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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유니세프와 어린이 춤꾼

기자명 성원 스님

춤꾼 ‘유나’가 있어 행복했던 순간

 
대학을 졸업할 쯤인 것 같다. 학생들에게 진로와 취업을 위해 적성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당시 취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은 없었다. 오히려 기업들이 인력 채용난을 겪을 때였으니 요즘 사회적 분위기로는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대학 때 인연 맺은 유니세프
스님 되어서도 인연 이어져
어린이들과 미얀마에서 구호
유나의 춤에 모두가 흥겨워 
 

자의반 타의반 적성검사를 하고 결과를 보러 갔더니 상담 교수님께서 나에게 사회복지 관련 적성이 있으니 그쪽 업무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했다. 그 당시 너무나 생소한 말이라서 뭐하는 일이냐고 했더니 남을 돕는 일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어이없어 하니 교수님께서도 꼭 하라는 것은 아니고 그쪽 방면의 직업적성에 만점이 나와서 권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을 도우면서 나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돕는다는 것은 자신이 성공하여 주위 사람들에게 시혜적으로 보답하는 것쯤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종로의 종각 부근에서 한장의 전단지를 주웠다. 유니세프에서 어린이들 돕자는 기부자 발굴용 전단지였다. 몸에 근육이라고는 전혀 없이 뼈만 앙상한 어린이가 혼자 앉기도 힘들어 기울어 쓰러져가는 모습의 사진이 실려 있었다. 순간 걸음은 멈추어졌고 온몸의 힘이 쫙 빠져 더 이상 걸음을 옮기기조차 힘들었다. 한참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세상에 이렇게 삶을 이어가야하는 어린이들이 있다는 것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스스로 전단지를 수백장 복사해서 기부를 하자고 주변 사람들에게 권했고 당시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의 동참을 받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로 보내주었다.

이렇게 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이후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유니세프와의 인연은 끊어진 연뿌리의 연실같이 이어졌다. 2011년 물의 날 행사를 맞아 유니세프를 통해 어린이들을 돕고자 기획행사를 준비하는데 한국위원회에서는 이런 일을 사찰에서 처음 하는지라 공신력을 담보할 수 없다고 하면서 허락하기 힘들다고 했다. 난처해하다가 직접 전화해서 예전 담당자를 찾았더니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이었다. 서로 신뢰가 있어서 물의 날 행사도 잘 마치게 되었고 이어서 사무총장의 부탁으로 서귀포시가 유니세프 후원도시로 결연하는데 가교 역할을 하면서 다시 유니세프와 관련한 일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인연이란 미묘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이후로 서귀포시 유니세프 후원 회원 모임을 함께 하면서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나의 삶에서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서귀포 후원회는 독자적으로 해외봉사 기부활동을 하고 있는데 몇 차례 해외봉사를 하면서 불교단체가 지원하는 학교에도 지원할 수 있었다. 지난 주에는 지구촌공생회가 지원하여 교사를 채용한 미얀마 양곤 인근의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후원 물품을 전달하고 함께 종이접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우리들이 준비한 물품을 단순히 전달하고 나오려니 아쉬움이 남아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는데 우리와 함께 동참한 초등학교 4학년인 ‘고유나’ 어린이가 미얀마 어린이들이 K-POP을 좋아한다고 하니 자신이 춤을 추겠다고 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별한 준비도 없었는데 유나는 휴대폰에 저장된 음악을 틀더니 헌신적으로 춤을 추었다. 모두들 박수를 치는 것도 잊고 숨이 멎은 듯 유나의 춤을 관람했다.

어른들이 작은 물품으로 아이들의 환심을 사려할 때 어린 유나는 자신만의 몸짓으로 미얀마 어린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유나의 몸짓에 우리들의 물질이 한참 빛을 바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나 혼자만이 아닌 것 같았다. 보시라는 것이 금전과 물질만이 아니라고 늘 가르치면서 이렇게 마음에 크게 와 닿기는 처음인 것 같다.

우리들의 유나가 우리 다음 세대의 주인공이라는 것이 너무나 가슴 벅차 올랐다.

성원 스님 sw0808@yahoo.com

[1400호 / 2017년 7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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