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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빈승의 발심원력-상

“수행의 핵심은 발심하고 발원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 성운대사가 1954년 대만의 방송국에서 불교음악으로 불법을 펼치기 위해 의란 청년합창단의 합창을 녹음한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만 불광산 제공

"신도를 만나면 저는 먼저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 않을까,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차를 주고 식사를 준비해야 할까, 저 사람이 좀 쉬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늘을 찾아서 의자를 마련하여 그늘에서 잠시 쉴 수 있도록 할까 등등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사람은 살면서 발심하고 원력을 세워야 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런다고 해서 자신에게 무언가 줄어드는 것은 없고 인간 세상에 빛과 따스함만 더할 뿐이다. 발심원력이 있을 때 우리는 원력을 성취하기 위해 정진하고 노력하게 된다.”

청대(淸代)의 성암(省庵) 대사가 쓰신 ‘권발보리심문(勸發菩提心文)’을 읽으면 첫머리에 “불도(佛道)에 들어서는 중요한 시작은 발심을 으뜸으로 하고 수행에서 가장 긴급하게 힘써야 하는 것은 원력을 세우는 것이 우선이라고 들었다(嘗聞入道要門 發心爲首 修行急務 立願爲先)”라고 하였는데 발심하고 원력을 세우는 것은 우리가 평생 부처님을 따라 배우는 수행의 핵심이 됩니다.

간단히 말하면 발심은 마음의 밭을 개간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끝이 없고 넓은데 당신은 마음을 어떻게 개간할 것입니까? 당신이 얼마만큼 개간하느냐에 따라 그만큼의 수확이 있게 됩니다. 마음은 마치 논밭과도 같아서 당신이 개간한 그 만큼의 논밭은 당신에게 그 만큼의 씨앗을 뿌리게 하고 결실을 거두게 할 것이니 마음 밭에 뿌려진 씨앗 한 알의 수확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발심의 뜻을 오늘날의 경영적인 이념으로 말하자면 투자하여 벌어들이는 결과가 됩니다.

발심에는 ‘발증상심(發增上心) 발출리심(發出離心) 발보리심(發菩提心)’이 있습니다. ‘발증상심’이라 함은 수행하여 불도에 입문하려는 당신이 보시하는 마음을 내고 계율을 지키는 마음을 내고 자비하는 마음을 내고 봉사하려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발심이라 함은 필히 몸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으로, 고행의 마음을 내거나 절하는 것을 수행으로 하는 마음을 내거나 고통과 어려움에서 구해주려는 마음을 내는 등등을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중생을 위해서 희생하고 기여하고자 발심하셨으며 지장보살은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 누가 지옥에 들어가겠는가!”하고 발심하셨고 중국의 유명한 위산영우(溈山靈祐) 선사는 “황소가 되어서 위산 아래 사람들을 위해서 일을 하겠다”는 발심을 내기도 했습니다.

예부터 집을 절로 내어놓는 발심을 하거나 경전을 인쇄해 널리 전하고자 발심하거나 길을 닦고 다리를 놓는 발심을 하거나 무료로 가르침을 펼치고자 발심한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에서 복을 짓는 것이 우선이다”라는 말처럼 이것들은 모두 복을 짓는 발심이고 좋은 과보를 받는 법문에 속하는 것으로 ‘발증상심’이라고 합니다.

발출리심은 출세간적 발심으로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고 애착을 멀리하고 권세를 멀리하고 욕락(欲樂)을 멀리하는 것으로, 공무(空無)한 속에서 수행하여 도를 이루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육도윤회를 초탈하려면 당신은 필히 ‘내려놓기 어려운 것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며 참기 어려운 것’을 참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간을 버릴 수 있어야 세간을 가질 수 있으며 친족의 정을 버릴 수 있어야 불도의 정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출리심(出離心)을 내면서 내려놓을 수 없다면 그 무엇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발보리심은 세간과 출세간으로 잘 조화를 이루어서 사회를 아름답게 하고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세간적인 증상심을 내면서 자신의 신심이 퇴전(退轉)하지 않고 원력을 잃지 않는 것으로, “출세간적인 사상으로 입세간의 사업을 행한다”라고 하며 이것이 바로 발보리심입니다. 인간불교의 수행에서 발심하고자 한다면 비록 순서가 있지만 증상심이나 출리심 혹은 보리심 그 어떠한 발심을 하던 간에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빈승의 발심으로 말할 것 같으면 출가 이전에는 저에게 가족이 있고 부모님이 계시니 저는 내적인 힘을 발휘해서 청소, 설거지, 밭일, 꽃에 물주기와 고물 줍기 등으로 집안에 도움이 되고 가난한 집안 사정이 나아지도록 발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출가한 이후에 저는 밥 짓기, 물 긷기, 음식분배와 설거지, 힘든 노동과 절을 하거나 경전독송, 참선, 염불 등을 하면서 대우를 바라거나 편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저는 아직 어려서 진정한 발심의 뜻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사람이 성공하려면 소위 말하는 “하늘이 장차 그 사람에게 큰 사명을 주려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과 뜻을 고통스럽게 하고 그 힘줄과 뼈를 힘들게 하며 그 몸을 굶주려서 궁핍의 고통을 겪게 하고 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순조롭지 않게 하여서 의지를 흔들고 참을성을 키우면서 그의 재능을 키운다(天將降大任於斯人也 必先苦其心志 勞其筋骨 餓其體膚 空乏其身 行拂亂其所為 所以動心忍性 增益其所不能)”는 말을 따라서 배우고자 했고 하물며 제불보살 가운데서 발심하여 원력을 세우고 불도를 성취하지 않은 분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서만 생각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빈승이 발심하고 원력을 세우는 배움의 과정은 먼저 대만 이란에서 불법을 펼치기 시작하던 때부터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자 발심하고 법당에 들어오는 사람을 보면 저는 그 사람을 향해서 미소로 합장하고 예를 갖추며 찬탄하였습니다. 저는 청년을 이끌어 들이고자 발심하여 열심히 챙겨주면서 그들에게 문학강좌를 해주고 그들이 찬불가를 부르도록 격려하였습니다. 어린이를 교화하고자 발심하여 유치원을 운영하는 외에도 어린이 교실과 일요어린이학교를 만들어 어린이들이 꿈을 갖도록 인연을 맺어 주었고 어린이들이 배움을 즐겁게 느끼도록 하였습니다.

물론 나중에는 이란염불회가 발전하면서 신도들도 갈수록 많아졌는데 그 주요한 원인은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노력과 잘 챙겨주고 열정으로 대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발심은 자신에게 열정이 있고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베풀고 봉사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지만 저 자신이 진정한 발심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도 함께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조금의 겸손한 심성도 없고 진정한 경의로서 사람을 대하는 점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은 진정한 발보리심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발보리심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구보리’의 지난날 수행의 여정이 있었으니 지금은 ‘하화중생’하는 것이 중요한 공부의 실천이었습니다.  

불광산 개산 이후 보리심을 낸다고 함은 남들이 저보다 잘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저는 아주 겸손해야 하며 남들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고 제 스스로는 공경하며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남들이 필요로 할 때 저는 단지 그들을 위한 디딤돌이 되었고 남들은 큰 나무와도 같아서 저는 단지 약간의 물과 흙의 보탬일 뿐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들이 저보다 더 소중하고 저보다 더 대단하다고 느꼈기에 저는 일을 함에 있어서 ‘힘들수록 즐겁게 느끼고 어려울수록 더 잘된 일’이라는 마음자세를 가졌습니다.

그 이후로 매번 신도를 만나면 저는 먼저 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지 않을까, 저 사람을 위해서 내가 어떻게 차를 주고 식사를 준비해줄까, 저 사람이 좀 쉬고 싶어 하지 않을까, 어떻게 그늘을 찾아서 의자를 마련하여 잠시 쉴 수 있도록 할까, 저 사람이 이곳에서 하룻밤을 머무를 것인가, 신도들을 위해서 나는 어떻게 방사를 짓고 숙소를 꾸밀까, 저 사람은 불서를 읽고 싶을까,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떤 불서경전을 주어서 유익함을 얻게 하고 반야지혜를 키울 수 있게 할까 등등에 대해 깊이 고민했습니다. 

남이 저에게 주기를 한없이 바라서는 안 되고 ‘남에게 주는 것’을 스스로 진심으로 실천해야 하는 것을 점차 느끼게 되면서 저는 “사람들에게 신심을 주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사람들에게 편의를 준다”라는 불광인 업무지침을 정했습니다. 또한 저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고 진실한 마음 역시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꽃을 기르고 나무를 심어서 사람들이 그늘에서 쉬면서 꽃을 즐기도록 하였으며 회관과 객당을 지어서 차를 마시고 머물 수 있도록 하였으며 많은 불보살상을 모셔서 사람들이 공경하고 참배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제가 배려하는 편리함과 접대를 얼마나 받았는지를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저 자신의 배려가 여러모로 부족하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만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빗물에 행인이 젖으면 불편할까 싶어서 산문 입구에 우산을 준비하였으며 법당에 들어서더라도 제불보살께서 그 사람들과 말씀이 없으시다는 생각에 필히 노전소임과 향등 소임자가 법당에서 불자들을 맞이하며 궁금한 것도 대답해 주도록 하였습니다. 길이 좁아서 다니기에 불편하면 길을 넓힐 것을 생각했으며 어린 아기를 데려오는 부모를 위해서 수유실과 유모차를 준비하여 편의를 제공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또한 행동이 불편한 노인을 위해서 휠체어를 준비하였으며 보행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위해서는 편리한 이동통로의 공간적 배치를 고려하였습니다.

심지어 몸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불광산 제자들을 위해서 저는 진료소를 세웠고 공부하는데 눈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교실 전등의 밝기를 높였습니다. 비록 저 개인은 간단한 식사를 추구하지만 대중은 발우공양에서 제대로 된 한 끼로 법희선열을 느끼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신도가 참배를 하러 왔다고 해서 저의 신도로 삼으려고 하거나 제자로 만들려고 하지 않고 불보살님을 맞이하듯 대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지금에 이르도록 두 번의 중풍을 거치면서 손발이 불편하게 되었지만 저와 사진 찍기를 원하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저는 가능한 일어서서 그 사람에 대한 저의 존중을 알게 하였습니다.

번역=이인옥 전문위원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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