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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홍성란의 ‘소풍’

기자명 김형중

삶과 죽음 등치시켜 읊은 인생 노래
중생 소풍엔 봄날과 초겨울 삶 공존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비탈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

이상적 성취대상 상징 복사꽃
죽어 묻힌 무덤 봉분 옆에 피어
눈 어두워 옷 속 여의주 못 보고
내 곁 관음보살 모르는 게 중생

인생은 한나절 소풍이다. 꽃이 피는 봄날의 소풍일 수도 있고, 매서운 바람이 부는 초겨울날 소풍일 수도 있다. 젊은 날에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하는 소풍은 참으로 찬란하게 아름답지만 노년에 홀로 공원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까먹는 소풍은 쓸쓸하고 외롭다.

시인은 삶과 죽음을 등치(等値)시켜서 인생을 읊고 있다. 시인의 표현대로 태어나서 죽는 시간, 생사의 기간이 “여기서 저만치가 인생이다 저만치” 누구나 인생은 녹록치가 않다.

그렇다. 선악과를 따먹고 이성의 눈이 뜨는 순간부터 인생의 소풍은 시작된다. 시인이 읊은 바와 같이 “비탈길 아래 가는 버스/ 멀리 환한/ 복사꽃”이다. 어떻게 보면 인생은 자기 스스로 삶을 인식하고 느끼고 생각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마냥 아름답기만 했던 유년시절은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고 지나간 시절이다.

인생이란 버스가 비탈길 아래로 달려가고 있다. 멀리 환한 복사꽃이 피어 있다. 버스 안이라서 멀리 창밖을 내려다본다. 항상 아름다운 이데아는 현실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 시인은 마지막 3연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라고 하며 인생을 정리해 놓고 있다. 살아생전에 그렇게 갖고 싶었던 복사꽃 한 송이가 죽어서 무덤봉분에 곱게 피어있다.

홍성란(1958∼현재)의 ‘소풍’은 천상병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하늘로 돌아가 참으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고 읊은 소풍과는 다소 다르게 쓸쓸한 인생 소풍을 읊고 있다.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적인 성취대상을 아름다운 분홍빛 꽃인 복사꽃이 상징한다. 무릉도원이요 별천지이다. 그렇게 가지고 싶었던 복사꽃이 죽어서 무덤 봉분 옆에 있다. 살아있을 때 할미꽃이라도 의미가 있고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 죽어서 도화장미 백화만초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젊어서 죽도록 일만하여 집도 장만하고 자식들 대학도 보내서 이제 살만 한데 갑자기 병들어 죽는 사람이 있다. 요즘처럼 풍요롭고 좋은 세상에 집안에 만들어 놓은 꽃동산을 한나절도 바라보지 못하고 가는 삶이 있다. 서글픈 인생이다. 살아서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간 사람은 드물다.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아쉽게 세상을 등지고 만다. 이것이 인생이다.

소풍(逍風)은 갑갑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야외로 먼 길을 걷는 일을 뜻한다. 먼 길을 걷고 떠나는 면에서 우리의 인생을 소풍에 비유하기도 한다. 보통 소풍은 하루나 한나절의 시간이라면 인생은 팔십 년에서 백 년이란 긴 시간이다. 하필이면 소풍가는 날에 비가 온다. 인생도 그렇다. 홍수가 나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쓸고 지나간다. 항상 꽃길만 걸을 수 없다.

양쪽 어께 위에서 불행악녀와 공덕천녀가 교대로 바라보고 있지만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다. 시인은 “꽃 두고/ 아무렇지 않게 곁에 자는 봉분 하나”라고 표현했다. 사람들은 눈이 어두워서 내 옷 속에 감춰진 여의주를 보지 못한다. 나를 구원해 주기 위하여 내 곁에 왔다가 지나가는 관세음보살을 알아보지 못한다. 이것이 중생의 인생이다.

홍성란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시조의 형식실험과 현대성의 모색 양상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중앙시조대상, 유심작품상,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유심시조 아카데미원장으로 현대시조를 대중화시키는 삼박자를 잘 갖춘 한국시단의 대표적인 기린아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01호 / 2017년 7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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