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학생회 활동
군목사만 있던 부대 내서
도반과 법회 만들어 진행
부처님과 가르침, 스님들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였다. 그러고 보니 본격적인 불연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어머니께서 심어 놓은 불연의 씨앗이 머리가 좀 굵어지니 싹튼 것 같다.
학교 옆에 있는 사찰에 관심을 갖게 됐다. 틈틈이 사찰에 가서 여기저기를 둘러보게 됐다. 기웃기웃만 하다 마침내 용기를 냈다. 스님에게 다가가 말씀을 드렸다.
“이 절에 다니고 싶은데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참 대견한 학생이네요. 젊은 학생이 절에 다니겠다고 스스로 찾아왔네요.”
스님은 빙긋이 웃으시며 계속해서 말을 건네셨다.
“마침 우리 절에는 학생회가 있어요. 매주 토요일에 법회가 있으니까 와서 체험해 보세요. 부처님도 맹목적으로 그분의 가르침을 믿으라고 하지 않았어요. 와서 보시고 공부해보시고 생활하면서 부처님 가르침의 수승함을 알아보세요.”
무작정 믿고 따르라는 게 아닌, 와서 보고 느낀 다음 결정하라는 그 말씀이 인상적이기도 했다. 스님의 권유에 난 고등학교 3년 내내 학생회에 다녔다. 학생법회에 나가며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수련회 등을 통해 조금이나마 부처님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내 게으름으로 사찰에 자주 가지 못하게 되기 전까지 말이다.
부처님이 나를 그 품으로 이끌어주셨다. 불교와의 인연은 군복무 중에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난 포병을 지원하는 부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었다. 부대 특성상 연대본부와 우리 부대가 같이 생활했다. 당시 부대 내 종교는 개신교뿐이었다. 군종장교인 목사와 교회만 존재하고 있어서 일요일이면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해야만 했다.
그런 생활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연대본부에 있던 한 사병을 알게 됐다. 그는 신심이 돈독한 불자였다. 서울 조계사를 다니고 있던 불자로서 신심이 깊었다. 내 사연을 알게 된 그는 내게 일요법회를 건의해왔다. 그렇게 우리는 법회 추진을 상의했고, 법당은 아니었지만 목사를 통해 군법요집을 조금이나마 구할 수 있었다. 종교시간에 내무반 한쪽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고, 번갈아 가면서 연대본부와 우리 부대 내무반에서 조촐하게 일요법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군법사나 법당도 없는 상황에서 종교행사를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우리는 일병과 상병에 불과했다. 고참들에게 고운 시선을 받지 못했다. 그 무렵 1주일 동안 군종병 교육을 속초 신흥사 포교당에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교육을 수료하고 다시 법회 진행에 따른 전반적인 사항을 습득하고 부대에 돌아와 고민을 시작했다.
부처님이나 부처님 가르침에 관심이 있다기보다 교회에 가기 싫어서, 내무반에서 열리는 법회가 멀리 이동하지 않아서 법회에 나오는 사병이 주류였다. 법회 유지가 참 어려웠다. 결국 목사를 다시 찾을 수밖에 없었다. 군종장교였던 목사에게 불자로서 종교는 다르지만 종교인으로서 현실을 설명했고 도움을 청했다. 다행스럽게 1~2달에 한 번만이라도 사찰을 방문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서 대학에 복학하고 직장인으로 또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해 정신없이 살아야만 했다. 고맙게도 뒤늦게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됐다.
[1398호 / 2017년 7월 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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