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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문제일까

매년 46명 연인에게 목숨 잃어
불교에서 사랑은 약이면서 독
바라기보다 베푸는 사랑해야

6월28일 20대 여성이 청주 자택 근처에 있는 교회 베란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동거하던 21살의 남자친구였다. 헤어지자는 여자친구의 말에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연인이었던 사람이 살인자로 돌변하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올해 1월에는 이별을 통보한 여자친구를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무차별 폭행해 숨지게 했으며, 한 달 뒤인 2월에는 헤어지겠다는 연인에게 불산을 뿌려 살해한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인 간 폭력 사건으로 입건된 사람이 8367명(449명 구속)이며, 연인을 살해하거나 미수에 그쳐 검거된 사람도 52명에 이른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233명이 연인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하니, 해마다 46명이 사랑에 얽혀 죽어간 셈이다.

이는 사랑이 그리 달콤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불교에서는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이 세간과 출세간에 따라 다르다. 출가한 사문에게 남녀의 사랑은 성불을 가로막는 장애로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 허나 세간에서는 그렇지 않다. 불교의 실천규범이 담긴 ‘육방예경’에서는 함께 사는 남녀의 의무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를 존중하고, 얕보지 않고, 외도하지 않고, 살림의 권한을 주고, 장신구를 사줘야 한다. 아내는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주위사람을 잘 챙기고, 외도하지 않고, 가산을 잘 보호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그럴 때 부부 간의 사랑이 돈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는 사랑이라기보다 화목을 위한 부부간의 의무사항에 가깝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디가니까야’의 ‘제석천의 질문의 경’에는 애틋한 사랑이야기가 등장한다. 경전에 따르면 제석천을 비롯한 천신들이 부처님을 친견하기를 원했다. 신통력으로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찾아갔지만 부처님이 깊은 선정에 들어 계시자 신들이 주저했다. 그때 제석천이 건달바의 아들 판차시카를 불러 비파 연주와 노래로 부처님을 기쁘게 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를 흔쾌히 받아들인 판차시카는 사랑의 찬가를 불렀다. 그는 천신의 딸 수리야밧차를 사랑했기에 노래는 절절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땀 흘리는 자에게 바람처럼, 목마른 자에게 물처럼, 빛나는 천녀여, 그대는 나의 님입니다. 병든 자에게 약과 같고 배고픈 자에게 음식과 같습니다. 존귀한 여인이여, 타오르는 불을 물로 끄듯, 나를 꺼주오. 그대에게 마음이 묶였으니, 낚시 바늘을 삼킨 물고기처럼 잃어버린 마음은 되찾을 수 없습니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를 안아주오. 착한 여인이여, 나를 품어주오. 마치 성자가 최상의 원만한 깨달음을 이뤄 기뻐하듯 선한 여인이여, 그대와 한 몸이 되면 더 없이 기쁘겠습니다.’

▲ 이재형 국장
그러자 부처님은 판차시카의 비파줄 소리가 노랫소리와 잘 어울리며, 노랫소리는 현소리를 벗어나지 않는다며 칭찬했다. 이어 사랑을 칭송하는 노랫말을 어떻게 지었는지도 물어봤다. 이 일을 계기로 판차시카는 천신들의 마음을 얻고, 수리야밧차와 함께 살도록 돕겠다는 약속도 받아낼 수 있었다.

이 같은 불경 내용은 이례적이다. 부처님은 사랑이 강한 집착을 낳고, 그 집착은 다시 원망과 증오로 이어질 수 있음을 끊임없이 경고한다. 최근 잇따르고 있는 데이트폭력은 이 같은 사랑의 속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뭔가를 바라는 사랑은 불행해지고, 베풀려는 사랑은 행복해진다. 사랑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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