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것이든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화장한 다음에도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육신에서 분리된 영혼이 바로 자기 자신인가? 아직 살아있는 지금 그 영혼의 존재를 실감하고 있는지? 영혼의 존재를 실감하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영혼이 자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자기가 누구인지 대답도 못하면서 우리는 자기 존재를 전제로 해서 살아간다? 얼마나 어리석은 중생의 몰골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대답도 못하면서 자기 존재를 전제로 해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 있을까!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이 질문을 풀지 못한다면, 죽음의 관문 역시 여유 있게 통과할 수 없다. 우리가 삶을 제대로 영위하지 못하고 죽음의 순간 편안하고 여유 있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른 채 평생을 살다가, 자기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한 채 죽어가기 때문이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부모님이 태어나기 이전에 우리는 어디에 있었는가?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 자신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가? 죽어 화장한 뒤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자기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삶에 애착을 두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내가 없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삶에 애착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나라고 부를 것이 없다면, 또한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면, 지금 있는 그대로 마음의 평화가 흔들릴 이유 또한 없다. 자기 존재로 여기는 것이 있으므로, 죽음이 두렵고 삶에 애착하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채워야 할 것, 내 존재로 여겨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저 푸른 하늘처럼 마음을 텅 비워 둘 뿐이다.

오진탁 한림대 철학과 교수 jtoh@hallym.ac.kr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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