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美 방문한 대통령의 우리말 연설

기사승인 2017.07.10  14:42:19

공유
default_news_ad1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길에 이루어진 장진호 전투 추모연설을 보게 되었다. 정치적인 성향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감동을 준 연설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듯하다. 이 연설이 외국을 방문했던 다른 대통령의 연설과는 배경 등에서 많이 다르겠지만, 우리말로 당당하게 연설하는 장면을 보면서 몇 가지 지난 일들이 생각나고, 또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하여 꼭 짚고 넘어갈 일이 있다.

국가 원수로서 외국을 방문한 경우, 제발 그 나라 말로 연설한다고 필요 없는 애를 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미국 또는 중국 등을 방문했던 우리 국가 원수가 서투를지도 모를 그 나라 말로 연설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부끄럽고 화가 났던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이다. 필자 혼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국격이라는 원칙론적 문제와 연관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고유의 언어가 없는 나라인가? 그렇지 않다. 자랑스러운 말과 글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가 원수가 그 말을 포기하고 외국어로 연설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일개인의 사적인 연설과는 의미가 다르다. 나라의 대표가 무슨 이유로 나라 말을 스스로 팽개치는 것인가? 그 나라와의 우호를 위하여, 그들의 호감어린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인사말 정도 그 나라 말로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혹시라도 그 나라 말이 원어민 수준으로 유창하다 하더라고, 한 나라를 대표하는 원수라면 당연히 우리말을 써야 옳다.

왜 그런가? 한 나라의 원수라는 것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그 말을 쓰는 데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 중요하고도 상징성이 큰일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당신들에게 이렇게 비굴하게 엎드린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국가원수가 그렇게 비굴하게 엎드리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심하게 지나치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영어나 중국어 수준이 높지 않은 필자의 귀에도 그리 유창하지 않았던 그 나라 말 연설이 과연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훌륭한 통역을 쓰는 것과 비교하여 말하려는 내용을 더 잘 전달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저 외국어 조금 잘해보려고 모든 신경을 거기에 쓰면서, 연설에 담긴 의미를 호소력 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은 없었던가? 이런 느낌들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들에 불과하다.

정말 우리가 새겨야 할 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국가 원수로서 국격을 당당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 당당한 태도야말로 외교에서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 비굴한 태도가 무언가를 더 얻게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근거 없는 망상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높이지 않는다면 누가 우리를 높여줄 것인가?

물론 국제관계에도 갑과 을이 있을 수 있고, 힘과 위상의 차이가 있다. 또 우리가 아쉬운 입장에서 마냥 고개 뻣뻣하게 들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가장 기본적인 자세조차 포기를 한다면 그것은 이미 외교가 아니다. 더군다나 정상의 외교는 절대로 아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고 어려우니 도움을 바란다는 말을 하더라도 떳떳하게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말을 내던지고 그 나라 말을 쓴다는 것은 “우리는 당신들의 속국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많은 ‘우리’는 그런 모습들을 아주 태연하게, 혹은 박수까지 쳐 가면서 보아 넘겼던 것이다.

국제화, 세계화의 시대에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서는 안 될 일이라 생각한다. 국제화, 세계화는 우리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포기하고 이루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고유성과 독자성을 제대로 발휘하여 국제적, 세계적 보편성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올바른 국제화요 세계화이다. 그리고 말과 글이야말로 우리의 독자성과 고유성을 드러내는 첫 번째 요소이다. 국가 원수가 앞장서서 그 소중한 것을 지켜주길 바란다.

성태용 건국대 철학과 교수 tysung@hanmail.net
 


[1399호 / 2017년 7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성태용 교수 tysung@hanmail.net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hot_S1N12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