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setNet1_2

27. 두려움 느끼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기사승인 2017.07.17  17:08:28

공유
default_news_ad1

- 무섭게 쏟아지는 빗속에서 얻은 작은 깨달음

   
▲ 안도 히로시게(安藤?重), ‘동해도 53차(東海道 五十三次)’ 중 ‘쇼노(庄野)’, 21.9×34.6cm, 1833,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 비가 내린다. 천지를 뒤흔들 정도로 주룩주룩 내린다. 쏟아지는 빗줄기는 나무를 흔들고 땅을 뒤집을 만큼 인정사정없다. 그 빗속에도 우리는 길을 떠나야 한다. 폭우가 쏟아진다 하여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니 기왕에 가야 할 길이라면 두려움 없이 갈 일이다. 삼백 예순 날 계속 내릴 것 같은 비도 언젠가는 멈출 것이다. 아니 멈추지 않아도 상관없다. 비가 오든 해가 뜨든 날마다 좋은 날이기 때문이다.

장마철이다. 비가 내린다. 비는 조용히 내릴 때도 있고, 사정없이 쏟아질 때도 있다. 어떻게 내리든 상관없다.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비라 그저 반갑기만 하다. 무조건 많이 내려 메마른 땅을 적셔주기만 하면 된다. 물론 비가 좋은 것은 집에 있을 때의 일일 뿐이다. 집을 나와서까지 좋은 것은 아니다. 빗길을 걸어가려면 우산을 들어야 하고 옷과 신발이 젖는 것을 감수해야 하니 귀찮고 성가신 일이다. 무거운 가방이라도 들고 있다면 더욱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다. 빗길에 운전을 해야 하는 위험성도 만만치 않다. 

특강 차 거창으로 남편과 함께 출발
설렘으로 마음 들떴지만 이내 폭우
갑자기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 엄습
마음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포 가셔


거창에 특강하러 간 날에도 새벽부터 비가 내렸다. 강의 시간은 오후 4시였지만 도로가 막힐 것을 예상하고 조금 일찍 출발했다.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어 남편이 차를 운전했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강의가 끝나면 여름휴가를 대신해 거창의 불상을 보고 올 계획이었다.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둘만 남으니 기동력이 있어서 좋다. 누구 한 사람이 먼저 ‘가자!’라고 말하면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떠날 수가 있다. 이번 주는 시간여유도 있어 후배가 사는 안동에 들러 전탑을 볼 예정이었다. 장마철이라 비는 계속 내리지만 이 정도 양이면 더위까지 식혀줘서 오히려 더 좋을 것 같았다. 날씨까지 도와준 것을 보면 이번 여행이 최고의 휴가가 될 것 같다.

출발할 때의 기분은 설렘으로 들떠 있었다. 그런데 집을 출발해 신갈에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자 하늘이 심상치가 않았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더니 안성에서부터는 억수같이 쏟아졌다. 하늘에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해 그곳에서 지상으로 물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와이퍼를 최대한 빨리 움직여도 앞이 안 보일 지경이었다. 도로는 삽시간에 물바다로 변했다. 비의 양이 워낙 많다 보니 미처 배수가 되지 못하고 도로에 고여 출렁거렸다. 차들이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았다. 모든 차들이 시속 60km를 넘지 않을 정도로 힘겹게 앞으로 나아갔다. 다행히 차마다 모두 비상등을 켜서 앞차와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제시간 안에 무사히 강의 장소에 도착할 수 있을까. 무슨 사고는 나지 않겠지? 조금씩 염려가 되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나무아미타불’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런데 천안쯤 도착했을까. 갑자기 앞유리에 물폭탄이 터졌다. 사고가 났음을 직감했다. 우리차가 2차선을 달리고 있었는데 1차선과 3차선에 달리던 차들이 동시에 속도를 내면서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에 물이 고여 있어 양쪽 차들이 일으킨 물벼락이 우리 차에 튕긴 것이다. 그냥 튕기는 수준이 아니었다. 양쪽 차가 작당해서 우리 차를 물구덩이에 밀어 넣은 듯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비가 쏟아져 앞차들이 켠 비상등에 의지해서 나아가고 있었는데 물벼락을 맞자 방향감각을 잃었다. 이렇게 죽는구나. 순간적으로 두려움이 강하게 밀려왔다. 다행히 남편이 당황하지 않고 방향을 틀지 않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만약 그 순간에 급브레이크라도 밟았더라면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졌을 뻔했다.

그때부터 마음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 놀란 가슴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고 두려움 또한 쉽게 잦아들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계속 암시를 주었다. 내가 불안해하면 운전하는 사람도 흔들릴 것 같아 태연한 척했다. 누구든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움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 그러다 생각했다. 두려워하는 이 마음은 무엇인가. 이 마음은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가. 그렇게 생각해도 두려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나마 평소에 ‘알아차리기’ 연습을 한 덕분에 이렇게라도 나 자신의 마음을 살필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서너 번 더 있었다. 경부고속도를 빠져나와 무주 방향으로 진입할 때까지 거의 40여분의 시간을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떨어야 했다. 남편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었던 모양이다. 그나마 이런 두려움을 느낄 때 남편이 곁에 있어 큰 위안이 되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전우애를 느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감사했다.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질 즈음 남편이 한마디 했다.

“당신이 이곳저곳 다니는 것이 남들 눈에는 멋져 보일지 모르지만 강의를 위해 목숨 걸고 가야 하는 이 일이야말로 극한직업이야.”

그러고 보니 내 마음 속에도 이런 처량한 생각이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얼마나 벌겠다고 목숨의 위험까지 느끼면서 강의를 다닐까. 이 일이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일까. 앞으로는 지방강의를 다니는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웃음이 나왔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 것은 내가 선택할 수 없다. 대신 그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지 않겠는가. 종범 스님의 설법집 ‘오직 한 생각’에는 셈법 인생에 대해 적혀 있다. 인생은 뺄셈인생, 덧셈인생, 나눗셈인생, 곱셈인생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 덧셈인생에 대한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덧셈인생은 하나를 잃어도 ‘아, 나는 이것을 통해서 다른 하나를 얻었다’ 하고 좋게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 주고서 내 인생에 더 깊은 경험을 얻었다’ 하고 항상 덧셈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불안한 일이 있어도 ‘이것은 나에게 좋은 일이다. 이런 기회가 없었으면 이런 경험을 못 했을 텐데, 이 기회에 경험하게 돼서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덧셈인생입니다.”

놀라긴 했지만 지방강의를 가게 되어 이런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이번 기회에 내 마음도 점검해볼 수 있었으니 이런 경험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주 쪽으로 들어서자 거짓말처럼 비가 멈췄다. 아까 겪었던 빗속의 시간이 믿기지 않을 만큼 맑았고 도로는 뽀송뽀송했다. 금산을 지나고 함양을 거쳐 거창에 도착했을 때는 하늘에서 쨍하는 소리가 들릴 만큼 화창했다. 날씨에 따라 마음도 밝아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 두려움도 사라지고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로 절박했던 시간도 다 지나갔다. 그렇다면 아까의 두려움은 어디로 갔을까.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이 여몽환포영(如夢幻抱影)이고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었다. 현상계의 모든 생멸법이 꿈 같고 환상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았다. ‘금강경’ 사구게가 나의 것이 되었다. 애초부터 두려움은 없었다. 두렵다고 느낀 나의 마음이 있었을 뿐이다. 짧지만 강렬한 깨달음이었다.

거창 강의를 마치고 안동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다시 돌아오는 길에도 역시 옥산에서 망향까지 비가 내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다지 무섭지 않았다. 두려움이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작용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좋은 여행이었다. 인생 자체가 좋은 여행이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sixgardn@hanmail.net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조정육 sixgardn@hanmail.net

<저작권자 ©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set_hot_S1N12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